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탐정 사와자키는 일이 풀리지 않는다. 의뢰 전화를 받고 찾아간 집. 의뢰인이라 생각한 남자는 자신을 유괴범의 대리인으로 착각하고 험한 말을 쏟아낸다.(범인의 함정이었다.) 현장에 나와 있는 형사들의 눈길도 곱지 않다. 사와자키는 공범으로 연행된다. 형사들의 으름장에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그는 몸값을 건네주는 역할을 맡기로 한다. 예상 못한 공격을 받고 정신을 잃는다. 6천만 엔은 전달되지 못하고 공중에 뜬다. 며칠 후, 유괴당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소녀 마카베 사야카의 시체가 발견된다. 수사는 살인범 추적으로 전환된다.
사실 사와자키의 불운은 오늘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는 지난 7년간 7백 번 이상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의 사와자키입니다, 라는 말을 반복해왔다. 사무소장이었던 동료 와타나베는 8년 전 함정 수사 중 1억 엔과 각성제 3kg을 빼돌린 뒤 자취를 감췄다. 불똥은 사와자키에게 튀었다. 무언가 알고 있거나 협력한 것은 아닌가. 경찰 간부와 폭력조직 간부로부터 살기 가득한 관심을 받는다. 경찰, 폭력조직과 으르렁대는 한편 협력해야 할 때는 협력한다. 어두운 세계에 한 발 걸쳐 살아가는 동류의 존재임을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다.
운이야 어떻든 사와자키는 조사에 매진한다. 우선 의뢰를 수락했으므로. 그리고 자신의 실수가 영향을 줬을지도 모르는 죽음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제목 『내가 죽인 소녀』의 '나'를 찾아 대도시를 쏘다닌다. 책은 1989년 발표되었다. 배경인 80년대 도쿄 특유의 화려한 듯 쓸쓸한 밤의 무드를 차갑고 건조하게 그린다. 사와자키는 때로는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지만, 대부분은 거칠게 몰아붙이는 편이다. 감정보다는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군더더기 없이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냉철한 탐정의 이름은 끝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일본을 대표하는 하드보일드 시리즈의 성공작답게 이야기의 결이 거칠다. 야쿠자 하시즈메의 부상처럼 사건과 관련 없는 일화가 불쑥 끼어든다. 사건의 진실도 마지막 장에서 갑작스럽게 제시된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울퉁불퉁 불친절한 스타일을 하드보일드 계승자인 하라 료도 따라간 결과다. 페르소나 사와자키도 구시대 감성을 고수한다. 『기나긴 이별』의 필립 말로는 혼자 체스를 연습한다. 사와자키의 취미는 바둑이다. 작중 이용하는 전화 서비스를 30년이 지난 2021년 작 『지금부터의 내일』에서도 여전히 쓰고 있다. 휴대폰을 쓰는 탐정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