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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Sep 29. 2020

<디태치먼트> - '애써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대해'

[영화 후기,리뷰/넷플릭스,왓챠, 애드리안 브로디 영화 추천/결말 해석]

                                                                              

디태치먼트 (Detachment)


개봉일 : 2014.05.08. (한국 기준)

감독 : 토니 케이

출연 : 애드리안 브로디, 마샤 게이 하든, 크리스티나 헨드릭스, 루시 리우, 제임스 칸, 사미 게일


애써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대해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어른들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아이들. <디태치먼트>속 등장인물들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채 하루하루를 연명해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희망을 가진다면 모두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고, 내 옆에 있는 이에게 마음을 풀어놓고 기댄다면 서로를 위로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희망과 현실은 다르다. <디태치먼트>는 그 까끌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묵직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무드는 주인공 헨리를 맡은 에드리안 브로디의 표정연기가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드리안 브로디의 공허하고 건조한 표정 연기가 정말 압권이었다. 애드리안 브로디를 처음 본 건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였다. 피아니스트인 주인공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을 연기한 그는 나를 끝없이 먹먹하고 슬프게 만들었다. <디태치먼트>속 헨리 바스 또한 그렇다. 대놓고 불행함을 드러내진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 하지만 꿋꿋이 인생을 연명해가고, 다른 이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인물. 그에게 남은 것은 기간제 교사라는 타이틀과 삶의 짐뿐이다.



‘기간제 교사’의 눈으로 바라본 학교라는 기관에서 일어나는 권태와 염증들. 트라우마를 지닌 아이들이 인생을 연명하는 방법. 그리고 이겨낼 수 없는 고통에 대하여.


무겁고, 어둡고, 어렵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 오히려 받아들이기보단 애써 외면하고 싶은 기분이다.




디태치먼트 시놉시스


새로운 학교에 배치된 교사 헨리는 학생들을 다루는 데 능숙하지만 과거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유난히 문제아들만 모여있는 학교는 교사도 학생도 서로를 포기한 암담한 상황. 그러나 때로는 엄하고 때로는 부드러운 헨리의 모습에 학생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더 이상 학생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으려 했던 헨리 역시 왕따 메레디스와 거리에서 만난 10대 소녀 에리카로 인해 점차 변화하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세상에서 스스로 격리되어 지내고 있는 느낌


헨리의 생활을 한마디로 표현해보자면, 세상에서 스스로 격리되어 지내는 사람 같다. 특별히 유지하는 인간관계도, 특별한 약속도 없다. 누군가의 자리가 비면, 다른 정교사가 채용되기 전까지 수업을 진행하는 기간제 교사. 함께 지내는 친구도, 가족도 없는 청년. 헨리의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는 치매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다.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헨리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가 지나간다. 인터뷰의 주제는 대략 학교에 대한 기억, 선생님에 대한 기억과 그 직업을 바라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 고통을 겪는 어머니를 보며 ‘선생님은 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한 사람. 우연한 기회로 기간제 교사가 된 사람들 사이 헨리는 세상의 이치를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선생님이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배우지 못한 가르침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선생님 헨리. 그는 어릴 적 목격하게 된 어머니의 죽음을 잊지 못하고 마음 깊은 곳에 썩혀두고 있다. 붉은빛을 띠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지나갈 때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헨리는 여러 학교를 떠돌며 기간제 교사 일을 하고 있다. 안정적이진 않지만 홀로 살기엔 부족하지 않다. 이번에 가게 된 학교엔 문제아들이 많다. 선생님에게 대드는 학생, 조롱을 하는 학생. 하지만 헨리는 아이들에게 감정적으로 맞서지 않는다. 헨리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던 아이들은 침착하고 강단 있는 그의 모습에 살짝 수그러든다. 헨리가 선택한 첫 수업의 주제는 ‘나의 죽음’에 대해 쓰는 것이다. 죽음을 상상하며 나의 진실한 감정을 풀어내는 것. 아이들은 헨리의 말에 따라 여러 형태의 죽음을 상상한다.



헨리는 능숙하게 첫 수업을 마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메레디스는 “저도 그렇게 강해지고 싶네요.”라며 헨리를 부러워한다. 메레디스는 교실의 맨 뒷자리에 앉아있는 여학생이다. 동급생들은 그녀를 무시하며,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메레디스는 조금 다를 뿐인데, 메레디스를 둘러싼 세상은 그녀의 다름을 문제 삼는다.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려도 나의 편이 되어줘야 하는 가족인 아버지는 흑백 사진을 찍고, 흑백 그림을 그리는 메레디스에게 외면을 가꾸고 칙칙한 쓰레기들을 만들지 말라고 말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또 모두에게 무시당하던 메레데스를 유일하게 존중해 주고, 그녀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인물은 헨리뿐이다.



거리를 헤매는 또 다른 청소년 ‘에리카’는 성매매를 하며 돈을 번다. 헨리는 그런 에리카를 집으로 데려와 치료하고, 보살펴준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존중 받는 기분과 안정감. 에리카는 헨리의 집에서 빠르게 안정을 찾고, 헨리에게 기대기 시작한다. 처음 헨리를 만나던 날 품었던 경계심과 의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에리카는 헨리의 침대에서 편히 잠든다.



헨리는 자신이 받지 못했던 세상의 이치에 대한 가르침, 그리고 어른의 보살핌을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어릴 적부터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않던 헨리, 헨리는 배고픈 아이에게 10달러를 주기보단 따스한 집에서 마주 보며 함께 저녁을 먹는 사람이다.



헨리의 할아버지는 어느덧 훌쩍 커버린 손자를 바라보며 뿌듯함과 미안함을 느끼고, 헨리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딸을 떠올린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내 딸 패트리샤가 다녀갔다고 말하며, 헨리에게서 패트리샤를 본다. 헨리는 그런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그의 죽음이 얼마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리고 어머니를 만났다는 할아버지에게 “전 잘 있다고 전해주세요.”라고 말한 후, 자신에게서 어머니를 보는 할아버지에게 “아빠 언제라도 맘 편히 떠나셔도 돼요.”라며 할아버지의 마음의 짐을 덜어준다.


                                                                        

내가 서 있는 게 보여요? 세상에, 드디어


<디태치먼트>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인생의 권태감과 차가움에 지쳐있다. 교장인 캐롤은 원치 않는 사임을 앞두고 있고, 메디슨을 포함한 여러 선생님들은 거친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에게 고통을 받고 있으며 에리카와 메레디스는 세상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 헨리는 7살 때쯤 직접 목격한 엄마의 죽음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인생의 어딘가에 크게 뚫려버린 구멍. 모두들 자신만의 트라우마와 결핍을 갖고 있다.



메레디스는 모든 작품을 흑백으로 표현한다. 메레디스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흑백 사진처럼 건조하고, 공허하다. 사춘기 소녀가 바라보는 세상이라기엔 필요 이상으로 정적인 세상이다. 메레디스의 흑백 세상 속에서 헨리는 텅 빈 교실에 서있는 얼굴 없는 남자다. 하지만 그 얼굴없는 남자만이 메레디스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바다 위에 서있던 감옥 같은 벽돌탑이 무너진다. 헨리를 무거운 현실에, 어릴 적 기억에 묶어놓던 인물 할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한다. 사랑하지만 미운 사람, 어릴 적 상처를 떠오르게 만드는 사람. 그가 영원히 이 세상을 떠났다.


                                                                        

곧 실패와 마주하게 되죠


헨리는 결국 실패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에리카를 시설로 보낸 후,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듯 에리카의 물건을 쓰다듬으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절 버리지 마세요.”라며 끌려가는 작은 소녀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는 헨리의 뒷모습이 연약하고 애처롭다. 그리고 슬픔에 잠긴 헨리에게 또 다른 충격이 찾아온다.



메레디스는 “다 괜찮을 거야”라며 유일하게 위로를 해준 헨리를 전적으로 믿는다. 하지만 자신을 안아주지 않는 헨리에게 충격을 받고 극단적인 선택을 계획한다. 메레디스는 웃는 표정을 그린 머핀과 자신이 먹을 울고 있는 표정을 그린 머핀을 준비한다. 그리고 매대 뒤에 커다란 사진을 세워놓는다. 누워있는 본인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나의 죽음은 이들이 만들어냈다’는 것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듯, 그들은 일제히 메레디스를 비웃고 있는듯한 모습이다.



메레디스는 모두가 웃고 있을 때, 슬픔을 가득 담은 머핀을 베어 물고 자살한다. 메레디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문제를 이겨낼 수 없었고 “자살이 유일한 해결책이에요”라는 말을 남긴 채 검은 머핀을 먹는다. 헨리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대해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게, 그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헨리는 그들의 실패와 최악의 선택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다.


                                                                        

난 텅 비었어요, 모두가 실패한 거예요


헨리는 메레디스의 죽음 이후 더욱 큰 절망감을 느낀다. 그는 메레디스가 토해낸 피를 닦으며 실패를 더욱 진하게 실감한다. 이건 현실이다. 헨리는 또 다른 실패를 되돌리기 위해 에리카를 찾아간다. 헨리와 에리카는 진한 주황빛의 햇살 아래 깊은 포옹을 나눈다. 미약하나마 약간의 희망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다.


                                                                              

“부표도, 안전망도 없는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고 있다는 그때가 바로
당신이 부표를 던질 시간입니다.”
“삶은 정말 혼란스럽지. 정답은 나도 몰라. 하지만 네가 이걸 잘 견뎌낸다면.. 모두 괜찮아질 거야.”


정말 모두 괜찮아질 수 있는 걸까? 내가 어디에 떠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를 구해줄 부표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표류를 끝낼 수 있는 걸까? 우린 모두 각자의 고민과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디태치먼트>의 주인공 헨리도, 메레디스도, 에리카도 모두 트라우마와 슬픔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걸 극복하는 건 개인의 몫이었다. 헨리의 따스한 한마디, 위로가 모든 슬픔을 녹여줄 순 없었다. 사랑과 관심은 일시적인 해결책이었을 뿐, 인생의 염증을 이겨내는 건 결국 나의 몫인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사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세상을 바꿀 사람이 내가 될 확률은 희박하다. 그게 현실이다. 세상이 바뀌길 기대하지 마라. 가끔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그의 손을 잡아도 좋지만.. 남은 것은 나의 몫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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