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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Oct 26. 2022

400g정도 가벼워질 캐리어 : 고장 난 카메라여 안녕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덕후의 바삭한 여름 이탈리아 여행기 (16)

16. 400g 정도 가벼워질 캐리어

2022.07.17.


두오모 대성당을 보러 갔던 날, 이탈리아에서 첫 작동을 하자마자 장렬하게 운명했던 나의 카메라. 딱 필름 한 롤만 인화해보고 가버린 나의 카메라… 그 카메라를 고이 싸들고 밀라노에서 크레마로 왔다. 밀라노를 떠나기 직전, 혹시나 배터리를 바꾸면 될까 싶어 새로 배터리를 구매해 교체해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크레마에 도착해서도 아주 작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꼭 안고 있었던 이 카메라를 이제는 포기해야 할 순간이 왔다.


오늘 오후. 구글 지도로 검색해본 결과, 걸어갈만한 거리에 사진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순간, 고장 난 카메라의 존재가 떠올랐다. 내가 카메라를 백날 만지작거려봐야 답이 안 나올 테니… 사진관에 가서 뭐라도 물어보고 오늘! 이 카메라의 운명을 결정하기로 했다.


간식을 먹고 드러누워 책을 만지작거리다 해가 아주 미세하게 져가는 시간쯤 다시 외출을 했다. 번역기를 켜고 몇 가지 질문들을 미리 입력하며 사진관으로 걸어갔다. 음식점이나 마트는 이제 조금 익숙해졌지만 사진관처럼 이렇게 오래, 내 의사를 정확히 표현해야 하는 가게를 가는 건 아직 조금 긴장된다. 쭈뼛쭈뼛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나눈 후 번역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요?”를 입력하고 사진관 사장님께 내밀었다. 사장님은 카메라를 이리저리 살펴보시더니 새로운 배터리를 집어 드셨다. 나는 다급하게 “배터리는 새로 갈아봤어요.”를 입력해 다시 보여드렸고 사장님은 알았다는 표시로 오케이 손동작을 보여주시더니 남편분을 불러오셨다. 두 분은 카메라를 들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셨다. 배터리에 대한 이야기, 안에 든 필름에 대한 이야기… 정확히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사뭇 진지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대략 3-4분쯤 지난 후, 결론이 났다.


“이 올드 카메라, 여기선 해결할 수 없어. 밀라노에 가야 해. 아마도 거기서 봐줄 거야. 문제는 비용이 아주아주 많이 들 거야"


아, 밀라노. 밀라노에선 해결할 수 있을까? 잠깐 고민을 하다 '아마도’ 가능할 거란 사장님의 말과 ‘아주 많이 드는 비용’이라는 키워드에 쿨하게 카메라를 포기하기로 했다. 나에겐 아직 하나의 카메라가 남아있으니까. 이 무거운 카메라는 서울로, 세운상가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택배로 보낼 수 있을지, 안전하게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일단 이 카메라가 빠지면 400g이 줄어드니까. 캐리어가 조금은 가벼워지겠다. 살짝 눈물이 나지만 긍정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자.


함께 보낸 날은 짧았지만… 함께 이탈리아까지 온 친구야. 무거운 친구야… 이젠… 빠져있어.


일기 속 순간을 기억하며


내 손때가 묻기도 전에 고장 나버린 카메라를 일단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슬펐던 순간이었다. 그래! 여기선 포기하자!... 혼자 결심을 하고 사진관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왠지 마음이 축 쳐졌다. 그래서 바로 숙소로 돌아가지 못하고 근처를 서성서성 걸어 다녔는데 덕분에 그 근처에 있던 퓨전 일식집의 존재를 알게 됐다. 아점으로 먹은 피자가 영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라 밥이 그리워지던 찰나에 일식집에서 저녁을 뚝딱 해결하고 신난 상태로 돌아와 이 일기를 썼다. 그래서 이 일기는 아주 쿨한 단어 "(고장 난 카메라는) 빠져있어"와 함께 끝난다. 아, 이날 저녁에 먹은 연어 초밥, 레몬 소르베, 티라미수 맛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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