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잇 록(Paint It Rock)
"OO이 록을 망치는 중이야." 아쉽게도 OO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새부터 록은 안 멋져'라는 말에 모두 공감한다. 늦어도 90년대 이후 록 음악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언젠가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내가 변한 것일까? 록이 변한 것일까?' 훌륭한 록 밴드와 음악은 언제나 있었는데 과거에 안주한 내가 찾아 듣지 않은 것일까? 오래 생각했으나 결론 못 내린 문제일 것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록이 멋졌던 시대는 분명 있었다. "60~70년대에 나온 록 음반은 모두 살 만하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페인트 잇 록』은 아직 광휘라는 단어가 어울리던 시기 록의 매력과 에너지를 레전드 밴드를 중심으로 재현한다. 비틀즈부터 콜드 플레이까지, 고전기부터 비교적 현대까지, 록의 역사를 속도감 있게 휘갈겨 써내려간다. (비교적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끝에 소개되는 '요즘' 밴드인 콜드플레이도 벌써 데뷔 30년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록은 젊지 않다.) 부제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에 어울리는 촘촘한 계보도는 이 책을 읽어야 할 첫 번째 이유다. 마니아도 위대한 밴드를 모두 알지는 못한다. 책은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선사한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빠질 수 없다. 한창 치기 넘치는 이십 대 뮤지션들이 술과 약과 욕망과 성공에 취해 허세 부리고 비틀거리는 순간을 코믹하게 포착한다. 아슬아슬하게 수위 조절하는 개그와 스타들의 개성을 극대화한 그림은 재미를 끌어 올린다. 물론 최고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해석이다. 만화이기 때문에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더욱 감탄하게 하는 것은 문장이다. 말풍선 속 글과 장 사이의 논평과 해설은 결코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깊이와 정돈감으로 읽는 맛을 우려낸다. 덕분에 가장 고유하며 가장 대중적인 교양서가 될 수 있었다.
왁자지껄한 웃음에는 쓸쓸함이 섞여 있다. 록의 황금기는 지난 지 오래고, 다시 오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비틀즈-레드 제플린-메탈리카-너바나가 그랬듯 각 10년을 대표하는 밴드를 묻는 말은 2000년 이후 무의미해졌다. 그럼에도 현실 혐오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좋은 시절을 돌아보는 향수는 아름답다. 또한 '과거'의 위대한 음악을 듣고 즐기는 사람은 '현재'의 우리다. 명반을 CD 장식장이 아닌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로 보유한다고 해도 이 책과 함께 록의 쿨함과 대안 정신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100쪽이 추가된 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