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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Mar 13. 2022

신본격 미스터리 탄생의 격정 신호탄

십각관의 살인(1987) 아야츠지 유키토

[세계 추리문학전집] 09/50


"한때 일본을 풍미했던 '사회파' 식의 리얼리즘은 이젠 고리타분해." "역시 미스터리에 걸맞은 것은 명탐정, 대저택, 괴이한 사람들, 피비린내나는 참극, 불가능 범죄의 실현, 깜짝 놀랄 트릭⋯⋯, 이런 가공의 이야기가 좋아." 『십각관의 살인』은 1장 도입부부터 사회파 미스터리를 부정하고 본격 미스터리의 미덕을 칭송한다. 이 패기 넘치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데뷔작 『십각관의 살인』으로 아야츠키 유키토는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 시대의 개막을 선언한다. '관 시리즈'는 이후 여덟 편이 더 이어지며 현대 본격 미스터리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다.



오이타 O시 K대학의 미스터리 연구회 멤버 일곱 명은 몇 년 전 참혹한 4중 살인이 벌어졌던 무인도 츠노시마로 탐사를 떠난다. 교통도 통신도 전기도 모두 차단된 섬에는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지은 십각형 건물, '십각관'이 있다. 서로를 '엘러리, 카, 르루, 포, 아가사, 올치, 반'이라고 부르는 멤버들은 한 명씩 죽음을 맞는다. 고전 미스터리 거장들에게서 빌려 온 닉네임. 당시에도 철 지난 패턴으로 여겨졌던 '폭풍의 산장' 플롯의 활용. 연속 살인, 정교한 트릭, 천재 탐정의 활약. 모두 추리의 고전미학을 오늘로 소환하는 요소다.


명탐정은 섬 밖 육지에 있다. 지금은 연구회를 탈퇴한 왕년의 명콤비 가와미나미와 모리스 그리고 나카무라 세이지의 동생인 코지로의 친구이자 '승려 탐정'인 시마다 기요시다. (가와미나미와 시마다는 후속작에도 등장한다.) 가와미나미는 발로 뛰는 탐정이고 모리스는 안락의자 탐정이다. 시마다는 천재적 직관으로 츠노시마 참사의 퍼즐을 단숨에 맞춰 버린다. 시마다는 한 번도 판단 착오를 겪지 않는다. 과격한 추리가 하나도 빠짐없이 적중하는 것이 오히려 반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대신 지금 섬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의 범인과 동기는 마지막에야 공개된다.


『십각관의 살인』을 위시한 초기 신본격 작품들은 일본 문단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문학성과 현실감이 없는 오락일 뿐이라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현명한 독자는 '계통'을 다른 한쪽을 배제하는 기준이 아닌 소설을 더 다채롭게 즐기기 위한 정보로만 참고한다. 작가 역시 서두에서 사회파 미스터리를 비판했지만, 패기와 추리 애호의 산물로 긍정할만하다. 결국, 원형적 추리문학의 본질을 재현한다는 열망을 야심 찬 데뷔작을 통해 이뤄낸다. 그 본질은 물론 재미다. 무려 '재미'가 있는 소설에 무엇을 더 요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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