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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Jan 16. 2022

밀실은 관 속보다 불길하다.

세 개의 관(1935) 존 딕슨 카

[세계 추리문학전집] 01/50


"고전 미스터리라면 좀 알지. 아서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 모리스 르블랑, 앨러리 퀸, 조르주 심농 그리고······." 여기서 더 잇지 못하거나 추리소설 황금기 독서를 확장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읽을 책으로 『세 개의 관』을 택하는 것이 좋다.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작품의 탁월함이다. 수많은 베스트 추리소설, 최고의 밀실 추리소설 리스트에서 맨 위 자리에 올라있다. 다음 이유. 존 딕슨 카 세계의 대표 탐정 기디언 펠 박사가 쏟아내는 두 번의 장광설을 빼놓을 수 없다.



1번 장광설은 17장 '밀실 강의' 전체다. 일반적 소설 흐름을 따라가던 이야기를 멈추고, 밀실 살인의 역사와 유형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이때 펠 박사는 자신이 소설 속 인물임을 밝히며('나는 내가 등장하는 소설 속에서') 제4의 벽을 넘나드는 유머를 선보이기도 한다. 이 짧은 강의의 수강자는 책이 발표된 1935년에 이미 밀실 트릭이 무르익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또한, 고전 미스터리의 초심자 독자라면 앞으로 만나게 될 다양한 밀실 트릭을 일별할 수 있어 유용하다.


2번 장광설이자 강의는 사건의 전모를 해설하는 마지막 장 '사건 해결'이다. 복잡하게 꼬여 있던 실마리를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여 단칼에 풀어 버린다. 이 추리를 읽고 책을 처음부터 다시 본다 해도 독자는 예측하기는커녕 따라가기 힘든 복잡하고 정교한 트릭이 겹쳐 사용되었다. 작가는 여유로움까지 자아내는 탐정 필 박사가 이 추리의 지배자임을 초반부부터 충분히 암시한다. 제목 '세 개의 관'에 얽힌 비밀과 비극의 원천을 필 박사가 굉장히 이른 시점에 공개하게 할 정도다. (그럼에도 의혹을 하나씩 더해가며 긴장을 끝까지 팽팽하게 유지한다는 점도 매력을 더한다.) 고전 추리소설의 탐정은 모두 이렇게 전지전능했나? 궁금증을 느낀다면 이 의문을 계속 안고 또 다른 황금기 추리소설을 읽어 볼 일이다.


밀실 살인이 전부가 아니다. '거리'의 살인도 있다. 밀폐된 방과 활짝 열린 거리. 대조되는 두 공간에서 죽음이 연결되는 점도 흥미롭다. 두 수수께끼의 불가능성에 대해 비현실적이라 말하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 작가는 마술사 오러크의 입을 빌려 말한다. 마술 공연의 관객은 속임수를 알기 전에는 감탄하고 속임수의 설명을 들으면 실망한다고. '합의된 거짓'이라는 점에서 마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이 있는 은유다. 『세 개의 관』을 읽는 것은 완벽한 마술을 즐기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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