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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n 30. 2020

<살아있다> - '처절하게 외치는 생존신고'

[영화 후기,리뷰/한국 좀비, 생존 영화, 6월 개봉작 추천/결말 해석]


#살아있다 (#ALIVE)

개봉일 : 2020.06.24.

감독 : 조일형

출연 : 유아인, 박신혜, 전배수, 이현욱, 오혜원


처절하게 외치는 생존신고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후, 사회적 거리두기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살아있다>가 시대의 기류를 타고 기세 좋게 도착했다. <#살아있다>는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한 2월 이후 첫 100만 영화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채, 최근 개봉한 <결백>, <사라진 시간>등 한국 영화들의 스코어를 빠르게 따돌리며 영화관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많은 관객들이 선택한 만큼 영화에 대한 평도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고, 호불호 또한 강하게 나뉘고 있다. ‘<엑시트>같은 생존 영화, <부산행>을 이을 한국형 좀비 영화’같은 키워드로 너무 큰 기대감이 형성돼서 일까,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혹평을 내놓고 있다. 이야기의 전개상 우연의 일치 또는 갑작스러운 결과가 도출되는 부분이 있어 엉성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기대를 조금만 내려놓고 본다면 그렇게 나쁘지 않을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복도형 아파트와 집안에서 일어나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액션,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좀비들을 훑어보는 것도 꽤 흥미롭다.(중반쯤 까지는...) 하지만 좀비의 비주얼에 큰 거부감이 있는 경우나 어린이를 동반한 관람은 추천하지 않겠다. ‘엄청 잔인하다!’라고 말하긴 애매하지만, 가깝게 다가오는 장면들이 많아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유아인 배우가 맡은 주인공 ‘오준우’는 극의 중반쯤까지 홀로 영화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그는 집안에서 홀로 20일 정도의 시간을 버틴다. 하지만 공백을 채우는 작위적인 혼잣말이나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장면이 없다. 그 부분은 참 마음에 들었다. 또한 오랜만에 만나는 스크린 속 박신혜 배우의 미모에 치이고.. <타인은 지옥이다>에서 인상 깊게 봤던 이현욱 배우의 새로운 연기를 볼 수 있었기에 ‘왜 본거지’하는 후회가 들 만큼 불만족스럽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아쉬운 부분들이 느껴지지만, 흔들리고 있던 영화계와 관객들의 움직임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 것만으로도 <#살아있다>의 개봉은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하반기 개봉 예정인 한국 영화들도 <#살아있다>와 곧 개봉할 <반도>의 힘을 받아 묻히지 않고 개봉하길 기도해본다.




#살아있다 시놉시스


원인불명 증세의 사람들의 공격에 통제 불능에 빠진 도시. 영문도 모른 채 잠에서 깬 ‘준우’(유아인)는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고립된 것을 알게 된다. 데이터, 와이파이, 문자, 전화 모든 것이 끊긴 채 고립된 상황. 연락이 두절된 가족에 이어 최소한의 식량마저 바닥이 나자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진 ‘준우’. 하지만 그 순간 건너편 아파트에서 누군가 시그널을 보내온다. 또 다른 생존자 ‘유빈’(박신혜)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된 ‘준우’는 함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서는데...!


꼭 살아남아야 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영화 내에선 좀비라 칭하지 않고, ‘원인불명 증세의 사람들’이라 하지만, 글에선 편의상 ‘좀비’라 기재함)


아침에서 점심으로 넘어가는 중간 시간쯤, 다른 가족들보다 늦게 준우가 눈을 뜬다. 준우의 방안엔 딱 봐도 고성능일듯한 번쩍이는 컴퓨터 본체와 커다란 모니터가 있다. 좋아하는 피규어와 여러 촬영 장비들. 찌그러트린 채 버리지 않은 맥주캔. 준우에게 필요한 건 모두 그의 방안에 있다. 준우는 ‘모리스’라는 넷상 가명을 쓰며 게임 방송을 한다. 총을 몇 발 쏘면 간단하게 적을 잡을 수 있는 생존 게임. 준우가 게임에 한껏 몰입하려 할 때쯤, 진짜 생존 게임이 시작된다.




사람들 사이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염 증상이 퍼지고, 준우는 그대로 집안에 갇히게 된다. 현관 바로 옆에 걸려있는 액자엔 ‘우리 가정에 평화, 평강, 안녕’이라는 글이 쓰여있지만, 준우에겐 평화와 안녕이 아닌 재앙과 혼란이 찾아온다. 통신이 끊기기 전 아버지의 문자를 받은 준우는 생사조차 확실하지 않은 가족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지만 그 목표를 지키는 건 쉽지 않았다. 생존에 필요한 물과 식량은 빠르게 바닥났고, 몇 번이나 피를 뒤집어쓴 좀비들과 대면한 준우의 정신은 조금씩 무너져간다. 거기에 더해진 가족들의 마지막 음성 메시지의 충격은 준우의 삶의 희망을 꺼트린다.



현실은 게임과 달랐다. 준우가 즐겨 하는 생존게임에선 총을 들고 다른 이를 쏘면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현실에선 총을 든 경찰관도 좀비들을 이겨낼 순 없었다. 늦은 밤, 좀비들을 대적하고 있던 경찰관을 바라보던 준우는 경찰관을 위기에서 구해주기 위해 머뭇거리다 소리를 지른다. 경찰관은 삶의 마지막 희망 같은 준우를 바라보며 살기 위해 지하주차장의 입구 선 쪽으로 손을 뻗어보지만, 좀비들에 의해 순식간에 선 너머 지하로 끌려내려간다. 



<#살아있다>에서 선은 인간의 생과 사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위에서 얘기한 경찰관은 좀비에게 이끌려 지하주차장 안으로 끌려가면서도 살기 위해 손을 뻗는다. 손이 닿은 곳은 지하주차장의 입구가 시작되는 선이었다. 준우가 삶을 포기하려고 한순간 선택한 자살법은 전기선으로 목을 매는 것이었다. 유빈 또한 준우처럼 안전 로프를 이용해 목을 매려고 시도했으나 로프가 끊어지며,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유빈의 등장은 준우에게 새로운 희망을 줌과 동시에 극의 리듬을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소중한 가족을 잃었고, 살아있는 사람은 자신뿐인 최후의 지구 같은 모습을 한 아파트는 더 이상 아늑한 집이 아닌 지옥이었다. 그 속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다니. 메마른 땅에 피어난 꽃 같은 희망이다. 유빈은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준우와 다른 특성을 지닌 인물이다. 등반을 즐기던 유빈은 집안에 생존을 위한 물품을 구비하고 있었고, 준우에게 음식을 나눠준다. 생과 사를 나누던 물건이었던 로프를 타고 준우와 유빈 사이에 음식과 무전기 따위의 새로운 희망이 오간다. 



우리 진짜 살 수 있을까요?


준우와 유빈은 더 이상 집안에서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하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문으론 절대 안 나가’라며 창문으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는 유빈의 표정이 사뭇 비장하고 단단하다. 좀비들의 눈에 띌까 커튼을 치고, 비닐을 붙인 채 굳게 닫아놓았던 창문이 열리고, ‘우리 같이 살자’는 둘의 약속엔 생존 의지가 가득하다. 유빈은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날이 빠른 시일 내는 아닐 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하루하루 아껴가며 마셨던 물을 화분에 모두 양보하며 각오를 다진다.


사실 창문을 향해 뛰어내리는 부분에서 갑작스러운 각성과.. 좀비들 사이에서 날랜 액션을 보여주는 게 살짝 띠용-스럽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잠깐의 폭발적인 능력을 발휘했다..고 생각 하려고 한다. 


                                                                    

살고 싶으니까 지금 살아있는거예요


준우가 현관문을 열고 복도로 뛰쳐나간 것과 ‘나 여기 살아있다!’는 외침엔 삶에 대한 갈망과 용기가 깃들어있다. 준우는 ‘모리스’라는 가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게임 스트리머다. 집 밖으로 잘나가지 않는듯한 그는 엄마의 장보고 오라는 쪽지에 바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보단 다시 컴퓨터를 켜는 걸 선택한다. 후에 준우는 집에 식량이 얼마 없다는 걸 깨닫고 ‘엄마 말대로 장 보러 갈걸..’이라며 후회한다.




준우는 좀비 사태가 발생한 후, 진짜 이름을 밝히고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는 밤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며 노트북 앞에 앉아 영상을 남긴다. 동그란 카메라 렌즈 안으로 담기는 준우의 모습, 이전까지 준우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동그란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좀비 사태가 발생한 후, 현관문 앞에 선 준우의 얼굴에 외시경에서 비친 빛이 동그란 렌즈처럼 보인다. 준우가 세상을 보는 건 동그란 렌즈와 동그란 현관문 외시경을 통해서였고,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방법 또한 렌즈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준우가 동그란 렌즈, 동그란 외시경을 통해 밖을 보는 게 아닌, 유빈과 함께 문을 열고 세상에 나가 자신이 살아있음을 소리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발전인 것이다.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해시태그에 담긴 삶에 대한 의지는 두꺼운 건물벽 위를 뚫고 올라갈 만큼 강력했다. 



<#살아있다>는 나름의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광활한 장소가 아닌 좁은 복도식 아파트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좀비물이라니. 최근 개봉작에 크게 마음이 끌리지 않았던 참에 거의 유일하게 기대감을 심어준 영화였다. 영화 내에서 SNS와 드론, 셀카봉, 무전기 등을 이용한 새로운 소통과 표현 방법을 채택한 건 꽤나 신선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을 대부분 일회성으로 소모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좀비물의 가장 큰 포인트인 좀비에 대한 표현이 아쉬웠다. 중반까지는 좀비가 되어도 자신의 습관을 기억한다는 특성을 잘 살렸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저 좀비 떼거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아 처음 설정했던 특성들이 흐려지는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아쉬웠던 점 중, 가장! 아쉬웠던 건 주인공들의 심리묘사에 대한 부분이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빠진 준우가 열수도 부술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창문 앞에서 괴로워하던 모습, 똑 부러지는 유빈 앞에서 어버버 당황하는 모습 외에는 크게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없다. 또한 유빈이 자살을 시도했던 흔적에 얽힌 이야기를 더 풀어줬더라면 유빈의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표현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살아있다>를 보면 매일같이 열던 창문과 현관문을 열지 못한 채 좁은 집안에 갇혀있는 준우의 모습과 코로나로 인해 움츠러든 우리 사회의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져 씁쓸하기도 하다. 이런저런 아쉬운 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살아있다>가 욕 나올만큼..? 안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의적절하게 도착한 이 영화는 새로운 영화에 목말라있던 관객들에게 영화관에 가는 설렘을 다시 안겨주었기에, 오락영화로서의 기능은 크게 나쁘지 않다고 얘기하고 싶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kyung769/

블로그 : https://blog.naver.com/hkyung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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