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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Dec 05. 2021

영화에 대해 묻고 싶은 세 가지 질문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

'왜 많이 팔렸지' 궁금한 이번 주 급상승 도서

[2021년 11월 4주] 11/22~11/28


이십 대 청년 고다르는 1955년 프랑스에서 개봉한 영화 <자니 기타> 속 대화에 매혹된다. 평생 천착한 '숏/역숏 체제'와 '얼굴'의 문제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고다르는 이 '내게 거짓말을 해줘' 장면을 자신의 영화에서 세 번 리메이크한다. (<작은 병정>, <영화의 역사(들)>, <이미지의 책>.) 그것도 모두 다른 방식으로. 그런데 네 편의 영화를 모두 본 관객이라고 해도 이 차이를, 혹은 반복 언급된 사실 자체를 눈치 못 챌 수 있다. 누군가는 '영화는 이론이 아니라 체험인데 이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할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유운성은 이러한 회피에 반대한다. '비평 없이 도래하는 예술은 없다'고 말한다. 동시에 영화는 강한 이론을 갖추지 못했기에 아직 쟁론이 펼쳐진다고 짚어낸다. 이처럼 모호한 예술인 영화의 교양서를 표방하며 쓴 『어쨌거나 밤은 짧을 것이다』는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영화하는가?' 세 핵심 물음에 접근한다. 단, 답을 바로 제시하지 않고 독자가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3장에서 상호성을 강조한 이유로 '영화하기'를 영화하기(함께)라고 달리 부른다면, 이 책은 비평하기(함께)의 책이라 명명할 수 있다.


고전 영화 보기의 경험이 적다면 읽기 어렵다. 영화 이론을 공부한 적이 없다면 여러 의문이 남는다. 일테면 '숏, 숏/역숏 체계, 데쿠파주, 몽타주, 미장센은 대체 무엇인가.' '책에서 수차례 언급한 숏/역숏 체계는 왜 공고하고 중요하며, 왜 탈피하기 어려우며, 왜 많은 작가는 극히 어려운데도 그것을 교란/재정립하려 했는가.' 이 같은 가장 근원의 차원으로 돌아가 영화 예술의 존재론을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실한 입문서다. 책에서 기능인이라 비판한 수필가, 해설사, 정리광, 관제사와 구분되는 철저한 비평가의 관점으로 쓴.


저자는 <비브르 사 비>에서 나나가 <잔다르크의 수난>을 보는 유명한 장면이 반대로 <잔다르크의 수난>에 <비브르 사 비>의 숏을 삽입해 재편집한 고다르의 실험인 것은 아닐까 묻는다. 이런 뒤집어보기는 이론적 토대로부터 쌓아올린 사유가 있기에 가능하다. OTT와 VR이 화두이며 볼 영화 목록이 꽉 차 있는 시대. 작가의 욕망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 영화를 보게 하는 준거로서 이론에 대한 허기를 이 책은 불러일으킨다. 에이젠슈테인은 영화를 동사적이라 간주했다. 영화읽기 역시 마찬가지다. 역동적 논의의 길 위에서 영화의 미래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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