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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Oct 08. 2020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끝나지 않는 폭력의 늪'

[영화 후기,리뷰/왓챠, 사회문제 영화 추천/결말 해석]

                                                                              

아직 끝나지 않았다

(Jusqu'a La Garde, Custody)

개봉일 : 2018.06.21. (한국 기준)

감독 : 자비에 르그랑

출연 : 레아 드루케, 드니 메노셰, 토마 지오리아, 마틸드 오느뵈, 마튜 사이칼리

                                      

끝나지 않는 폭력의 늪


다신 보고 싶지 않은 남자와 그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와 아이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문장이 이토록 소름 끼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의 감독 자비에 르그랑은 2012년 <모든 것을 잃기 전에>라는 단편영화를 발표한 후, 5년이 지난 2017년, <모든 것을 잃기 전에>를 프리퀄로 삼아 한층 더 깊어진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세상에 내놓는다.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친 엄마. 혼자 척척 다 잘한다는 11살 줄리앙은 또래 아이들보다 얌전하고 의젓하다. 아이들의 엄마인 미리암은 폭력적인 남편 앙투안에게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 이혼소송에 들어간다. 줄리앙과 조세핀은 엄마에게 힘을 싣기 위해 ‘아빠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증언을 더한다. 아이들은 아빠를 영원히 만나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도록 만들어진 ‘법’이라는 단어는 미리암과 앙투안의 사이 또한 공평하게 평가한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위선적인 폭력 가장의 모습, 공평하게 적용되도록 만들어졌지만, 공평하지 않게 적용되는 법의 모순. 아이가 겪고 있는 이 숨 막히는 현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옥죈다. 그리고 이 영화엔 음악이 없다. 이야기가 끝난 후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도 한없이 고요하다. 영화 속 내장된 음악을 제외하곤, 음악 한번 없이 흘러가는 이 영화엔 고요한 공포가 가득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놉시스

 

"영영 안 보면 좋겠어요. 그게 다예요"

'그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은 11살 소년 줄리앙은 엄마를 위해 위태로운 거짓말을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엄마를 괴롭게 하는 그 사람, 영영 안 보면 좋겠어요.


이혼 소송 중인 한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각자의 변호인은 나름의 이유를 들어가며 상대방의 말을 깎아내리고 있다. 아내 미리암, 남편 앙투안. 두 사람은 굳은 표정을 한 채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다. 미리암은 진단서와 아이들의 증언을 증거로 들어 앙투안과의 이혼을 정리하고, 아예 남이 되길 바란다. 앙투안은 아이들을 위해 이사까지 했다며, 자신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앙투안의 변호인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작성된 진단서와 엄마 편만 드는 아이의 증언이 영 믿음직스럽지 않다며 미리암을 의심한다.


                                                                      

엄마 편만 드는 것도 문제의 일면이 아닐까요?


판사는 아이들의 증언을 들으며 미리암을 의심한다. 그리고 몇 주간의 분쟁 기간이 지난 후, 법은 공동육아라는 판결을 내린다. 줄리앙과 조세핀은 엄마와 함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고, 새롭게 방을 꾸미며 다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기대감에 부풀어있었지만, 공동육아라는 판결은 이들의 꿈을 짓밟아버린다.



18세가 된 조세핀은 공동육아에 따를 의무가 없었지만, 나이가 어린 줄리앙은 판결에 따라 격주 주말마다 앙투안과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안 나갈 거야”, “신고할 거야”라며 한참을 실랑이를 한끝에 줄리앙은 터덜터덜 짐을 챙겨 앙투안의 차에 올라탄다. 잔뜩 구겨진 채 착잡한 심정을 온 얼굴로 내뿜고 있는 줄리앙. 아들은 아빠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아빠는 어딘가 작위적인 스킨십을 시도한다.



앙투안은 판결에 따라 줄리앙을 자신의 부모님 집에 데려온다. 하지만 그는 ‘내 아들’ ‘보고 싶었다’는 말을 했던 게 아주 오래된 일인 것처럼, 식사를 끝낸 후부터 줄리앙을 돌보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그래도 돼요?”라고 조심스레 묻는 아들을 등진 채 TV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사실 앙투안에겐 ‘내 아들’이라는 존재가 중요하다기보단, 감히 나에게 이혼 소송을 한 아내의 아들을 빼앗아오는 게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줄리앙의 노트를 훔쳐보고 미리암의 번호를 알아낸 앙투안은 미리암의 휴대폰 번호와 현재 살고 있는 집 주소에 대해 캐묻기 시작한다. 줄리앙은 아빠가 엄마를 찾아가 해코지를 하지 못하도록 “엄마 집에 없어요.”라고 거짓말을 한다. 아직 덜 자란 작은 아이와 큰 덩치를 가진 성인 남성인 아빠. 앙투안은 줄리앙을 내려다보며 위협적인 눈빛을 보낸다. 줄리앙은 그 다음날, 엄마의 휴대폰 번호를 지우며 아빠에게서 엄마를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너희 엄마는 터지기 직전의 폭탄을 들고 있어


앙투안은 계속해서 미리암에게 집착한다. 새로 만나는 남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 몰래 다른 일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닌지. 의심과 분노에 미쳐버린 그는 줄리앙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며, 자신도 거처를 알 권리가 있다고 소리친다. 줄리앙은 차에서 내리는 동시에 아빠를 피해 도망치지만 그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작은 아이는 금세 아빠의 손에 목 뒷덜미를 잡힌 채, 반강제로 새로운 거처를 안내하게 된다. 앙투안은 줄리앙을 잡으며 “주말마다 너랑 싸우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데, 이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폭력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마 앙투안뿐일 것이다. 



프리퀄인 <모든 것을 잃기 전에>를 보지 않았다면, 영화의 첫 씬에선 판사의 말처럼 “엄마가 아이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도록 세뇌시킨 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해볼 만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빠를 ‘그 사람’이라고 부르는 줄리앙, 아빠에 대한 얘기조차 하지 않는 조세핀, 그리고 아이의 머리 위로 주먹을 휘두르는 앙투안의 모습. 앙투안은 내면에 쌓아놓은 폭력성의 일부를 사냥으로 분출하면서도, 일상에서의 작은 일들에 큰 분노를 터트리며 가족들을 위협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공평하게 내려진 ‘공동육아’라는 판결이 점점 더 불공평하고 멍청하게 느껴진다. 



앙투안의 재등장과 함께 미리암과 줄리앙, 조세핀의 하루는 점점 더 흔들리기 시작하고, 불안감은 더 큰 공포로 돌아온다. 평소 사냥을 즐겨 하는 앙투안은 여러 개의 소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프리퀄 영화인 <모든 것을 잃기 전에>에선 10살의 줄리앙이 “우리 집엔 소총도 있는데..” “엄마 겨눴을 때도 안 멈췄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11살의 줄리앙과 미리암이 자고 있는 집 현관문 앞에 소총을 든 앙투안이 찾아온다. 앙투안은 문을 향해 총을 발사하기 시작한다. 줄리앙과 미리암은 공포에 떨며 욕조 안에 몸을 웅크린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잃기 전에>에 나왔던 또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잃기 전에>에서는 미리암이 일하고 있는 마트에 찾아온 앙투안을 피하기 위해 미리암, 조세핀, 줄리앙이 숨을 죽인 채 어두운 비상구 문 앞에서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 문 앞에 어슬렁거리고 있을 위협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는 엄마와 아이들. 그리고 그 공포는 1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앙투안이 연행되고, 미리암과 줄리앙은 병원에 가기 위해 옷을 챙겨입는다. 경찰에 신고를 한 이웃 주민은 문틈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경찰관은 그 시선을 느끼고 문을 닫지만, 문에는 구멍이 뻥뻥 뚫려있다. 그리고 그 구멍 너머로 미리암과 줄리앙의 움직임이 보인다. 미리암은 이혼소송과 법을 이용해 아이들을 보호하려 했지만, 구멍이 뻥뻥 뚫린 듯 허술한 공평함을 고집한 법은 이 세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 구멍이 뚫린 문은 이들에게 공동육아라는 판결을 내린 법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을 잃기 전에>에서 미리암의 차를 타고 떠나기 전, 줄리앙이 물가에 앉아 작은 나무판을 물에 띄우는 장면이 나온다. 작은 나무판위에 올라가있는 세 개의 돌. 줄리앙은 다른 돌을 집어 나무판을 향해 던진다. 던진 돌에 맞은 세 개의 돌은 물아래로 가라앉는다. 세개의 돌은 미리암과 조세핀, 줄리앙. 그들을 때린 돌은 가정 폭력범 앙투안을 상징한다. 앙투안은 가정폭력을 휘두르며 세 사람의 일상을 깊은 공포의 늪으로 끌어내린다. 가정폭력이란 그런 것이다. 다른 가족들의 일상을 망치고, 공포에 떨게 만드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영화 제목처럼, 앙투안이 휘둘렀던 폭력의 기억은 아이들의 곁을 쉽게 떠나지 않을 것이다. 혹은 최악의 경우, 다시 미리암과 아이들을 찾아올 수도 있다. 끝나지 않는 공포의 늪. 이를 끝내기 위해 더욱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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