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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Dec 23. 2020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하여

[영화 후기,리뷰/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신작 추천/결말 해석]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Dick Johnson Is Dead)

감독 : 커스틴 존슨

출연 : 딕 존슨


어느 정도 현실인,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하여


2년 전쯤인가? 혼자 자취를 하던 때, 어느 날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에 쫓겨서인지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맞이한 그날 아침은 얕게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시작됐다. 아주 가끔씩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큰 변을 당하는 꿈을 꾸는 날이 있는데, 그 꿈에서 깨고 나면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자의로 상상한 것도 아닌, 무의식중에 만들어진 꿈속에서 겪은 것일 뿐이지만 그 심정은 이루 말하기 힘들다.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이한 건 딱 한 번뿐이었다. 3년, 곧 4년이 되어가는 그 일이 내 인생에 또다시 일어난다면 나는 그를 외면하고 싶을 것이란 막연한 두려움만을 가진 채 나이를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영화를 보게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인생의 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두렵고, 걱정되고 외면하고 싶은 ‘죽음’이란 단어. 사람은 언젠가 죽게 되고, 내 눈앞에 있는 소중한 이들도, 나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당연하고도 명료한 인생의 순리이자 자연의 이치. 사실 나는 아직 이 간단한 공식을 완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마주해야할 그 순간을 위해,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를 감상하며 인생에 대해, 죽음에 대해, 내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지나치게 무겁지도, 감정적이지도 않은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말이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다큐멘터리 촬영감독 커스틴 존슨이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 딕 존슨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체감하고 만들기 시작한 다큐멘터리다. 한 남자의 가짜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딕 존슨의 삶을 되짚고 또 그의 미래를 상상하며 천천히, 자연스레 이어진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에는 다른 이의 상처를 이해하고 감싸주던 훌륭한 의사이자 개방적이고 다정한 아빠인 딕 존슨을 바라보는 커스틴 존슨의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좋은 아빠, 좋은 어른, 좋은 친구였던 딕 존슨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를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게 추천하고 싶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시놉시스


영화감독인 딸이 노년의 아버지와 죽음의 상황을 미리 연출해보는 다큐멘터리



오랜 세월 정신과 의사로 살아오며 많은 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던 훌륭한 의사이자 자녀, 손주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다정한 아버지 딕 존슨. 그리고 꾸며내는 것보다 재밌는 현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인 딸 커스틴 존슨은 평소처럼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손주들의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힘껏 그네를 밀어주는 할아버지 딕 존슨. 딸 커스틴 존슨이 기록한 그들의 시간엔 웃음소리와 행복이 가득하다.



하지만 딸은 알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내고 있는 보통의 시간이 오래 남지 않았다는 것을. 80이 훌쩍 넘은 딕 존슨은 진료 내역을 헷갈려 하거나 환자를 중복으로 받는 실수를 반복했고, 기억력 또한 조금씩 감퇴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의사 생활은 무리라고 판단한 그는 은퇴를 결심하고 딸 커스틴 존슨은 아빠의 시간을 기록하기로 한다.



30여 년 전 쯤, 딕 존슨은 초콜릿 퍼지 케이크를 먹은 다음 날 심장마비를 겪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나 삶을 이어간다. 그의 아내는 7년 전 알츠하이머로 세상을 떠났다. 커스틴은 유일하게 엄마의 모습을 기록한 영상을 보며 “30년 동안 다큐를 찍었지만 엄마의 모습을 기록한 건 하나뿐이다.”, “총명하고 따뜻했던 엄마의 기록은 없다.”라고 말한다. 후회와 슬픔이 살짝 얹어진 그녀의 말 한마디는 부모님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마음을 다른 각도로 돌려놓았다. 총명하고 따뜻한 부모님의 모습을 지금이라도 기록해놓지 않으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나는 또 한 번 이런 생각을 했다.


                                                                        

아냐, 내 힘이 더 세잖아.


존슨 박사의 사무실 3415호의 불이 꺼지던 날. 3415호의 불은 계속해서 켜지겠지만, 존슨이란 이름은 다른 이름으로 바뀔 것이다. 달라지는 건 존슨 박사의 존재뿐이다. 존슨의 은퇴를 알리는 자동 응답기 음성이 깔리고, 부녀는 책장과 책상에 가득 차있던 짐을 옮긴다. 딸은 쇠약한 아버지의 짐을 대신 옮기겠다 말하고, 아버지는 아직 본인의 힘이 더 세다며 딸을 말린다. 80대에 접어든 아버지와 아직 젊은 딸. 어쩌면 아버지는 딸보다 더 약한 존재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에게 언제나 멋지고 힘센 슈퍼맨으로 남고 싶을 것이다. 진짜 아버지의 힘이 더 셀지는 알 수 없지만, 딸은 우선 자신의 힘이 더 세다는 아버지의 말에 반박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현실이잖아.


딕 존슨이 관에 들어간 모습을 본 그의 친구는 실제로 오래된 친구의 죽음을 눈앞에 둔 듯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분명 가짜인데, 진짜가 될 수도 있는 일. 촬영을 위해 준비한 관이지만, 어쩐지 반쯤은 현실 같다. 죽음은 당장엔 다가오지 않을듯하지만 사람이 언젠가 죽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딸 커스틴 존슨과 아버지 딕 존슨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아버지 또한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간 엄마처럼, 언젠가 우리의 추억을, 현재를 잊고 결국엔 내 곁을 떠나갈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커스틴 존슨은 의로운 이에게 천국을 이야기한다는 안식교의 가르침 아래 성장했다. 그녀는 의로운 아버지가 천국에 갈 것이라 생각한 걸까?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중간중간엔 천국처럼 꾸며진 장소에서, 딕 존슨이 바라던 소망들이 이뤄지는 장면들이 나온다. 딕 존슨의 어머니를 눈물 흘리게 했던 딕 존슨의 발가락이 곧고 예쁘게 펴지는 장면, 젊은 시절 아내와 춤을 추는 장면, 초콜릿 분수에 손가락을 푹 담가 맛보는 장면까지. 나에겐 이 독특한 천국에서의 순간들이 의롭게 살아온 딕 존슨이 언젠가 세상을 떠난다면, 꼭 천국으로 향하길 바라는 딸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만 준다면, 사랑이 아프고 힘들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이 아름답기만 하다면, 힘들거나 버텨야 하는 인생이란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언젠가 닥쳐올 이별에 대비해야 하고,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기억력이 좋고 총명했던 어머니가 어느 순간 알츠하이머에 걸려 모든 걸 잊는 상황이 와도 어떻게든, 그럭저럭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닥쳐올 이별과 시련, 절망과 슬픔. 나의 인생엔, 우리가 함께 겪는 시간엔 이 모든 경우의 수가 담겨있다.



사랑하는 이와 항상 행복할 순 없다. 언제든 그가 떠나거나 또는 그를 남겨놓고 떠나야 할 수도 있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도 예외는 없다. 딕 존슨의 기억력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아버지는 언젠가 같은 걸 물어보고, 딸의 말을 듣지 않을 거고, 본인의 개성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늘 똑같을 거라 믿었던 날도 사라질 것이다.



수프를 떠먹듯 빠르고 간단하게 1년이란 시간이 지나간다. 딕 존슨은 그의 어머니가 그랬듯 어느샌가 후손들에게 도움을 받는 나이가 된다. 자는 시간이 늘어나고, 오래된 과거는 기억나지만, 나이가 든 후의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딕 존슨은 촬영을 마치고 매번 앉았던 의자를 뒤로한 채 긴 소파에 온몸을 추욱 늘어트린 채 휴식을 취한다. 80대의 후반에 들어선 몸은 점점 더 편하고 긴 휴식을 찾을 것이고, 그 휴식이 지속되면 멀리 있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할 것이다. 딸은 아버지가 언젠가 떠날 것을 알고 있기에, 아버지의 죽음을 상상하고 먼저 겪어보며 언젠가 다가올 아버지의 긴 여행에 대비한다.



만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마음이 들까? 그건 알 수 없다. 사랑하는 이가 죽는 상상을 해봐도 그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만일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에 나오는 장면들처럼 그 인물이 죽는 상황을 연출해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리고 그 ‘만약에’라는 말은 언젠가 다가올 무거운 감정을 대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별이란 것을 준비하거나 대비하는 올바른 방법은 무엇일까?



이별을 상상하고 싶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건 결국 언젠가 다가올 시련과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이별 앞에서 우린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준비한다고 해서 그 아픔을 모두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를 보며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울러 ‘사랑하는 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떠올랐던 인물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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