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경 May 20. 2020

<케빈에 대하여>-표현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영화 후기,리뷰/에즈라밀러 , 왓챠, 소시오패스 영화 추천/결말 해석]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개봉일 : 2012.07.26. (한국 기준)

감독 : 린 램지

출연 : 틸다 스윈튼, 에즈라 밀러, 존C.라일리, 시옵한 폴론, 애슐리 게라시모비치, 안소니 델 네그로                                                                               

표현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관계


벗어날 수도 선택할 수도 없었던 가족이라는 운명과 엇나간 애착.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키워야 했던 미숙한 엄마는 끝을 알 수 없는 괴로움을 떠안았고 무지한 아빠는 비극을 재촉했다. 틸다 스윈튼의 깊고 진한 동공이 허공에 머무를 때면 공허함과 슬픔의 냄새가 밴 붉은빛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케빈에 대하여는 선정성이나 폭력성이 짙은 건 아니지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심리적인 압박감과 은유적인 표현들이 잔혹한 상황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함과 동시에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듯하다.



주인공 에바(틸다 스윈튼)의 아들인 케빈(에즈라 밀러, 아역 : 제스퍼 뉴웰)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름과 동시에 소시오패스의 성향을 타고난 아이다. 대놓고 잔인한 괴롭힘은 아니지만 케빈은 마치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에바의 심리를 손에 쥐고 뒤흔드는데.. 이게 보는 사람마저 숨이 턱 막힐 만큼 정확하고 계획적이다. 




소시오패스는 전 인류의 4%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꽤나 흔하게 갖고 있는 성향이다. 하지만 우리가 소시오패스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 흔치않다고 느끼는 건 그들이 자신의 성향을 숨기고 계획적으로 이용하는데 능통하기 때문이다.


케빈은 그런 아이다. 폭발적인 분노와 광기로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이가 아니었으며 아빠 프랭클린 앞에선 오히려 천사 같은 아들이었다. 무조건 자신의 손을 들어주고 끝없는 사랑을 퍼담아주는 아빠에겐 착한 아들. 유년기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엄마 에바 앞에선 눈을 번뜩이며 발톱을 세우는 아들이다. 




<케빈에 대하여>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미숙한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들의 모습, 남들과 다른 아들에 지쳐가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싸한 배경 설정과는 다르게 유쾌하고 부드럽게 감싸 안는 블루스 리듬이 이질감과 괴이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케빈에 대하여 시놉시스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여행가 에바에게 아들 케빈이 생기면서 그녀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에바의 삶은 케빈의 이유 모를 반항으로 점점 힘들어져만 간다. 에바는 가족 중 유독 자신에게만 마음을 열지 않는 케빈과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지만 그럴수록 케빈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에바에게 고통을 준다. 세월이 흘러 청소년이 된 케빈은 에바가 평생 혼자 짊어져야 할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살인마다!, 죽어라


빨간 빛깔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토마토가 사방에서 터지고 있다. 에바는 토마토를 흠뻑 뒤집어쓴 채 무방비하게 누워있다. 비난이 가득한 상상에서 깨어난 에바는 여전히 빨간 빛깔의 페인트가 뒤덮여있는 집 한가운데 누워있다. 흐트러진 집안과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약통, 무기력하게 빠져버리는 문 손잡이. 그 집에 누워있는 에바 또한 멀쩡하지 않은 모습이다. 앙상한 발을 땅에 내디디며 집 밖으로 나간 에바에겐 따가운 시선들이 쏟아진다.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간단한 서류 정리만 해도 OK’인 여행사 직원으로 취직한 그녀에겐 삶의 의욕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에바는 프랭클린이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다른 부부들처럼 아이를 가졌다. 그녀는 멍한 눈동자로 서류를 스캔하며 과거를 떠올린다. 동그랗고 아름다운 배를 뽐내는 산모들 사이에 앉아있는 에바, 달음박질치는 귀여운 꼬마 발레리나들 사이 걸어가는 에바. 하지만 현재 에바의 앞엔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온 듯, 교도소 면회실에 앉아있는 아들 케빈이 있다. 



에바의 아들 케빈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아니, 남달랐다기보단 이상했다고 표현해도 적절치 않은 언행이라 지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난히 말이 느리고 엄마의 행동에 대한 반응도 하지 않았던 케빈이 걱정된 에바는 병원을 찾지만 이렇다 할 답을 얻을 순 없었다. 끝도 없이 울어대던 갓난쟁이 시절부터 엄마의 말에 반응을 하지 않는 유소년기까지. 준비 없이 케빈의 존재를 품에 안았던 에바는 남들과 다른 케빈의 모습에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한다.


                                                                       

난 네가 태어나기 전이 더 행복했어.


에바는 어린 아들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는다. 케빈은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은 어린아이였고 계속해서 엄마를 바라봤지만, 에바는 사랑하지 않는 아들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에바는 ‘위대한 모험가’라고 지칭될 만큼 많은 모험을 하며 여행기를 집필했다. 직접 모험하며 밟은 땅의 면적만큼 높이 쌓여있었던 에바의 캐리어는 아들 케빈이 생기는 순간 멈춰버리다 못해 무너져내린다. 모든 걸 포기하고 케빈을 키워온 에바의 마음은 준비 없이 다가온 충격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렸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아들에 대한 못마땅한 마음만 끝없이 자라고 있었다.



프랭클린은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바는 반대했지만 결국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에바는 꿈과 기억을 담은 세계지도와 모험의 흔적들을 자신의 방 벽면에 빙 둘러 붙인다. 케빈은 그런 에바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나도 안 예뻐’라고 말하던 케빈은 결국 에바의 지도에 물감을 덕지덕지 칠해버린다. 



케빈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에바를 증오한다. 익숙한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며 나는 엄마가 익숙하지만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덤덤하게 내뱉는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케빈은 에바의 감정을 철저하게 이용할 줄 아는 아이였다. 숫자 공부를 하자는 에바의 앞에서 몇 마디 웅얼거림을 내뱉다가 순식간에 자기가 알고 있는 숫자를 전부 쏘아내기도 하고, 화가 난 에바의 실수로 팔이 부러지자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의사 선생님을 혼자 보겠다며 에바의 피를 말리고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까지 한다. 그리고 자신이 불리하다 싶으면 팔에 남은 흉터를 긁으며 에바의 죄책감을 이용한다.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듯 두려움과 증오감이 가득했던 에바와 케빈의 관계. 왠지 적막하고 딱딱했던 집안의 분위기는 둘째 딸 실리아의 탄생과 함께 조금 풀어지는 듯 보인다. 케빈 또한 동생의 탄생과 함께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딱 한 번인 게 문제지만... 아무튼 케빈은 에바에게 기대어 에바가 읽어주는 로빈후드 동화책의 내용을 조용히 듣고 있다. 처음 보는 케빈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던 프랭클린은 케빈에게 작은 과녁과 함께 활을 선물한다. 케빈은 과녁을 향해 활을 쏘다가 갑자기 뒤돌아 에바가 앉아있는 창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마치 너도 쏴버리겠다는 경고처럼 말이다. 



케빈은 분명 자신이 에바를 증오한다고 생각한다. 케빈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지친 에바는 대체 왜 이러냐고 케빈에게 묻는다. 케빈은 에바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한다. ‘아무 의미 없어.’ ‘그게 중요해’ 라고 말이다. 케빈은 자신이 에바를 싫어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를 향한 괴롭힘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아들임을 이용해 더욱 가깝고 자극적이면서도 타인의 눈엔 띄지 않는, 지독한 괴롭힘을.



에바는 실리아를 사랑한다. 프랭클린 또한 실리아를 사랑한다. 케빈과 다르게 평범하고 순수하며 애교도 넘치는 둘째 딸 실리아는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다. 케빈을 완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엄마 에바도 실리아에겐 달랐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에게 에바도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케빈도 엄마의 변화를 알고 있었다. 나와 다르게 저 존재를 완전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케빈은 에바가 사랑하는 실리아를 망가트려버린다. 실리아의 기니피그를 음식물 분쇄기에 넣어 죽음을 맞이하게 만들고, 그 타이밍에 맞춰 에바가 높은 선반에 올려놨던 배수구 뚫는 액체를 싱크대에 내려놓는다. 실리아는 케빈의 계획대로 배수구 뚫는 액체로 인해 한쪽 눈을 잃게 된다.


실리아의 사고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식사시간. 가정의 주인 또는 큰 어른이 앉는 식탁의 가운데 자리에 앉아 평소엔 먹지 않던 리치의 껍질을 한꺼풀씩 벗기며 입안에 넣고 잘근잘근 씹어대는 케빈의 모습이 마치 눈알을 씹어대는 것처럼 역하게 느껴진다.



 에바는 케빈이 실리아를 위협하고 있음을 느끼고 케빈을 더욱 경계하게 된다. 프랭클린은 천사 같은 아들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경계하는 에바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프랭클린 앞에서의 케빈은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는 순수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케빈은 그렇게 프랭클린을 자신의 편이자 하수인 같은 존재로 만든다. 완벽하게 케빈을 믿고 있던 프랭클린은 에바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라 생각하고 이혼까지 생각하게 된다. 양육권은 당연하게도 프랭클린과 케빈, 에바와 실리아로 나뉘게 될 분위기였다.



잠시 잠에서 깼던 케빈은 부모의 이혼에 대한 대화를 듣게 된다. 부모의 이혼과 프랭클린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케빈은 억눌려있던 광기를 분출하기 시작한다. 16살 생일이 오기 전, 그는 자전거 자물쇠로 강당을 봉쇄하고 아이들을 활로 쏴 살해한다. 마치 가축을 도살하듯이, 그리고 사냥 실력을 뽐내는 그 옛날의 귀족처럼 말이다.



에바는 케빈의 학교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숨을 헐떡이며 달려갔지만 자신의 아들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살인자로 경찰의 손에 붙잡히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게 된다. 케빈은 학교에 있는 학생들과 프랭클린, 실리아를 활로 쏴 살해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 에바는 죄책감과 충격에 짓눌려 환각과 망상에 시달린다. 



가족을 모두 잃은 에바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피해자들의 가족에게 욕설과 페인트 테러를 맞는다. 하지만 에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자신의 아들이 살인자기에 그 존재를 키운 것은 자신이기에. 묵묵히 집에 묻어있는 페인트를 지우며 아들의 죗값을 함께 받고 있는 에바. 그녀는 살인자의 엄마였다.



에바는 케빈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준비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케빈의 존재가 벅차고 무거웠지만 에바는 어떻게든 아들이란 존재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에바는 살인자가 된 아들의 물건을 불태우거나 버리지 않고 온전히 챙겨와 작은 집 한편에 케빈의 방을 만들고 매일같이 이불을 정리하고 청소한다. 그녀는 케빈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다. 에바는 케빈이 성인 교도소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제는 말해줘, 왜 그랬어?’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차갑고 날카로웠던 케빈의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케빈은 본인이 에바를 증오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낀 순간부터 여러 명의 사람들을 활로 쏴 살해했던 그날까지, 나는 엄마를 증오하고 어쩌면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모두 본인의 생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케빈의 착오였을지도 모른다.



케빈은 16살 청소년이 됐지만 여전히 어릴 때 입었던 작은 티셔츠를 입고 있다. 어릴 때와 다르게 말도 잘하고 활도 잘 쏘며 다른 친구들에 비해 부족할 것 없는 청소년이 되었지만 케빈은 아직 유아기의 상처와 기억에 머물러있다. 



케빈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더욱 엄마의 관심을 원했고 사랑받지 못한 케빈의 소시오패스 성향은 자랄수록 점점 더 강해졌다. 만일 에바가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하고 케빈에게 실리아만큼 사랑을 주었다면, 케빈이 타고난 소시오패스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에바와 케빈은 서로의 인생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케빈은 에바가 읽어준 로빈후드 동화책의 영향을 받아 활쏘기를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는 새 엄마가 읽어준 그 동화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케빈이라는 아들은 에바에게 벅찬 존재였지만 에바에게 엄마로서의 책임감을 일깨워주었고 에바가 케빈에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관계의 끝은 비극이었고 에바에게 남은 건 살인자 아들뿐이었다.


 


살인자의 엄마로 산다는 것,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 밑에서 자란다는 것. 나는 둘 중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 영화를 보고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는..  소시오패스 살인자인 케빈의 존재에 대한 찝찝함과 방향성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에바의 서툰 사랑, 가정이 무너져가고 있음에도 에바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은 프랭클린의 무지함, 죄 없이 죽어간 순수한 실리아에 대한 애잔함.. 정도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은유적인 표현과 컷 배열, 과거와 현재를 여러 번 뛰어넘지만 어색함이 전혀 없는 진행, 상황과 정 반대되는 음악과 음향의 이질적인 사용으로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극대화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케빈 역할을 맡은 아역 제스퍼 뉴웰과 에즈라밀러의 묵직하지만 날카로운 눈빛과 당연히 믿어온 증오의 감정에 대한 의문이 드는 순간,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케빈의 눈빛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는다. 케빈은 자신이 에바의 모든 행동을 예측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핫 썸머 나이츠> - ‘폭풍의 눈을 벗어난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