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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Feb 02. 2021

억지로 밝힌 도쿄의 밤하늘에서 몇 개의 별을 찾다

[왓챠 영화 추천/결말 해석]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The Tokyo Night Sky Is Always the

Densest Shade of Blue, 2017)

개봉일 : 2019.02.14. (한국 기준)

감독 : 이시이 유야

출연 : 이케마츠 소스케, 이시바시 시즈카, 마츠다 류헤이, 이치카와 미카코, 사토 료


억지로 밝힌 밤하늘에서 몇 개의 별을 찾다


“달이 원래 저렇게 푸르렀던가? 도쿄에서만 그런가?”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 없이 매일을 살아가던 청년이 아주 오랜만에 달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온색보다는 한색이 잘 어울리는 도시, 천만 명이 모여 살지만 그만큼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도시. 도시 속 삶을 어떻게 생각하냐 묻는다면. 가장 먼저 ‘팍팍함’, ‘차가움’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를 것이다.


도시에도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날, 따뜻한 햇볕이 빨래를 보송하게 말려주는 날, 온기에 땀이 후끈 솟아오르는 날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도시는 ‘차갑다’는 이미지를 갖는다. 우리가 ‘서울’을 떠올리면 화려한 빛과 그 이면에 있는 쓸쓸함을 떠올리듯, 일본 청년들에게 비치는 ‘도쿄’라는 대도시의 이미지도 비슷한가 보다.



월세를 내고, 가벼운 청구서들 속에 적혀있는 무거운 돈들을 전부 납부하고, 미래를 위해 조금 아껴놓고 나면 수중엔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내가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무엇을 위해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걸까.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고민한다.


나 혼자 살아남기에도 벅찬, 누군가와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 신지와 미카. 두 사람의 내뱉지 못한 한숨은 턱밑까지 차올라있다. “진짜 사랑은 없어”라고 말하며 차가운 현실을 두 눈으로 직시하고 있는 미카와 거의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의 시선에, 어쩌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희망적인 삶을 꿈꾸는 신지. 억지로 밝힌 도시의 차가운 하늘 아래서 두 사람은 새로운 빛을 찾는다.



가장 짙은 파란색으로 물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둡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하늘은 가장 밝은 밤하늘일 수도, 그곳엔 진짜로 반짝이는 별 몇 개쯤이 떠있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어줄 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시놉시스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낮에는 간호사, 밤에는 술집에서 일하는 ‘미카’. 일용 노동직으로 일하며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지만 막연한 희망을 꿈꾸는 ‘신지’. 이들은 화려함과 고독함이 한 데 섞인 도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서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사랑은 없을 것 같던 도쿄의 밤하늘 아래, 방황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며 삶에 대한 희망을 함께 품기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세상을 미워해도 돼.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열심히 날고 있는 비행선처럼 열심히 달려보지만 특별할 것이 없는 나날이다. 줄지어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낀 나라는 존재는 널따란 자전거 주차장에 세워진 자전거 한 대와 다를 것이 없다.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숨결을 불어주기보단 사람들의 한숨을 먹으며 더욱 차갑게 반짝이고 있는 도시. 미카는 도시에 발을 들이고, 그 차가움과 무게에 익숙해진다는 건 나 자신을 죽이는 거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검은색 밤하늘을 억지로 밝힌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파란색이고, 차가운 도시 속에서 미카의 손톱에 칠해진 핑크색은 찾아볼 수가 없다. 곧 자라서 사라질 손톱 위 외엔 그 어디에도 부드러운 색은 없다. 홀로 살아남기에도 벅찬 생활,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거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함부로 꿈꾸지 못할 일이다. 미카에게 진짜 연애란 없는 것이다.


                                                                        

청구서 보는 게 소름 끼쳐.


신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의 시야 대신 선명한 오른쪽 눈의 시야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세상의 절반만을 보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입을 쉬지 않는다. 동료들은 그런 신지를 ‘이상한 애’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금세 웃으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던지는 신지를 미워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좋아한다. 연봉은 200만 엔이 될까 말까 한 직업, 월세 6만 5천엔, 수도세, 전기세, 통신 비용. 테이블 위에 쌓인 얇은 종이들은 바람에 휙-날아갈 만큼 가볍지만, 종이에 적힌 현실의 무게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어항 같은 도시 속에서 만난 나와 같은 이상한 애


천만 명이 사는 도쿄에서 한 사람을 여러 번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항상 기온이 유지되는 어항처럼 항상 차가움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 작은 거북이 같은 두 사람. 푸르지만 예쁜 달이 빛나는 도쿄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가장 잘 아는 사이가 된다. 미카는 눈이 잘 안 보인다는 걸 숨기기 위해 쉼 없이 떠들어대는 신지의 아픔을, 신지는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미카의 상처를 알게 된다.



사람은 언뜻 보면 강해 보이지만, 말 한마디면 쉽게 고독을 얻을 수 있고, 작은 흉터 하나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연약한 존재다. 신지와 함께 일하는 청년들이 매일같이 신나는 노래를 틀고, 술을 마시며 춤을 추는 건 젊음의 혈기를 뽐내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건 어두운 밤에 밀려올 슬픔을 힘껏 털어내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예고 없이 차오르는 차가운 슬픔이 가득한 도시에서 다른 이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와 비슷한 이상한 애를 만나는 것도, 이상한 애에게 나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도.


                                                                        

사랑은 많은 사람을 죽였어

미카는 사랑도, 사랑한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언젠간 버려질 것이니. 신지는 사랑했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그 감정을 이제 와서 말하는 것도,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의미가 없으니.


매일을 쪼들리며 살아가는 삶에 사랑이란 것이 필요할까? 아니, 어울리기나 할까 고민해 본다. 사랑을 하면 돈이 들고,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을 쪼개 사랑에 마음을 써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사랑이 내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멋지진 않아도 이렇게라도 살고 있으니, 이렇게라도 살아있으니 내 앞에 반짝이고 있는 감정 하나쯤은 손에 꽉 쥐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가장 짙은 파란색을 한 하늘 아래지만, 반짝이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진 말자. 내가 세상을 반도 못 보고 있다고 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조차 못 보는 사람도 많은걸.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하여 그 무슨 일이 모두 나쁜 일일 거라는 보장도 없으며, 아무 일 없는 아침을 맞이할 확률도 생각보다 높다.



우리는 행복의 의미를 몰라도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 지갑에 여유가 없다고 해도 진짜 위로를, 사랑을 만난다면 마음껏 사랑하고 위로받을 자격이 있다. 미카와 신지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 마음껏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의 어깨를 맞대거나 기댈 수 있는 존재. 사랑했다거나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이 아닌 지금 너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미카와 신지를 붙잡던 과거의 푸르름이 허물어지고 분홍색의 꽃이 피는 아침이 찾아온다.



완전한 검정이 없는, 어둠을 억지로 밝혀놓은 화려한 도시에서 진짜 반짝이는 것을 품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들에게 <도쿄의 밤하늘은 가장 짙은 블루>는 위로와 또 다른 색을 가진 눈물이 될 것이다. 이 감정을 천천히 아주 깊게 들이마셔보라. 어쩌면 이 어두운 하늘에 나를 위한 별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이 생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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