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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Dec 12. 2021

진짜 공포의 세계로 오세요.

지옥

'왜 많이 팔렸지' 궁금한 이번 주 급상승 도서

[2021년 12월 1주] 11/29~12/5


우리는 미스터리로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다. 자연히 불가사의한 현상을 다루는 픽션 작품도 많다. 만화든 영화든 소설이든 대부분 벌어진 재난 상황의 배경을 설명해준다. 예를 들면 인간의 탐욕이 극에 달해 신이 심판을 가했다거나, 이해할 수 없는 계기 때문에 발생한 재앙으로 지구가 절멸에 이르렀다거나. 풀이는 자세하게 제시되기도 하고 문구 한두 줄 정도로 처리되기도 한다. 만화 『지옥』은 이러한 설명을 모두 생략했다. 독자는 왜 고지와 시연이라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는지 추정할 수 없다. 이야기 몰입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는 편안한 선택도 있다. 실제 저자는 신의 의도 혹은 죄와 심판의 문제를 파헤치기보다는 벌어진 재앙에 노출된 인간들이 서로 충돌하며 빚어내는 소요를 그리는 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 패닉 상황의 묘사는 탁월하다. 넘치는 속도감과 박력미는 작품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다. 그럼에도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최초의 전제를 맞춰 놓는 걸 필수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시작'과 함께 '끝'도 혼란스럽다. 고지를 받은 아기는 왜 시연을 피했을까. 갑작스러운 결말은 여러 해석을 남긴다.


열쇠는 시즌 2가 쥐고 있다. 2022년에 만화부터 연재가 시작된다. 새 시즌에서 초자연적 현상이 작동하는 배후, 고지의 원리와 비밀(과 저주를 푸는 방법), 전체 서사 구조를 조금 더 명확하게 풀이해 준다면 전 시즌을 포괄하여 더욱 친절한 악몽극이 될 것이다. 독자가 한 가지 더 품게 되었던 의문은 이야기가 내내 어둠 쪽으로만 내달릴 것인가였다. 결말은 약간의 희망과 빛을 허용한다. 새진리회의 와해도 암시된다. 시즌 1에서 느껴진 애매함은 시즌 2에서 완결성을 더해줄 추진력을 얻기 위한 무릎 꿇음이었을 것이라 일단 긍정하게 된다.


전작 『송곳』과 비교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다. 영상화된 점 말고도 나란히 대 볼 만한 지점이 있다. 두 작품을 연결하는 대사. 『송곳』에는 '웰컴 투 더 리얼 월드'라는 말이, 『지옥』에는 '웰컴 투 더 헬'이라는 말이 나온다. 직장 내 괴롭힘, 임금체불, 실직 등 내가 진짜 살아가는 '리얼 월드'의 공포. 누군가는 30억을 대가로 자신의 최후를 생중계하며, 남의 비극을 나의 이익을 위해 빌려 쓰는 사람들이 충돌하는 '헬'의 공포. 둘 다 무섭다. 『지옥』은 지금 최규석이 공포라는 감정을 가장 잘 다루는 작가임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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