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핀댄서(1998) 제프리 디버
'안락의자 탐정'은 말 그대로 실내 공간에서 직관과 분석을 통해 사건을 추리하는 탐정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인물은 미스 마플. 현장에서 발로 뛰는 활동가형 탐정과 대비된다. 사실감을 강조하는 현대 소설에서 내세우기 쉽지 않은 유형의 캐릭터다. 천재 범죄학자이자 과학수사의 일인자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온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링컨 라임은 변형된 안락의자 탐정이다. 부상 때문에 잠시 병원에 입원한 채 자료를 보며 역사를 추리하는 『시간의 딸』 그랜트 경위가 연상되지만, 훨씬 절망적인 상황이다. 친밀한 조력자인 '전 순찰경관 현 감식반원' 아멜리아 색스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준다.
지금은 누구나 덴젤 워싱턴을 떠올리는 링컨 라임과 역시 안젤리나 졸리와 겹치는 아멜리아 색스. 기묘한 콤비-커플은 각자의 머리와 손발을 모아 사건에 돌입한다. '링컨 라임 시리즈'의 시작 『본 컬렉터』를 잇는 두 번째 이야기에서 그들이 싸워야 하는 상대는 희대의 청부살인업자 '코핀댄서'다. 라임의 부하를 포함 여러 동료를 죽음으로 내몬 뉴욕 경찰의 숙적이다. 그가 노리고 있는 타깃은 무기 밀매업자 필립 핸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기로 한 민간 항공사 직원들. 이미 한 명은 죽었다. 남은 두 명을 보호하고 댄서를 잡아야 한다.
'괴물과 괴물의 대결'. 한 줄로 『코핀댄서』를 요약할 수 있다. 법과학의 신 라임은 아주 작은 조각과 가루, 즉 미량 증거물만 있다면 거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실제 가 보지 않은 현장을 완벽하게 파악한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색스의 혼잣말인데 독자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다. 상대인 댄서도 못지않다. 폭탄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원맨아미라 부를 만큼 가공할만한 살상력을 행사한다. 한 자리에만 머무르는 라임과 어디든 나타나는 댄서. 둘은 결코 마주칠 수 없다. 하지만 격렬하게 충돌한다.
누군가 먼저 함정을 판다. 상대는 함정을 간파하고 반격한다. 물론 이것까지 계획한 바였고 2차 공격을 가한다. 45시간 동안 치열한 두뇌싸움이 이어진다. 독자의 예상도 번번이 빗나간다. 반전의 연속이다. 단, 억지 반전 혹은 반전을 위한 반전이 아닌 개연성을 갖춘 뒤집기다. 소설이 숨을 쉬고 역동적으로 꿈틀거린다고 느끼게 될 정도다.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재미와 신선함이 반감되지 않을 엔터테인먼트 법과학 스릴러의 정점. 제4부의 마지막 비행부터 최종 해결에 이르기까지 절정을 유지하는 속도감과 폭발성은 바로 그 '양질의 증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