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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n 02. 2020

<스토커> - '진짜 나에게 눈을 뜨다'

[영화 후기,리뷰/왓챠, 사이코 패스 심리 스릴러 영화 추천/결말 해석]


스토커(Stoker)

개봉 : 2013.02.28. (한국 기준)

감독 : 박찬욱

출연 : 미아 와시코브스카, 매튜 구드, 니콜 키드먼, 재키 위버, 더모트 멀로니, 루카스 틸, 엘든 이렌리치, 랠프 브라운


진짜 나에게 눈을 뜨다


박찬욱 감독님의 할리우드 제작 영화 <스토커>

매우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성향을 지닌 주인공을 정면에 배치한 이 영화는 예리하고 디테일하게 깎아낸 심리 스릴러다. <스토커>라는 영화는 딱딱하면서도 깔끔하고, 숨 막히는듯하지만 묘하게 섹시한 분위기를 풍긴다. 박찬욱 감독님의 가장 큰 수작 ‘올드보이’같은 무드를 기대했다면 살짝 엇나간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세계에 들어선 채 감독 특유의 색감을 어느 정도 유지했다는 것만으로 굉장한 성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스토커>에는 이제 18살이 되는 소녀 인디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나무에 걸터앉아 생일선물이 든 박스를 열어보는 소녀의 모습은 남다를 것 없이 평범해 보인다. 행복한 18살 생일날. 누구보다도 딸을 사랑하던 아빠가 갑작스레 사고사를 당한다. 사람들은 그 사고에 대해 왈가왈부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죽음의 실체는 흐릿했고 그 사이 존재조차 몰랐던 아빠의 동생 (삼촌) 찰리가 인디아의 집으로 찾아온다. 




<스토커>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일부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한 영화의 분위기상 신체의 절단이나 피가 솟구치는 장면.. 같은건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듯하다. 




스토커 시놉시스


18살 생일, 아빠가 죽고 삼촌이 찾아왔다.


18살 생일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빠를 잃은 소녀 인디아(미아 바시코브스카). 그녀 앞에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 찰리(매튜 구드)가 찾아온다. 남편의 죽음으로 신경이 곤두서있던 인디아의 엄마 이블린(니콜 키드먼)은 젊고 다정한 찰리에게 호감을 느끼며 반갑게 맞아주고 인디아는 자신에게 친절한 삼촌 찰리를 경계하면서도 점점 더 그에게 이끌린다.


매력적이지만 수수께끼 같은 존재인 찰리의 등장으로 스토커가(家)에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인디아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하고 인디아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충격적인 비밀들이 드러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인디아는 조금 무뚝뚝하고 딱딱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또래 소녀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소녀였다. 딸을 극진히 아끼는 아빠 리차드와 사냥 여행을 다니며 나름 평화롭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던 인디아에게 18살 생일과 함께 아빠의 죽음이 찾아온다. 사고로 차가 불타올랐고 그 안에 있던 리차드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사람들은 리차드가 자살을 한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딸을 극진히 아끼는 그가 자살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형체없는 수군거림만 반복하고 있었다. 리차드가 떠남과 동시에 흐릿해진 스토커가의 시야. 그 흐린 안개 사이로 삼촌 찰리가 등장한다. 



찰리는 리차드의 동생이자 인디아의 삼촌이다. 한 명뿐인 삼촌이었지만 인디아는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고, 본능적으로 찰리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찰리는 인디아에게 다가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말을 걸고 학교에 찾아간다.


젊고 젠틀한 모습의 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산다. 인디아의 학교를 찾아갔을 땐 많은 여학생들이 훈남이라며 수군댔고 이블린 또한 찰리에게 호감을 느낀다. 실제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수려한 언변과 묘한 매력으로 많은 이들의 호감을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 묘한 매력의 가면 뒤에는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위험한 폭탄 같은 자아가 숨어있었다. 


                                                                       

4개가 세트인데 한 개가 깨졌어요


인디아의 생일 파티가 열린 집. 찰리와 이블린은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음료를 담아둔 잔을 보며 찰리는 잔이 멋지다고 칭찬을 하는데, 이블린은 ‘4개가 세트인데, 이사를 하며 한 개가 깨졌다’고 말한다.


찰리는 정신병원에서 나오는 날, 리차드의 집에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 리차드, 이블린, 인디아와 함께 넷이 모여 하나의 가족이 되는 모습을 상상했던 찰리. 하지만 리차드는 어릴 적 조나단을 생매장한 찰리를 믿지 못한다.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해선 찰리를 따로 떨어트려놔야 했다. 찰리는 리차드의 선택에 나는 가족이 아니냐며 배신감을 느끼고 리차드를 살해한다. 그렇게 찰리가 구상했던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인 리차드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사를 하던 중 깨져버린 잔처럼 말이다. 



리차드와 찰리, 조나단은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형제였다. 첫째 리차드는 어린 막냇동생 조나단을 무척이나 아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찰리는 조나단이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을 때쯤 흙구덩이에 파묻어버린다. 정신이상을 판정받은 그는 크로포트 정신병원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병원을 벗어나는 날을 기다리며 리차드와 인디아에게 꾸준히 편지를 보낸다. 세계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매해 인디아의 생일엔 노란 리본으로 묶인 박스가 있었고 안에는 새신이 한 켤레 들어있었다. 인디아는 당연히 아빠의 선물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선물은 찰리가 준비한 것이었다. 찰리는 인디아가 18살이 되던 해, 자신이 병원에서 벗어날 그때를 기다리며 매해 신발을 선물한다. 그렇게 쌓여간 흰 단화는 인디아의 성장과정을 함께한다.



찰리는 계단에서 마주친 잔뜩 날을 세우고 있는 인디아에게 묻는다.                                                                         

왜 네가 불리한 기분이 드는지 아니? 내가 네 위에 있어서야


찰리보다 아래에 서있던 인디아는 찰리의 말이 끝나자 계단을 올라 찰리와 눈높이를 맞춘다. 같은 계단에 마주 선 둘 사이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찰리는 인디아가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인지, 아니면 동등한 위치에 있는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자극을 반복한다.



인디아가 18살이 되던 해. 이번 박스에는 흰 단화가 아닌 열쇠 하나가 들어있었다. 리차드가 찰리의 흔적과 편지를 숨겨둔 서랍 열쇠였다. 찰리는 인디아가 성인이 되기를 기다렸고 만 18세 성인이 되자 소녀 같은 흰 단화가 아닌 붉은빛의 구두를 신겨주며 새로운 자아에 눈을 뜨게 만든다.



저주처럼 발달한 감각. 같은 피가 흐르는 우리


찰리와 인디아는 사이코 패스 성향을 타고난 인물이다. 인디아가 태어난 후, 찰리처럼 사람을 해하지 않을까 걱정됐던 리차드는 어릴 때부터 딸과 함께 사냥 여행을 다닌다. 잡기 어려운 새도 가뿐히 잡아내는 인디아는 타고난 사냥꾼 같은 모습이다. 리차드는 딸이 잡아온 새를 박제로 만들어 전시했고 이면에 잠들어있는 본능이 깨어나지 않도록 억누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리차드가 죽고 난 후에는 인디아의 본능을 억눌러줄 사람도 사냥 여행도 없었고, 거기에 같은 성향을 가진 찰리가 등장하며 인디아의 본능이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다. 인디아는 살인의 쾌감을 느끼고 나서야 깨닫는다.


‘때론 나쁜 짓을 해야 더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빠는 자신을 억누르기 위해 함께 사냥 여행을 다녔다는 것을. 



찰리는 만날 수 없는 조카 인디아에게 편지를 쓰며 ‘우리는 같은 피가 흐른다’고 반복해 강조한다. ‘내게 원하는 게 뭐죠?’ 라고 묻는 인디아에게 ‘친구되기’라고 답한 찰리는 인디아를 보자마자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고 자신과 함께하길 바란다. 윕을 살해하고 집 앞마당에 묻은 후 다음날 찾아온 경찰관에게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는 두 사람은 완전한 팀처럼 보인다. 


                                                                      

이게 바로 나야
꽃이 자기 색을 고를 수 없듯 내가 무엇이 되든 그건 내 책임이 아니야.


인디아는 18살 생일이 지나고 찰리를 통해 내면 깊숙이 숨어있던 자아를 깨닫게 된다. 그전까지 인디아는 ‘말 없고 스킨십을 싫어하는’ 소극적인 소녀의 이미지였지만 광기가 폭발한 순간부턴 브레이크 없는 트럭처럼 달리기 시작한다.


인디아가 살인 후 느끼는 감정은 성욕과 같은 본능적 감각이 채워졌을 때 느끼는 쾌락과 비슷한 것이었다. 쾌락의 첫 시작은 찰리와 시체를 매장한 것, 그다음은 찰리와 경찰관을 살해한 것. 아마도 인디아는 찰리와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죽기 전까지 살인을 멈추지 못한 찰리처럼 인디아도 죽기 전까지 살인을 반복하거나 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본인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타고났고, 꽃이 색을 고를 수 없듯 성향을 골라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디아는 살인을 저지른 건 타고난 성향의 영향이기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하며 미소를 짓는다. 


                                                                       

난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이뤄지지 않았어.
어머니 블라우스 위로 아버지의 벨트를 했고 삼촌에게서 받은 구두를 신었거든


인디아는 삼촌 찰리와 같은 타고난 사이코패스 성향과 후천적인 부모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자아가 합쳐져 만들어진 존재다. 오랜 열망의 산물인 저주받은 감각과 드디어 누리게 된 자유. 숨겨진 자아를 찾게 된 인디아는 완전한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어른이 된다.  찰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난 당연하게도 사이코패스인 찰리가 인디아와 이블린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아노를 연주할 줄 알지만 초보인척하며 이블린에게 다가가고 결국 애정 전선까지 만들어낸 찰리. 그 장면을 목격한 인디아는 정원을 가로질러 달려나가는데 찰리는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찰리의 시야에서 아주 좁고 답답하게 보이는 그 장면은 마치 인디아가 찰리의 시선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예상과 달리 찰리는 인디아의 손에 죽는다.

찰리는 계단 위에 서서 인디아를 내려다봤지만 그녀는 예상보다 강력한 상대였다. 


                                                                       

거울로도 볼 수 없는 각도에서 찍힌 내 사진도, 결국엔 나야


본능에 충실한 사이코패스의 모습도. 여린 소녀의 모습도 결국엔 모두 인디아였다. 



기묘하고 예리하며 창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분위기의 <스토커>는 보는 이를 순식간에 긴장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팽팽하게 당겨져 당장이라도 끊어질듯한 감정의 선은 손끝을 저릿하게 만듦과 동시에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심리 서스펜스 영화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번 보시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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