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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Mar 06. 2022

(주문하시지 않은) 폭탄 왔습니다.

살의의 쐐기(1959) 에드 맥베인

[세계 추리문학전집] 08/50


거칠거나 혹은 예리하거나. 범상치 않은 외모를 지녔지만, 한편으로 천진난만한 소년 같은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는 남자들. 그들이 서로 악의없는 풋풋하고 상스러운 농담을 건네는 곳. 우리가 형사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상이다. 에드 맥베인은 이러한 '미국' 경찰 소설의 전형을 정립한 작가다. 「87분서 시리즈」는 그가 『경관혐오』(1956)를 시작으로 50년 동안 이어간 경찰 소설 분야는 물론 소설 문학 전체를 놓고 봐도 기념비적인 거대한 연작이다. 제목만큼의 날카로움이 박혀 있는 초기 걸작 『살의의 쐐기』도 형사실 묘사로 시작된다. 온화한 10월 초 평범한 오후의 사무실은 지극히 평화롭다.



죽음의 화신이 들어섬과 동시에 분위기는 돌변한다. 전날 형무소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범죄자 프랭크 도지의 아내 버지니아 도지. 그는 남편을 체포한 형사를 심판하러 방문한 것이다. 한 손에는 38구경을 한 손에는 니트로글리세린이 담긴 가방을 쥐고 있는 그는 형사실의 사내들을 한 명씩 무장해제시킨다. 다만 머리를 날리러 온 스티브 카렐라는 자리에 없다. 그가 돌아오기 전 사태는 수습될까? 이야기 시작 후 열 페이지도 안 되어 벌어진 폭발 직전의 위태로운 긴장 상태는 끝까지 이어진다.


같은 시간 카렐라는 백만장자 자살 사건을 수사하는 중이다. 그는 이 죽음이 타살이라고 의심한다. 하지만 현장에는 자살 추정 증거만 남아있다. 밀실이기 때문이다. 87분서 사무실에서는 인질극이, 대저택에서는 밀실 살인이 진행된다. 두 공간에서 동시에 작동해 돌아가는 두 미스터리의 병립은 작품을 지탱하는 큰 축이다.


1950년대 말 발표된 소설에는 '징집', '한국전', '마흔여덞 주' 등의 언급이 나온다. 그 후에도 2000년대까지 이어진 「87분서 시리즈」는 20세기 후반 미국 사회의 천태만상을 묘파한다. 작가 자신도 이렇게 길게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 87분서의 남자들은 언제나 30대다. 코난과 그의 친구들처럼 나이를 먹지 않는다. 작가는 시간 법칙을 거스르는 대신 항상 같은 모습으로 독자와 호흡하는 인물의 친숙함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 '한결같음'은 경찰 소설에 어울리는 미덕이다. 소동은 결국 수습된다. 밀실 살인을 해결하고 복귀한 카렐라는 영문도 모른 채 타자기 앞에 앉아 보고서를 쓴다. 끔찍한 하루 다음에도 평소 같은 내일이 이어질 것이다. 경찰은 그런 한결같은 직업이고, 형사실은 그런 한결같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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