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엔 발리바르,『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리뷰
250805 작성 完
1. 레퍼런스 찾기
문화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이데올로기에 대해 깊게 배웠던 기억이 있다.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다루었던 기억이 있고, 이는 여러 아티클 작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여타 문학 텍스트를 다룸에 있어서 알튀세르를 정말 잘 써먹었다. 사실 알튀세르를 배우면서 발리바르도 동시에 배웠었다. 이는 필순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다"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알튀세르처럼 정확한 출처를 듣지 못해 나는 그 말을 사용하지 못했다.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알튀세르라는 그럴듯한 레토릭을 쓸 수 있었기에 찾을 생각을 그렇게 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제법 지나서야 지적 직무유기에 부끄러움을 느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다"라는 표현의 원 출처를 찾으려 부단히 애썼다. 그런 이유로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를 읽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역설적 테제에 이르게 된다. 즉 최종심에서 이와 같은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 그 자체인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자본가적인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어진 사회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항상 피지배자들의 가상의 특수한 보편화이다. 그것이 가공하는 통념들은 정의, 자유와 평등, 노동, 행복 등의 통념들인데, 그것들의 잠재적으로 보편적인 의미는 바로 그것들이 개인들 - 그들의 존재조건들이 대중들 또는 인민의 존재조건들이다 - 의 가상에 속한다는 점으로부터 유래한다.
- 186-187쪽
드디어 찾게 되었다.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 그 자체인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어진 사회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항상 피지배자들의 가상의 특수한 보편화이다." 라는 구체적인 표현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알튀세르적 절단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이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그 현동적 해체, 또는 말하자면 그 '계속적'(continue) 해체(어떤 철학자들이 그 계속적 창조를 말하는 것처럼)라는 역설적, 부정적 형태를 취하는 '주체'의 구성 말이다. 경험적, 심리적 주체로서 또는 실체적 주체로서 뿐만 아니라 또한 종합의 기능으로서, 저 결합자, 저 자기 자신(근대 철학이 그후 '의식' 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던)의 소유자로서의 주체 말이다. 여기서 알튀세르의 선행자는 프로이트이며, 특히 과학적 인식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나르시시스적 상처들' - '세계의 중심'(코페르니쿠스적 우주론), '진화의 목적'(다원적 자연 도태설), 마지막으로 그 자신의 사고들의 기원의 장소(정신분석학)를 차례차례 박탈당한 상처 - 이라는 그의 유명한 테제이다.
- 197쪽
STS 수업을 들으면서 중세의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에 균열을 가한 세 가지 계기로 프로이트가 제시한 것이 코페르니쿠스의 전환, 종의 기원, 정신분석학설명한 것을 듣긴 했지만서도, 이런 경우에는 어디에 딱딱 정확하게 정리되기보다는 '방대한 저작 가운데에서 이정도로 정리된다~'라는 맥락으로 이해했다가, 이렇게 명확하게 정리된 경우를 만나게 되어 굉장히 반가웠다. 더욱이 발라바르 정도면 어디에 인용해도 텍스트의 신뢰도를 높여주면 높였지, 절대 깎아먹지 않을 인물이기에, 그야말로 세렌디피티였다.
출처를 찾는 일은 내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항상 그랬지만 출처를 찾으러 가는 길에 발견하는 것이 더욱 많은 법이다. 이 오즈의 마법사스러우면서도 맥거핀으로 가득한 여정을 통해 많은 것을 채워왔다고 믿는다. 레퍼런스를 찾으려는 시도임과 동시에, 발리바르에 대해서 알려고 시도한 이 독서는 되려 내게 마르크스와 알튀세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알튀세르의 마르크스 징후적 독해와 발리바르의 알튀세르의 징후적 독해를 통해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툴을 가져가는 것이 가장 큰 일 아닐까.
2. 마르크스의 유용성 - 전화의 시도
알튀세르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정치에 대한 비전은 비극적(tragique)이라는 점을 인정하자. 그것은, 진보와 진리의 힘들이 반동과 환상의 힘들과 그 방향이 보증된(그 결말은 보증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전투에서 대결하는, 역사철학들의 모든 고전적 전통(마르크스에게 있어서 혁명의 개념화가 항상 그것에 속했던 전통)에서처럼 단지 극적(dramatique)일 뿐만은 아니다. 그것은 '대중들'(피지배계급들, 인민계급들에 속하는 개인들의 잠재적 통일성)이 돌이킬 수 없도록 분할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비극적이다. 대중들이 두 개의 심급들, 그들 자신의 가상의 두 개의 실존 및 조직양식들 사이에서 내재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하자.
- 187-188쪽
그러나 비극적 관점이 비관적(pessimiste) 관점은 아니며, 종말목적론적(fataliste) 관점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의 생산양식으로서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모든 '계기'에서(모든 '단계'에서) 자본주의의 모순들 속에 착근된 하나의 가능성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또 하나의 생활양식, 사회적 관계들을 체험하는 또 하나의 방식, '지배적 보편성'에 반대하는 하나의 반역으로서 공산주의는 단지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모든 이데올로기의 역사 속에 항상 존재하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는 '영원하다' 또는 '역사를 갖지 않는다', 즉 그 역사는 진보, 발전이 아니라 반복이다라는 알튀세르 사상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 188-189쪽
알튀세르는 (프로이트, 스피노자, 고전철학, 자신의 정치적 및 종교적 경험 등과 대질시킨) 마르크스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독해로부터, 사회 속에 (노동과정으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데올로기가 편재하며, 이데올로기 속에서 갈등이 편재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테제들이 아마 우리 시대의 혁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재론의 여지 없이 이 테제들은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다시 정식화할 수 있게 해준다. 혁명에 대한 질문의 전도(前途)가 무망하고, 그것이 항상적으로 '사실들'에 의해 부정적인 대답만을 받아왔다는 저 '명중성'이 모든 곳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지금, 아마도 마땅히 이 테제들에 대해 좀더 숙고해야 할 것이다.
- 189-190쪽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혁명으로 바뀔 수 없음을, 동시에 싸워서 이길 '거악'이 오늘날 가시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극적으로 세상이 바뀔 수 없음을 발리바르는 이야기한다. 동시에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를 기표화한 순간, 피지배계급의 것을 전유하여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화 한 순간부터, 저항가능성의 문제가 제기되지만, "절대적으로 '역사의 주체'인 계급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역사를 만드는', 즉 정치적 변화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대중들임은 결코 의심할 바 없다(187쪽)"고 여전히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발리바르는 이야기한다. 희박한 가능성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지젝도, 알튀세르도 그런 것처럼, 무언가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이유는 "하나의 가능성"을 부단히 찾기 위해서라는 것을 몸으로 깨닫는다.
브뤼노 라투르는 ""하지만 우리에겐 교체된 거대서사가 있습니다." 사회주의가 그 일을 했지요. 사회주의는 150년 동안 역사, 진화에 대한 대안적 이야기를 만들어왔어요.(마지막 대화, 94쪽)" 이야기 했으며, 지젝 역시 공산주의가 완벽한 대안이 아니며, "'지배적 보편성'에 반대하는 하나의 반역으로서 공산주의는 단지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모든 이데올로기의 역사 속에 항상 존재하는 하나의 가능성(188쪽)"이라고 말한 발리바르와 유사한 설명을 한다.
물론, 마르크스로부터 시작된 이 이야기가 여러 모양으로 실패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부터 시작해서 그를 공부하고 연구하며, 그것을 삶의 영역과 실천의 영역으로 행하려 했던 사람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을 따라가는 것은 굉장히 유의미할 것이다. 저항불가능성, 효용감과 효능감 없음이 느껴지는 오늘, "혁명에 대한 질문의 전도(前途)가 무망하고, 그것이 항상적으로 '사실들'에 의해 부정적인 대답만을 받아왔다는 저 '명중성'이 모든 곳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지금, 아마도 마땅히 이 테제들에 대해 좀더 숙고(190쪽)"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발리바르의 이 말은 불편한 고민에 충분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저 문장이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3. 인식론적 단절(Epistemological Rupture)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는 알튀세르가 『'자본'을 읽자』를 쓰는 과정에서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알튀세르가 '징후적 독해'를 걸친 결과 마르크스는 크게 두 시기로 구분 가능하며, 1845년이 인식론적 단절의 계기로 작용하며, 45년 이전의 시기를 인간주의에 천착한 '청년 마르크스'시기로 보며 '자본'에서 나타나는 과학적 분석의 시기를 '장년 마르크스'로 구분하게 된 것이다. 물론, 완전히 무 자르듯 깔끔한 단절은 불가능하다. 사람이기 때문에 계단식으로 생각이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 발리바르의 표현을 빌려 보자. "알튀세르가 절단의 셰마를 마르크스의 저작들의 시기구분에 적용할 때 일종의 잔여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자. 그가 '절단의 저작들'이라고 부르는 것(바로 『독일 이데올로기』 같은 것)은 절단 '이전'도 '이후'도 아니고, 그 중간 지점에 분리의 지점 자체에 있(207쪽)"다고 이야기한다. 독일 이데올로기같은 저작 같은 경우에는 과학적 분석의 시기이긴 하지만, 과도기적 상태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있어서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에, 사상적 거목 내지는 사상의 대상이라고 할지언정 질문과 의문을 거부하는 교조적인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지금 다루고 있는 대상 텍스트인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에서 발리바르가 쓴 텍스트를 보면, 그런 차원에서 의문과 모순을 지적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비판의 비판'에 착수하기 위해 마르크스에게, 또는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삼중적 질문을 제기하는 일이 남아 있다. ① 조직된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역사적 출현이 고전적 경제학의 '속류적 경제학'으로의 해체를 야기했던 방식을 분석한 연후에 마르크스주의가 대칭적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상대적 제도화가 그 자신의 '속류적 마르크스주의'로의 경향적 전화를 야기했던 방식을 분석하는 것이 실제로 불가능했던 것은 어찌된 일인가? [...] 그러나 동시에 또 예외없이 현존 사태의 유물론적 비판을 진전시키는 대신에, 사건에 뒤처져 당 또는 노동조합의 이데올로기적 시멘트가 되어버린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도덕적 비판이나 준 종교적 노동자주의로 대거 퇴보하였다.
- 24-25쪽
마르크스가 경제학자들을 부르주아 계급의 탁월한 '이데올로그들'이라고 명시적으로 지칭하고 따라서 또한 경제학의 정치적 기능 및 목적을 상정할 때조차도 그의 '비판'이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 내부에서의 경제주의의 복귀를, 또는 마르크스가 착수한 적이 없으며 항상 아직 구성 되어야 할 것으로 남아 있는 '정치 이론' 이라는 신기루를 영속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 27쪽
그렇지만 왜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이데올로기의 정의가 모순적임을 인정해야 하는가? 알튀세르의 저작을 훑어 보면, 두 가지 이유가 발견되는 것 같다. 하나는 철학적, 선험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사후적인 것이다.
- 178쪽
그렇지만 문제가 되는 것이 공산주의적 정치 - 자본주의적 체계의,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인 착취구조의 전화로서 정의되는 정치 - 라면, 이러한 철학적 개념화가 진정한(authentique) 혁명이라는 관념과 양립불가능하다는 인상을 어떻게 모면할 것인가? 이러한 의혹은 오늘 나타난 것이 아니다.
- 183쪽
따라서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알튀세르가 우리에게 제시한 불완전한 요소들로부터 추론을 시도하여 그것의 지향을 검출하는 것이다.
- 184쪽
이 이외에도 마르크스, 내지는 알튀세르의 텍스트에 대해서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의문을 제시하는 부분이 정말 많이 나온다.
고전적으로 철학에서 '비판'이란 하나의 체계 또는 독단론의 파괴를 목표로 하는 논쟁과 진리적(진리적인 것에 대한) 지식의 정초를 동시에 의미한다.
- 16쪽
발리바르와 알튀세르가 질문과 의문을 통해 제기하려고 했던 '비판'은 아마도 후자의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학자들의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적 지식의 미완성에 스스로 근거하여, 마르크스주의를 적합한 철학에 의해 근거지우고, 마르크스주의의 사회학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경제학을 실현하고, 마르크스주의에 정치학 또는 미학을 보충하는 데 몰두하지만, 결국 이러한 무한한 구성작업은 그 자신의 불가능성에 대한 끝없는 분석으로 되돌아가고 만다"(랑시에르(J. Ranciere), 1983, p. 303에서 재인용).
- 44쪽
'미완성'인 것을 붙들고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했던 사람들은 애초에 미완성인 결과를 내놓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알튀세르 본인에게도 인식론적 단절이 엿보이는 지점이 발견되었을 것이다. 모순이라고 여겨지는 지점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설정들의 양립불가능성, 두 개의 이론적 담론들의 화해불가능한 갈등을 환기시키기 위하여 관념들의 역사의 시간 속으로 그것을 직접 투영하고 '이전'과 이후' 사이의 단순한 경험적 불연속성과 그것을 동일화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절단이라는 은유는 개념에 의해 정정되고 또 재가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공 그 자체는 아마 바라는 만큼 선형적이지는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철학에서 절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2의 부정적 테제 때문이다.
- 216쪽
선형적이지 않은 시간을 감당해내며 끊임없이 '인식론적 단절'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배워야 하는 것은, 옳다고 여기는 것을 도그마의 영역으로 모시지 아니하고 의문과 이론을 제시하면서 '속류'적 교조주의자로 머물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발버둥쳤다는 사실이다. 인식론적 단절을 위해서는 '징후적 독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발화의 행간 사이에서 미처 말하지 않은 것과 진실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그 앞에 또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로부터 이별하기 위한 모든 준비들을 다 했지만, 마르크스에게서 경제를 버리면 더 이상 마르크스일 수 없기에 알튀세르는 '최종심에서는 경제가 결정'한다고 하지만서도 '최종심의 고독한 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라고 하는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인다. 발리바르에 이르러서야 마르크스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나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있지 못하는가. 나는 무엇과 관계맺는 삶을 살고 있고, 무엇을 미처 발화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발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형도를 그려야 할 필요가 요구된다.
4. 뚜렷해지는 지형도
본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중 다소 이질적이라고 느껴지는 지점이 존재했다. 그것은 기독교와 관련된 몇몇 진술들과 동시에 '해방신학'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목이었다. 본인도 수 차례 읽은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도 '하나의 예'라는 별도의 장을 할애해 기독교의 이데올로기성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었으며,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진술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질적인 서술들이 등장하는가. 발리바르와의 대담문 일부에서 그 답을 엿볼 수 있었다.
실제로 알튀세르는 카톨리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죠. 그런데 그가 제2차 세계전쟁 전인 고등학생 시절에 알던 카톨릭계는 보수적이었던 반면, 독일에서 5년 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만난 카톨릭계는 급진적이고 마르크스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그것은 '해방신학' 과 비슷하기보다는 우리가 70년대에 '마르크스주의적 카톨릭' 이라고 부른 것과 거의 같은 편이었죠. 그런 카톨릭 신자들은 노동자계급을 위해 사회현실에 참여했고 성직자의 위계에 대해 대단히 적대적이었어요. [...] 어쨌든 전후의 알튀세르가 몇 년 동안 가담한 조직은 '노동사제 운동'과 아주 가까운 것이면서도 더 지식인적인 집단이었습니다.
- 375-376쪽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로 여겨왔던 알튀세르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가톨릭 신자로서의 알튀세르는 알기 힘들었다. 더욱이 그가 '노동사제 운동'과 유사한 맥락을 가진, 어떻게 본다면 '마르크스주의적 가톨릭'에 투신했다는 것은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다. 그렇기에, 신부이며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스타니슬라스 브르통의 글이 텍스트에 실려 있었던 것이다. 그의 글을 발견한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두 번째로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오늘 이 문제들을 책임질 능력이 있는 운동들이라고 생각 하는 것은 어떤 것들인가? 나는 두 가지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이다. 나는 이 두 운동들을 혼동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들이 다를수록 그만큼 더 연대적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들 각자의 역사의 비극적인 부침이 이미 하나의 인연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부언하겠다. 즉 그것은 양자 모두에게서 감히 말하자면 물질적 문제가 당면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놀랍게도 나는 역사를 창설해내는 역사적 행위를 가리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의 네 가지 동사가 먹다, 마시다, 입다, 살다임을 발견한다(나는 이 점을 환기하겠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세계사에 대한 최후의 심판에서도 중요한 것은, 너희 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곧 그 신비스러운 그리스도, 바로 나다"라는 특수한 변조가 있기는 하지만, 또한 이 네 가지 동사, 먹다, 마시다, 입다, 살다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인 차이이며 나는 그것을 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즉 역사의 시작에 대해 사고하든 신앙에 대해 해설하든 간에 당면한 것은 항상 삶의 이러한 물질성이라고 말이다.
- 133-134쪽
기독교인이든 마르크스주의자이든 어느 경우에도 우리는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승인하고 부담해야 하며 그것에 대해 말하고 우리를 보편자의 위엄으로 다시금 승화시켜 그것을 책임지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할 유일한 사람들이고 이 문제들은 그 점에서 우리 자신들을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에 대해서도 또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적 기능은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며 거대한 사회적-경제적-정치적 통일체들의 발생에 대한 비판이다. 기독교 쪽에서 보자면 원칙으로서의 복음은 교회의 사업들의 제한을 비판하는 것이다. 혁명적 실천도 또한 마찬가지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나의 친구 푸르니에 신부가 말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기에는 오늘 기독교적이든 마르크스주의적이든 간에 지식인들의 책임에 대해 말할 것이 많이 있을 것 같다.
- 134쪽
스타니슬라스 브르통이 '문제'라고 언급한 것들은 착취, 소외, 노예제와 같은 문제라고 언급되긴 하지만,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에서도 비판 내지는 극복해야할 것들로 제시되는 것과 동시에 기독교에서도 신의 뜻에 따라서 마땅히 극복되어야 하는 문제들이 공통적이다라고 언급하며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가 이 일을 함께 할 수 있으며, '다르기에 연대적이다'라고 하는 것에서 나는 동기부여를 얻는다. 그렇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당연히 "삶의 이러한 물질성", 곧 사는 문제이다.
2025년 기독교가 한국 최악의 담론 형성지로 부상한 동시대적 맥락에서, 알튀세르의 이러한 계기는 내게 추동할 힘을 준다. (이 지점에서 알튀세르의 자서전인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읽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동시에, 지젝이 회복해야 할 기독교성을 이야기하는 지점, 바디우가 바울 신학을 새로이 해석하려고 하는 지점, 아감벤이 하려고 한 지점. 각 영역들 사이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을 비판적으로 취득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비판적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런 유토피아적 고발이 아니고, 역사적 과정에 대한 그 분석 방식입니다. 지속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마르크스주의는 당연히 비판적 마르크스주의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비판적 마르크스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한 세기 반에 걸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 367쪽
"과학이 헤게모니를 쥐면서 종교적 헤게모니가 완전히 이동했기 때문에 가엾은 종교인들에게는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지요(마지막 대화, 118쪽)." 근대 이후 영원한 이야기밖에 할 수 없었던 교회는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쥐어싸매야 했으나, 라투르에 따르면 이제는 근대적 존재조건들이 무너진 지금, Incarnation에 대해 교회가 새로이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비판적' 수용이 필요해 보인다. 어째 '비판적 수용'은 비겁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유리해 보이고 좋아보이는 것들만 빼먹고 나쁜 것은 버리는게 소위 '낭만'과는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애초에 순종(purebred)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5. 우리 기쁜 젊은 날
청년은 중층결정의 노정임을 거장의 만년을 통해 배운다. 부르디외는 이야기하기를,
나와 같은 입장을 방어하고자 할 때 우리가 젊은이들을 실망시킬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는데 일부 어려움이 있다. 모든 지식인들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전복적인 의도가 때로는 풋내난다고, 즉 몽상적이고 유토피아적이며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실망시킨다.(부르디외,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 316쪽)
젊은이들의 환상을 깨는 것은 당연히 즐거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들의 반항에는 꽤나 진지하고 심오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기성 질서, 순종적인 어른들의 체념, 아카데미의 위선에 대항해 나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또 젊은이들이 아주 잘 포착할 수 있는 일련의 문제가 있다. 그들이 아직은 냉소적이거나 환멸에 사로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또 적어도 프랑스의 경우, 내 세대의 수 많은 이들이 했던 일종의 사상 전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파할 수 있는 그런 것들 말이다.(부르디외,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 320쪽)
젊은이들의 '전복적'이고 '몽상적이고 유토피아적이며 비현실적'인 '환상'과 '반항'에는 '꽤나 진지하고 심오한 것'이 있으며, '기성 질서, 순종적인 어른의 체념, 아카데미의 위선'에 대항하려는 경향성이 있는데 그런 이유는 '냉소적이거나 환멸에 사로잡혀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출발하여 오늘 언급된 이들의 젊은 날들을 짧게 검토해 보자.
마르크스의 젊은 날이 어떠했는가. 발리바르가 평가하기를,
셋째, 제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가 지속되려면, 즉 계속 전화될 수 있으려면,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그 자체의 역사적 경험을 설명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 마르크스주의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유물론, 역사유물론의 의미 가운데 하나에 전적으로 충실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청년 마르크스 안에 명백히 있는 것입니다. 바로 『독일 이데올로기』 말입니다. 이 책을 완전히 그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 395-396쪽
청년 마르크스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발리바르는 평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라투르는 어떠했는가. 어린 시절 샤를 페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 그의 전 사상에 깊게 영향을 주었다. 알튀세르는 어떠한가. 이를 통해 얻은 작은 결론은, 지나가는 과정에서 얻어가는 것을 없는 셈 취급하거나 부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들로,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환멸에 사로잡혀있지 않기를 바라며, 그러기 위해 온 몸으로 모순을 인정하고 감내하며 의문을 던지는 '징후적 독해' 행위를 살면서 지속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더욱 나아간다면, 파레시아하기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