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환회 Feb 13. 2022

가면 쓴 청년의 매혹과 광기

재능있는 리플리(1955)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세계 추리문학전집] 05/50


스물다섯 청년 톰 리플리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야박한 고모와 함께 자랐다. 불완전한 정서와 완벽한 언변을 지녔으며 변변한 직업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조선 회사 사장 허버트 그린리프가 이탈리아에 머물고 있는 아들 디키를 찾아가 본국에 돌아오도록 설득해 달라고 의뢰한 것이다. 두둑한 경비까지 지원받은 톰 리플리는 이탈리아 바닷가 마을로 찾아가 디키를 만난다. 그는 톰이 평생 욕망했던 모든 것을 지니고 있었다. 부러움과 자기 연민을 느낀 톰은 디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최우선 과제는 디키가 자신을 좋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디키는 기이한 남자 톰이 선을 넘어 가까워지는 것은 경계한다. 결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 단둘이 탄 보트 위. 톰은 디키의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직접 디키가 되기로 결심한다. 노로 머리를 내려쳐 죽인다. 발을 헛디뎌 자신도 바닷물에 빠져 죽을뻔한다. 겨우 보트에 기어 올라와 살아남는다. 평생 물을 두려워했던 톰의 인생은 생명의 상징이기도 한 '물'에서 다시 시작된다. 이때 두 남자의 피와 타액이 섞이는 묘사는 상징적이다. 톰은 이제 키도 체중도 용모도 비슷한 디키 그린리프로서 살아간다.


톰은 주어진 돈을 마음껏 쓰며 꿈꿔왔던 삶을 영위한다. 단, 살인을 통해 성취한 이중 인생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살인이 필요하다. 거짓말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계속 새로운 거짓말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톰의 천재적인 재능이 빛을 발한다. 알리바이를 위해 무한히 생산하는 거짓말들은 오직 작가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다. 자연히 이 사기극의 결말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위장의 지속일까, 체포일까, 죽음일까. 적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리플리 시리즈'는 이후에도 총 네 편이 더 이어졌음을 알기 때문이다.


리플리 5부작은 36년에 걸쳐 완성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심혈을 기울인 대작이자 대표작이다. 정체성을 바꿈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창조해낸 범죄자의 이상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신분 바꿔치기 설정은 『화차』와 같이 오늘의 미스터리까지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너무 매력적으로 그린 점은 돌발적이다. (톰은 디키를 죽이지 않고 잘 지낼 수도 있었을 거라고 후회하지만, 절대 미안해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인간의 내면은 선과 악 중 하나로 전적으로 기울지 않는 모호함을 지녔다는 것을 내비친다. 더없이 모던하다.

작가의 이전글 각본처럼 정교한 범행의 비밀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