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신부의 순진(1911)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푸아로보다도 키가 작고 인상도 어리숙한 신부 브라운. 매그레보다도 몸집이 크고 힘이 셀 것 같은 전직 거물 도둑 플랑보. 브라운 신부는 두 번이나 플랑보의 절도를 저지한다. 신부님 덕분에 회심한 플랑보는 탐정이 된다. 『브라운 신부의 순진』은 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콤비가 온갖 사고 지역을 순회하며 펼쳐내는 추리 모험담을 담고 있다. 첫 단편 「푸른 십자가」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 이야기에서 곧 역할이 바뀐다. 악당은 동료가 되고, 경찰은 악당이 된다. 그만큼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의 탐구가 이 시리즈의 주요 관심사다.
브라운 신부, 셜록 홈스, 에르퀼 푸아로는 세계 3대 탐정이라 불린다. 다른 두 거인에 비해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듯한 브라운 신부는 직업부터 의아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신부와 탐정은 겹치는 점이 많다. 가장 죄를 자주 접하는 인물이다. 극 중에서 브라운 신부는 직업 때문에 다양한 범죄 수법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신부인 죄로 알게 된 걸세.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를 해주니까.') 온종일 선과 악, 죄와 벌을 생각한다. 덕분에 악인의 내면을 쉽게 헤아릴 수 있다. 무엇보다 이성을 중시한다. 최고 탐정의 덕목을 모두 갖췄다.
『브라운 신부의 순진』은 총 5권, 53편의 단편으로 이어진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첫 번째 단편집이다. 시리즈 중 최고 작품을 모은 이 책은 또한 가장 중요한 추리소설 중 하나로 평가되기도 한다. 1911년에 발표되었으나 미스터리의 구조와 이를 파헤치는 추리는 매우 현대적이고 세련되었다. 대표작 중 하나이자 시작점인 「푸른 십자가」부터 비범한 통찰력을 선보인 브라운 신부. 그가 「사라딘 대공의 죄」에서 심어놓은 설정은 현대 범죄물에서도 낯설지 않은 신분 변경이다. 매우 신선하다. 「부러진 검의 의미」에서 한 개의 죄를 덮기 위해 기획한 대참사는 상상 이상의 규모 때문에 충격을 안기기까지 할 정도다.
'체스터턴적이면서 브라운 신부적인' 특성. 그것은 죄에 가려진 인간성을 주목한다는 것이다. 「이즈리얼 가우의 명예」 속 미스터리는 사실은 악과 탐욕이 아닌 선과 정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세 가지 죽음의 흉기」는 선한 의도가 뜻하지 않게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고, 표면과 내면을 함께 봐야 함을 역설한다. 이처럼 작가는 재미와 성찰이 있는 추리소설이라는 고유한 인장을 만들었다. 작품의 품격을 높여준 간결한 서술, 담백한 구성, 여운 짙은 마무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