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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Feb 20. 2022

미니 차를 타는 탐정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1972) P. D. 제임스

[세계 추리문학전집] 06/50


<칠드런 오브 맨>은 <그래비티>와 <로마>로 높은 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알폰소 쿠아론 영화 세계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이 때문에 원작자 P. D. 제임스가 SF 작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원작 『사람의 아이들』은 그가 남긴 유일한 SF 소설이다. 실제 그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영국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그랜드마스터 반열에 오른 소설가다.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작가의 대표작인 「아담 달글리시 시리즈」의 스핀오프격 작품이다. 두 편으로 소박하게 완결된 시리즈지만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표지에서 알 수 있듯 제목이 가리키는 직업은 탐정이다. 연인이자 동료이자 스승인 버니 프라이드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혼자 남은 코델리아 그레이. 그는 주위 예상과 달리 탐정 사무소를 계속 이끌기로 한다. 첫 단독 사건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청년 마크 칼렌더의 자살 사건이다. 코델리아는 무대인 케임브리지로 떠난다. (작가가 수학한 케임브리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어떻게'보다는 '누가', '왜' 죽였는지를 알아내야 하는 음울한 사건 해결에 착수한다. 그냥 여자 탐정이 아닌 '젊은 초보 여자' 탐정의 활약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가장 큰 매력은 물론 코델리아 그레이의 존재다. 추리 자체만큼 사건을 통해 변모하는 코델리아의 성장에 주목하는 것이 이 모험담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아마추어 혁명가의 자식이면서 수녀원 학교에 다닌 엉뚱한 배경을 지니기도 한 그는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돌파력을 지녔다. 인간 존엄성을 지켜주는 담대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미니 차를 몰고 현장을 누비는 탐정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그전까지 남자 탐정의 보조 역할에 머물거나 아니면 아예 등장하지 않았던 추리소설 속 여성 캐릭터의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이상향을 제시한다. 오늘날의 미스터리에서도 코델리아 같은 단독자 여성 탐정, 해결사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 점을 생각하면 성취가 크다.


클라이맥스가 고조되지 못하고 갑자기 마무리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과격하면서 감동적인 전복과 스릴이 있는 진짜 엔딩이 기다린다. (경시청이 진작 수사를 잘할 수 있었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움을 남기지만.) 아름답고 세밀한 표현도 빼놓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이사벨의 첫인상 혹은 짧은 뱃놀이를 떠난 오후 시간 묘사는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를 두고 '여성 작가다운'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책을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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