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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Apr 24. 2020

사냥의 시간 - 윤성현 감독이 그려낸 근미래의 지옥도

[영화 후기,리뷰/넷플릭스 한국 영화,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 추천/해석]


사냥의 시간


개봉일 : 2020.04.23.

감독 : 윤성현

출연 :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박해수, 이항나, 승의열, 송요셉


윤성현 감독이 그려낸 근미래의 지옥도




정말 기대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영화 ‘사냥의 시간’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님, 이제훈 박정민 배우님이 다시 만난 영화라니! 목 빠지게 기다렸다. 윤성현 감독님의 차기작 촬영에 꽤 긴 공백이 있기도 했고 촬영이 끝난후 개봉까지도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여러 상황이 겹쳐 결국 넷플릭스로 개봉했지만.. 언젠가 특별 상영이 진행되길 간절히 바란다. 



개봉 후 올라온 여러 리뷰와 평점을 훑어보니 호불호가 극명히 나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호’에 가까운 리뷰다.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배경과 첫 음악감독을 맡은 ‘프라이머리’의 음악이 나의 취향을 탕- 저격해버렸다. 로케이션 헌팅만 1년 동안 진행했다는데.. 그만큼 영화 속 배경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직선으로만 구성된 구조물, 통로로 연결된 건물,유독 유리창이 많은 건물 등.. 추격전에 최적화된 모습이다. 



무너져버린 나라에 살며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 준석, 장호, 기훈, 상수가 마지막 ‘큰 한탕’을 위한 계획을 펼친다. 지옥 같은 현실이 아닌 천국같은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 말이다. 빨갛게 물든 도시와 눈앞을 가리는 안개가 불안과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두려움에 손을 떨고 있는 네 친구들의 모습이 안타까운 감정을 자아낸다.





사냥의 시간 시놉시스


그날, 우리는 놈의 사냥감이 되었다


희망 없는 도시, 감옥에서 출소한 ‘준석’(이제훈)은 가족 같은 친구들 ‘장호’(안재홍)와 ‘기훈’(최우식)

그리고 ‘상수’(박정민)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위한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다. 하지만 미래를 향한 부푼 기대도 잠시, 정체불명의 추격자가 나타나 목숨을 노리며 이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서로가 세상의 전부인 네 친구들은 놈의 사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심장을 조여오는 지옥 같은 사냥의 시간이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옷을 뺏어 입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인 장호와 기훈. 친구들을 위해 홀로 잡혀 3년의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준석. 도박장에서 일하고 있는 상수. 네 명의 청년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더 이상 ‘사람 사는 곳’이 아닌 지옥과 같은 풍경이다.


마약과 총 범죄가 만연하고 매일같이 미친 듯 오르는 물가, 사용할 수 없는 휴지조각이 된 돈들. 2000불도 남지 않은 상황에 준석은 마지막 ‘큰 건’을 노리기 시작한다.



준석과 친구들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천국 같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


어렸을 때 엄마가 이 가게에서 돈 벌면은 나 데리고 하와이 갈 거라고 그랬는데


준석은 엄마가 생전에 자신에게 얘기했던 꿈을 마음에 품고 산다. 3년간의 감옥살이를 버틸 힘이 되어준 그 꿈처럼 살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총을 잡는다.




마지막으로 나 믿고 해보자. 어차피 우리 더는 잃을 것도 없잖아


위험한 계획을 세우는 준석. 기훈은 준석의 계획을 반대하지만 장호는 준석이를 위해 계획에 동참하자고 기훈을 설득한다. ‘기훈’이란 캐릭터는 네 명의 인물 중 유일하게 온전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인물이다.

상수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나오긴 하지만 상수의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거나 아버지가 돌보지 않는, 또는 안 계신 가정인듯하다. 준석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장호는 애초에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본 적 없는 인물이다. 그에 반해 기훈이는 언제나 자신을 반겨주는 부모님이 있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는 인물이다.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지켜야 하는 가족이 있기에 기훈은 선뜻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천국 같은 그곳에 가기 위해 손을 모은 네 명의 친구들. 상수는 준석에게 빌린 10000불을 갚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이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함께 계획을 세우고 나름의 총기 테스트를 거치는 네 명. 천국 같은 곳에 가면 뭐부터 할지 들뜬 마음으로 얘기하고 있는 3명의 친구를 유리창 너머로 쳐다보는 상수. 친구들 사이에 어울리는 듯하지만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진다.



거친 단어와 욕을 내뱉는 네 명의 친구들은 떨리지 않는 척 강한 척을 하며 도박장을 턴다. 시발, 닥쳐! 하며 소리를 지르지만 그들의 손은 불안감에 흔들리고 있었고 도박장 직원의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긴장감에서 나오는 흥분은 냉정한 판단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폭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네 명의 작전이 잘 통한 건지 도박장을 터는데 성공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하나둘씩 흩어지는 친구들. 제일 먼저 사라진 건 상수였다. 준석은 상수에게 함께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상수는 바로 관두면 의심을 받는다며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고맙다, 나도 같이 가자고 해줘가지고..’라고 말한다. 떠나는 친구들을 보며 상수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궁금하다. 세 명의 돈독한 친구 사이에 낄 수 없다는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떠나지 못한 걸까?



아련하고 울렁이는 눈빛이 동정심을 일으킨다. 장호는 그런 상수에게 ‘맞고 다니지 말고’라 말하는데 영화를 볼 땐 상당히 감성적으로 느껴졌었다. 

(근데 알고 보니 안재홍 배우님이 박정민 배우님의 눈을 보며 갑자기 떠오른 애드리브였다는 얘기를 듣고..

그간 쫄보(?)역을 해온 박정민 배우님의 순간들이 생각나며.. 감성이 조금 사라져버렸다)



네 친구가 도박장을 털고 꿈에 부풀어있을 때까진 청춘과 우정, 소년의 향기가 풍기다가 영화의 초중반부 ‘한’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며 영화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전환된다. 한은 혼자 남은 상수를 제거하고 하드디스크를 회수하지만 자신의 사냥감이 된 남은 세 명의 친구들을 쫓기 시작한다. 


                

재밌네, 기회를 줄게요. 원하는 거 없어요. 시작을 했으니 끝내야죠


한이 아이들을 쫓는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가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대상이니 끝까지 찾아가 죽여야 하는 것이고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는걸 마치 게임처럼 즐기는 것이다.



한의 존재를 눈치채고 호텔에서 급하게 탈출하는 아이들은 주차장의 출구를 찾지 못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출구를 찾은 듯했으나 출구라고 믿은 곳을 막고 있는 건 총을 든 한이었다. 아이들은 이제 지옥 같은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기쁨에 들떠있었지만 ‘한’이라는 존재가 지옥의 출구를 막고 서있었다. 



네 친구들 중 마지막에 남은 건 준석뿐이었다. 상수와 기훈의 죽음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으나 상수의 휴대폰을 한이 갖고 있었던 것을 보면 상수는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고 기훈은 부모님을 위해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살아남았다면 준석의 바람대로 천국 같은 바다가 펼쳐진 그 집으로 찾아왔을 테니..



준석이 처음으로 보게 된 죽음은 ‘장호’의 죽음이었다. 장호는 준석을 지지하고 믿어주는 인물이자 준석과 같은 부모님의 부재에 대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인물이다. 떠나기 전 방문한 기훈의 집. 사이좋은 기훈의 가족을 보며 준석과 장호는 부러운 눈빛으로 그들의 모습을 쳐다본다.



장호가 말한다. 가족이 있는 게, 부모님이 있는 게 어떤 기분일까?’


외로움을 느끼는 장호에게 준석은 ‘우리가 너의 가족이라고 얘기한다.

기훈 또한 떠나기 전 장호에게 ‘빨리 갈게, 너 외롭지 않게’라고 말하며 모두가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기훈이 떠나가고 가족처럼 특별한 사이인 준석이 총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장호는 이성을 잃고 한의 정면으로 돌진한다. 총기를 제대로 다뤄본 적 없는 미필의 장호와 전문 킬러 한이 맞붙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한 결과지만.. 장호는 목숨을 잃게 된다.


장호는 준석에게 ‘나 이제 외롭지 않아. 혼자 있고 싶어라고 말한다. 평상시 장호는 친구들과 잘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잠든 척 장난을 치는 장호를 깨우는 방법은 기훈과 준석이 둘만 어딘가로 가는 척을 하는 것이었고 그 말을 듣고 일어난 장호에게 기훈은 ‘혼자 좀 있어~’라고 장난처럼 말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장호는 준석에게 외롭지 않다고, 내가 죽어도 먼저 가라고 말한다. 장호의 죽음을 목격한 준석은 평소처럼 장호가 자는 척 장난을 하는 것이길 바라지만 찬 바닥을 적시고 있는 장호의 피가 준석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던 준석은 자신이 가진 마지막 가치인 가족이자 친구인 기훈, 장호, 상수를 잃게 된다. 천국 같은 곳으로의 탈출은 성공했지만 바다가 보이는 넓은 집엔 준석만 남아있다. 준석은 홀로 살아남아 새로운 집과 새로운 자전거 가게를 차린다. 그 가게에는 네 친구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영화의 초반, 총기 시험을 할 때도 네 친구들은 기념사진을 찍는다. 순수하고 어린 소년들의 모습이 영화 속 무너진 사회와 위협적인 총과는 대조적으로 느껴져 더욱 연약하게 느껴진다. 



준석은 한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악몽을 꾼다. 하지만 더 이상 지옥 같은 시간을 피할 수 없고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준석은 사냥감이 아닌 사냥꾼이 되기로 결심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근데 꼭 하와이가 아니더라도 뭐 어디든 이렇게 투명한 바다도 보이고
따뜻한 곳에 살고 싶었던 것 같아.


준석이 바라는 꿈은 크고 원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처럼,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총과 마약 범죄가 판치는 곳이 아닌 여유롭게 낚시도 하고 투명한 바다와 따스한 햇살을 느끼는 것. 그리고 네 명의 친구가 함께하는 것. 하지만 세상은 지옥의 열기를 뿜어낼 뿐 따스한 햇살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지옥 같은 현실의 출구는 존재하지 않았고 준석과 친구들은 출구를 만들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혔다. 



윤성현 감독님의 전 작품 ‘파수꾼’은 인물 간의 세밀한 심리묘사가 강점이었지만 ‘사냥의 시간’은 직선적인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하다. 감독님 역시 ‘직선적인’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사냥의 시간을 제작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는데 이 ‘직선적’ 성격은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다.



영화 음악과 배경의 완성도, 서스펜스가 넘치는 연출로 몰입도가 깊은 작품이었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조금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훈의 가족, 상수의 어머니, 자전거 가게.. 등 조금씩 심어놓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부 다 풀기엔 너무 길어지는 게 문제였는지 중간중간 빈 곳이 느껴진다. 각 캐릭터의 특징과 색이 다른 것은 좋았으나 깊은 맛이 덜했던 것이 조금 아쉽다. ‘한’이라는 캐릭터의 이야기도 더 자세히 나왔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윤성현 감독님이 만든 ‘파수꾼’과 ‘사냥의 시간’은 남자들의 우정과 애정 어린 감정, 소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스릴러라는 장르지만 그 속엔 여전히 소년들의 긴장감과 어리숙함 서로에 대한 우정이 가득 담겨있다. 나는 그 감성이 마음에 와닿아서 참 좋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도 마음 아픈 순간도 많았지만 윤성현 감독님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치열한 싸움과 애정으로 만들어낸 ‘사냥의 시간’ 속 세계처럼, 앞으로도 다양하고 멋진 세계를 만들어주시길 바란다. 



언제 개봉하나 목 빠지게 기다렸던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로 감상하고 보니 극장에서 개봉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더 진하게 들었다. 어두운 장면이 많아서 가정용 TV나 노트북으로는 화면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고 공들인 음향을 디테일하게 들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드디어 봤다는 감격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장르적 쾌감과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표현해낸 영화 ‘사냥의 시간’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며 드디어 개봉했다. 서스펜스가 가득한 한국 영화를 찾는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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