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의 밤(1931) 조르주 심농
[세계 추리문학전집] 02/50
카뮈, 지드, 포크너, 헤밍웨이, 마르케스 등 20세기 문학 거장들이 극찬한 작가 조르주 심농이 100편 넘게 이어간 시리즈의 주인공. 매그레 반장이다. 모자와 파이프가 상징인 거구 사나이의 매력은 대체 무엇인가 탐구를 시작할 때 한 가지 의문이 찾아온다. "대표작이 뭐지?" 추리문학상을 받았거나, 역대 최고 추리소설 100선에 선정되었거나, 심농 마니아 소설가들이 필독서로 콕 짚어준 작품을 찾아보아도 자료가 (지금 국내 기준으로는) 부족하다.
만약 작가주의 영화 팬이라면 적절한 첫 책은 『교차로의 밤』이다. 시리즈 최초로 영화화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장 르누아르. 영상으로 옮겨진 이유는 바로 예상된다. 스타일리시한 빛, 어둠, 그림자 묘사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컬러보다는 흑백 표현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흑백 영화 시대였던 1930년대의 감독이 눈독 들일만 하다. 다음은 작품을 이끄는 캐릭터 엘세의 존재감이다. 하드보일드 소설 속 팜파탈의 치명적 오라를 분출한다. 실제 배우가 어떻게 현실화했을까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영화가 보고 싶어질 정도다.
영미일이 아닌 유럽 추리소설이기 때문인지 혹은 심농 특유의 인장이 새겨졌기 때문인지, 낯섦과 새로움 사이 독특한 무드를 전달한다. 처음 심농을 읽는 독자가 만나게 될 말줄임표가 가장 많은 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말줄임표는 작품 전반의 밀도를 낮춘다. 긴장보다는 나른함을 더한다. 나아가 여유로움까지 느껴지는 독특한 효과를 낸다. 또한,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 형사 이야기 역시 처음일 것이다. 매그레 반장은 용의자를 심문한 경찰청에서 사건이 벌어진 세 과부 교차로로 옮겨간 뒤 거의 이동하지 않는다. 자연히 발로 뛰는 수사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필요한 조사는 동료 형사에게 의뢰한다. 정보는 통화로 얻어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번득이는 직관으로 사건의 전모를 꿰뚫는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을 한 자리에서 말로 혼자 모두 해설해버린다. 지나치게 완전무결하다. 그렇지만 낭만적이기도 하다. 백 년 전은 시종일관 품위를 잃지 않고 매끈하게 수수께끼를 푸는 형사나 탐정 캐릭터가 활약할 수 있었던 시대다. 이 같은 전지전능한 추리 그리고 말줄임표의 남용, 직선보다는 곡선에 가까운 묘사와 서술이 심농 소설을 관통하는 특징일까. 이 궁금증을 풀고 '심농의 대표작은 한 편이 아닌 매그레 시리즈 전체'일 것이라는 가정을 확인하기 위해서 두 번째 매그레 읽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