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포드 철학을 위한 변론

Krishnan, <A Terribly Serious Adventure>

by Ju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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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 '옥스포드 철학'이라는 말은 생소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옥스포드 철학'이 불러일으키는 분명한 인상이 있다. 그 인상은 아마도 1960년대 말 우드스탁의 젊은이들이 칵테일과 재즈에 대해 가졌던 인상과도 비슷할 것이다. 한마디로 옥스포드 철학은 낡고, 고루하고, 철이 한참 지났으며, 오늘날에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과거의 유산으로 취급된다.


옥스포드 철학은 20세기 초반부터 1950년대까지를 풍미했던 철학의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가 구현된 하나의 방식이었다. 20세기 초반, 오스트리아 빈에서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흐의 영향을 받은 한 무리의 지식인들이 훗날 20세기의 가장 야심찬 지적 운동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흐름(논리실증주의, Logical Positivism)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다. 이 무리는 스스로를 '빈 학단(Vienna Circle)'이라고 불렀고, 이 서클에는 철학자뿐 아니라 과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사회과학자도 포진하고 있었다. 불완전성 정리로 널리 알려진 쿠르트 괴델 또한 이 학단의 조용한 일원이었다.


이들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철학을 지배했던 각종 형이상학적 사변을 제거하고 철학을 과학의 시녀로 만드는 것이었다. 논리실증주의의 강령에 따르면 인간이 세계에 관하여 어떤 유의미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경험과학뿐이다. 철학의 역할은 (그 자체로 명제의 체계인) 경험과학의 명제들을 형식논리학을 통해 분석하여 그 의미를 명료하게 만들고, 지난 2천 년 동안 철학이 생산했던 형이상학적 가짜 명제들을 논리학의 도구로 분석하여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제 철학자들은 "무엇이 도덕적인가?"라고 물어서는 안 된다. 그런 질문은 애초에 참과 거짓을 논할 수조차 없는 가짜 질문(pseudo-question)에 불과하다. 이제 철학자들은 "무엇이 '도덕적'인가?"라고 묻는 데, 즉 '도덕'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분석하는 데 그쳐야 한다. 철학자들은 "무엇이 존재하는가?"라고 물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도덕이 무엇인지, 존재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던 철학은 논리실증주의의 분석적 칼날을 거치면서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탐구하는 언어-논리적 프로젝트로 쪼그라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빈 학단의 철학관은 축소주의적(deflationary view of philosophy)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빈 학파의 철학적 방법은 케임브리지와 옥스포드의 철학자들에 의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용되었다. 케임브리지에서 빈 학단의 방법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미 수학적 명제의 의미를 형식논리학의 도구로 분석하려는 (혹은 논리학으로 환원하려는) 고틀로프 프레게의 작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있었다. 반면 오늘의 주인공인 옥스포드는 한 발짝 늦게, 케임브리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 새로운 철학의 조류를 받아들였다.


케임브리지 철학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가장 먼저 감지한 사람은 길버트 라일과 알프레드 에이어였다. 라일이 옥스포드에 당도했을 때 옥스포드에는 젊은이가 없었다. 전쟁(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전부 징집되어 전선으로 간 까닭이다. 라일은 브래들리와 쿡 윌슨으로 대표되는 노장 학자들의 관념론과 실재론 논쟁에 지겨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케임브리지의 무어와 러셀의 작업을 접했고, 이 새로운 조류는 그를 사로잡았다. 에이어는 라일의 도움으로 논리실증주의를 보다 직접적으로 접하게 되었고, 논리실증주의의 매니페스토와도 같은 <언어, 진리, 논리>를 출간하며 빈 학파와 영어권 세계를 연결하는 교량이 된다.


그러나 <언어, 진리, 논리>에도 불구하고 옥스포드의 품에서 철학의 '언어적 전회'는 빈이나 케임브리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게 된다. 라일을 비롯한 옥스포드의 철학자들은 형이상학의 제거와 철학적 방법론으로서의 언어 분석이라는 핵심 테제는 수용하면서도 케임브리지의 주된 방법론이었던 형식논리학은 거부했다. 라일은 논리학이 기껏해야 하나의 새로운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철학의 '언어적 전회'의 핵심은 "철학의 가장 오래된 목표", 즉 "명료하지 않은 것을 명료하게 만드는 것"이지, 그 방법론에 불과한 형식논리학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게 바로 소크라테스가 하던 그 작업이 아닌가(was this not what Socrates had been seeking)"?


러셀을 비롯한 케임브리지 철학자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각종 오류와 불명료함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들이 보기에 철학의 목표는 언어를 형식논리학의 엄밀하고 객관적인 도구로 해체하여 일상언어의 모호함에 가려진 논리적 형식과 참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옥스포드 철학자들은 이러한 러셀의 입장에 단호히 반대했다. 이들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상언어의 모든 것이 이미 "정돈되어(in order)" 있다고 생각했다. 옥스포드 철학자들은 기술적인 형식논리학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언어를 사용하는 맥락, 즉 일상언어가 사용되는 인간적 조건(the human condition)을 살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의미에서 옥스포드의 언어철학은 일종의 인류학적 프로젝트였다.


일상언어철학의 성격을 J. L. 오스틴의 다음 예시보다 더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오스틴은 먼저 "실수로(by mistake)"와 "사고로(by accident)"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표현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어 화자에게는 차이가 보다 직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영어권 화자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그렇다. 이것 또한 일상언어철학의 인류학적 면모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오스틴은 묻는다. 당신이 (1) 이웃의 당나귀를 자신의 당나귀로 착각하여 쏴 죽인 경우와 (2) 자신의 당나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나 이웃의 당나귀가 갑자기 앞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이웃의 당나귀가 죽은 경우, 이웃에게 어떤 표현을 사용하여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적절한가? 오스틴의 예시를 생각해 보는 순간 우리는 "실수로"와 "사고로"가 의미론적으로는 비슷할지 몰라도 그 표현이 실제로 사용되는 맥락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와 같이 일상언어를 분석해 나가다 보면 철학의 오래된 문제를 둘러싼 신비와 형이상학적 사변은 사라지고 우리는 보다 명료한 사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옥스포드 일상언어철학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일상언어철학은 1950년대에 이미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 옥스포드 철학에 가해진 하나의 비판은 그 축소주의적 관점에 관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옥스포드 철학자들이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며 상아탑에 갇혀 언어 분석과 같은 사소한 작업에 몰두함으로써 현실을 변혁해야 할 철학자의 의무를 방기했다고 비난했다. 다른 비판의 원천은 케임브리지였다. 러셀은 옥스포드 철학이 일상언어와 같은 "소작농의 일(peasantry)"에 천착함으로써 철학의 전문성을 포기했다고 비판했다(P. F. 스트로슨의 러셀 비판에 대한 러셀의 응답이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W. V. O. 콰인과 같은 철학자들이 옥스포드 철학자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영국 분석철학을 계승하고 있었다. 결국 옥스포드 철학자들은 서서히 일상언어철학을 포기했고, 라일, 에이어, 오스틴의 시대는 기억의 저편으로 퇴장했다. 오늘날의 분석철학은 옥스포드의 소박한 일상언어가 아니라 케임브리지의 현학성과 형식논리학이 주류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옥스포드 철학이 남긴 것은 무엇이고, 옥스포드 철학이 가지는 (그런 것이 있다면)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옥스포드 철학에는 일상언어철학 외에도 더 다양한 빛깔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일상언어철학자'로 묶어 부르는 이들 철학자들은 사실 그 누구보다 날카롭게 대립했다. 에이어와 오스틴은 서로를 격렬하게 (그러나 점잖게) 비판했으며, P. F. 스트로슨 또한 선배인 오스틴을 비판하며 그를 극복하고자 했다. 더 나아가 일상언어철학이라는 조류 자체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 반(反)옥스포드적 옥스포드 철학의 선봉은 모두 여성이었다. 엘리자베스 앤스컴, 필리파 풋, 아이리스 머독, 메리 미즐리는 (비록 세부적인 면에서는 하나로 묶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일상언어철학이 도외시했던 윤리학에 천착했으며, 윤리학을 기껏해야 '도덕적 명제들의 의미를 밝히는' 언어 분석 작업으로 취급했던 옥스포드 철학의 주류에 맹렬하게 반대했다. 아이리스 머독은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을 위시하여 옥스포드 철학이 병적으로 멀리하던 '대륙'철학을 수용하여 자신의 철학적 소설에 녹여냈다. 앤스컴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나름의 방식으로 수용하여 옥스포드에 전달하는 한편, 오늘날 덕 윤리학(virtue ethics)과 행위철학(philosophy of action)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되는 분과의 기틀을 마련했다. 내가 이들에게 한 문단만을 할애하는 이유는 이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들 네 명의 여성 철학자를 다룬 책 <형이상학적 동물들>을 곧 읽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개별 철학자들 외에, '옥스포드 철학'으로 묶이는 이 지적 운동이 남긴 유산이 있을까? 이 책의 저자 크리슈난은, 옥스포드 메타윤리학자였던 R. M. 헤어의 표현을 빌려, 옥스포드를 철학 학파(school of philosophers)가 아니라 철학자들을 위한 학교(school for philosophers)로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옥스포드 철학은 하나의 통일된 사조나 방법론을 공유하는 학파가 아니었다. 그러나 옥스포드 철학자들이 체현하고자 열망했던 공통된 미덕이 있었으니, 이는 "겸손, 자기반성(self-awareness), 동료의식, 우아함, 명료함"이었다.


옥스포드 철학자들은 (더는 그렇지 않지만) 논문 출판보다 가르치고 토론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이들은 겉치레나 형식보다 거침없는 비판과 토론을 통한 진리 추구를 가치 있게 여겼다. 우아하고 격조 높은 문장을 쓰는 능력은 옥스포드 철학자들의 공통된 미덕이었다. 옥스포드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명료하게 표현할 것, 차이가 있는 것은 구별하여 불필요한 혼란을 피할 것, 그리고 그 의미를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긴 (혹은 짧은) 단어를 쓰지 말 것"을 가르쳤으며, "효과적이고, 모호하지 않으며, 명료하고 정돈된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것"을 강조했고, 그러한 글은 "그 바탕이 되는 생각 자체에 그러한 미덕이 없으면 결코 쓸 수 없다고 믿었다." 또한 옥스포드 철학의 축소주의적 비전은 상아탑 철학자들의 유희가 아니라 겸손과 자기반성의 표현이었다. 버나드 윌리엄스의 표현을 따르자면,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먼저 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분별 없는 폭력적 혁명으로 곧장 나아가는 것만큼이나 "그 자체로 정치적 책임의 신조"가 아니겠는가?


이 미덕의 목록은 옥스포드에 고유한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소크라테스가 맞서 싸웠던 소피스트리가 사익을 위해 비합리적이고 교묘한 수사를 거리낌 없이 활용하는 방법이라면, 소크라테스가 그렸던 철학과 철학자의 비전은 "엄밀하고 자기반성적인 대화를 통한 사심 없는 진리의 추구"였다. 이는 시대와 학파를 막론하고 철학이라는 프로젝트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모범이자,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옥스포드는 과연 '철학자들을 위한 학교'였다.


만약 옥스포드 철학의 정체성이 사조나 방법론에 관한 것이라면, 오늘날 옥스포드 철학은 죽었다. 옥스포드 철학은 낡았고, 고루하며, 더이상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옥스포드 철학이 철학자, 나아가 생각하고 탐구하는 인간의 미덕에 관한 것인 한, 옥스포드 철학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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