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Cho's Strange Trip to Busan 2
조변호사는 긴긴 여름 해조차 뉘엿해질 즈음에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마중 나온 형과 함께 해운대에서 저녁 시간을 보낸 뒤, 예약해 둔 기장 연화리 부둣가의 호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해운대도 광안리도 아닌 연화리에 간 이유는 조변호사가 인적이 없는 곳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조변호사는 물과 돌멩이만 있는 곳, 그래서 그가 더는 삶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이성적 판단에 이르러 남해 바다에 입수하게 되더라도 아무도 그를 구해내지 못할 만한 곳을 원했습니다. (농담입니다!!) 그러나 연휴가 낀 극성수기 부산에 그런 곳은 찾기 어려웠지요. 연화리 앞바다는 조용하긴 했으나 사람이 전혀 없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조변호사는 원래 자기 전에 《스토너》를 좀 더 읽을 심산이었습니다. 조변호사는 열차 안에서도 계속 그 책을 읽었고, 이제 절반쯤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스토너》는 한 호흡에 읽어내려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챕터가 넘어갈 때마다 숨을 돌리며 읽은 탓에 진도를 많이 빼지 못했습니다. 권태로우리만치 단조롭고 예측가능한 윌리엄 스토너의 인생이 참 견디기 쉽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반전이라든지 극적인 요소라고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윌리엄 스토너의 무채색 인생이 자신의 삶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조변호사는 느꼈습니다. 어쨌든, 조변호사는 해운대에 예상보다 오래 머물다가 야심한 시각에 들어온 탓에 씻고 눕자마자 곯아떨어졌고, 그의 독서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스토너》는 이튿날 아침까지 손길이 끝내 닿지 못한 채로 화장대 겸 테이블에 놓여만 있었습니다.
⠀
조변호사는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났습니다.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햇살은 뜨거웠고 밤에는 어두워서 안 보이던 잔잔한 바다가 손 닿을 듯이 가까웠습니다. 그는 바다 쪽으로 약간 걸어나갔습니다. 백사장은 없었지만 아기자기한 횟집, 카페, 숙박업소들이 아담한 2차선 차도를 사이에 두고 바다에 맞닿아 있었습니다. 저 멀리 왼편에는 부두가 보였고, 길게 늘어선 천막 아래 갓 건져 올린 해산물을 판매하는 듯한 작은 시장도 있었습니다. 딱 적당한 부산스러움 - 말장난 아닙니다! - 에 조변호사는 기분이 약간 좋아졌습니다. 그는 횟집들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있는 세련된 카페 하나를 점찍어두고, 일단 부둣가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
부두에는 인접한 작은 섬 – 조변호사가 나중에 네이버 지도로 찾아본 결과, 그 섬의 이름은 죽도였습니다 – 으로 넘어갈 수 있는, 귀여운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조변호사는 그 다리를 건넌 다음, 바닷물에 반쯤 잠긴 채 봉오리만 위태롭게 내놓고 있는 바위들을 폴짝폴짝 건너뛰어 섬의 측면으로 돌아갔습니다. 거기에는 돌담과 녹슨 철제 대문이 있었고 수목이 울창했습니다. 나무에 가려 대문 안쪽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버려진 집인 듯했습니다. 대문 앞에는 사람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정도의 폭으로 콘크리트 포장된 마당 같은 육지가 있었고, 아주 잔잔한 파도가 그 경사면에 부딪혔다가 부드럽게 물러나기를 반복했습니다.
⠀
조변호사는 거기에 앉아 남은 오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부산의 태양은 뜨거웠지만 일단 그늘에 들어가기만 하면 선선한 바닷바람 덕에 꽤나 견딜 만한 온도가 되었습니다. 조변호사가 택한 자리는 대문 안쪽으로부터 바깥으로 길게 늘어진 나뭇가지들이 쉴 만한 그늘을 마련해주었고, 아슬아슬하게 솟은 바위들을 밟고 와야만 하는 외진 장소였기 때문에 방해하는 사람 없이 생각에 잠기기를 원했던 조변호사에게 딱 알맞은 자리였습니다.
⠀
그리 멀지 않은 물가에 거대한 선홍색 해파리 두 마리가 꾸물거리고 있었습니다. 종류도 알 수 없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녀석들인지, 아니면 수온이 따스해진 탓에 연안까지 밀려왔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조변호사는 해파리를 바라보면서 《시지프 신화》의 첫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카뮈가 시공간을 가로질러 이렇게 묻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지금 저 해파리에 쏘여 생을 마감하지 말아야 할 절박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너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 것인가?
《스토너》는 윌리엄 스토너의 탄생부터 임종까지의 인생을 좇는 연대기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실질적인 출발점은 스토너가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하게 되는 1910년부터입니다. 스토너의 탄생부터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1910년까지의 삶에는 단 두 페이지가 할당될 뿐입니다.
⠀
그렇게 본다면 《스토너》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질문으로 끝을 맺는 소설이 됩니다. 윌리엄 스토너가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1917년, 미국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오랜 고립주의를 버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합니다. 젊은이들은 모병소로 달려갑니다. 스토너의 박사과정 동기생이자 유일한 친구들인 데이브 매스터스와 고든 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스토너에게도 자원입대할 것을 권유합니다. 그러나 스토너는 망설입니다.
⠀
스토너는 친구들에게, 아처 슬론 교수님과 면담한 후 결정을 내리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이윽고 슬론 교수를 찾아가지요. 슬론 교수는 징병에 응하지 않을 경우 스토너가 놓이게 될 상황에 대해 설명한 다음, 궁극적인 선택은 스토너의 몫으로 남겨 둡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인류가 겪은 전쟁과 패배와 승리 중에는 군대와 상관없는 것도 있어. 그런 것들은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 이 점을 명심하게.” 문장의 형태는 질문문이 아닐지라도 슬론의 말은 결국 질문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스토너에게, 그리고 《스토너》의 독자들에게, 슬론은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너는 누구인가?”
스토너는 징병을 유예하고 대학에 남기로 선택합니다.
⠀
소설의 끝자락에서 윌리엄 스토너는 임종을 맞습니다. 스토너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은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어서 독자에게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순간, 스토너는 과거를 톺아보며 자신의 실패를 가늠해봅니다. “그는 냉혹한 눈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인생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고, 지혜로운 선생이 되고 싶었으며, 가정을 이루고 싶었고, 사랑을 하고 싶었습니다. 윌리엄 스토너의 인생은 그 어느 방면에서도 썩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스토너가 자신의 인생을 되짚는 이 부분은 다소 길지만, 인용할 가치가 있습니다.
⠀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중략]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
그리고 나서 그는 스스로에게 되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what did you expect?)
⠀
조변호사가 생각하기에는, 젊은 날의 슬론과 마지막 숨을 붙들고 있는 스토너는 결국 같은 것을 묻고 있었습니다.
중년의 중견 교수가 된 스토너는 영문과 대학원생인 찰스 워커의 구두시험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게 됩니다. 그는 이 자리가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 구두시험이 열리게 된 원인을 바로 스토너 자신이 제공하였기 때문입니다. 워커는 스토너가 지도하는 세미나를 수강하였고, 거기서 그가 대학원에서 학업을 계속하기에는 함량 미달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워커는 심지어 세미나 보고서를 거짓으로 꾸며내려고까지 했습니다. 스토너는 그에게 낙제점을 주었습니다. 이제 워커는 구두시험에서 통과하거나 대학원을 그만두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
영문과의 실세인 홀리 로맥스 교수가 워커의 지도교수였던 까닭에, 스토너는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기를 더욱 꺼렸습니다. 로맥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워커를 강력히 지지하였고, 스토너는 그와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미주리 대학의 규정상 스토너는 구두시험 심사를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
시험은 예정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심사위원은 로맥스와 신임 교수인 짐 홀랜드, 그리고 스토너였습니다. 사전에 입을 맞춘 덕에 워커는 로맥스의 질문에 매우 훌륭하게 답변했습니다. 다음으로 홀랜드 교수가 질문을 시작하자, 로맥스는 노골적으로 개입하여 홀랜드의 질문을 워커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홀랜드는 당황하지만, 로맥스를 제지하지는 못합니다.
⠀
이제 스토너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스토너는 기초적인 영문학 지식을 묻습니다. 워커는 예전에 스토너의 세미나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질문과 무관한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합니다. 스토너는 워커의 말을 끊으면서,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할 것을 요구합니다. 로맥스도 방금 전에 그랬듯이 다시 개입하려 합니다. 스토너는 로맥스조차 단호하게 제지합니다. 결국 워커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시험은 마무리됩니다.
⠀
워커가 시험을 통과하여 학업을 계속하려면 심사위원 세 명의 만장일치 의견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스토너는 워커를 합격시키는 것을 거부합니다. 로맥스는 스토너와 협상을 시도하고, 그를 회유하기도 합니다. 끝내는 화를 내며 그를 협박합니다. 스토너의 오랜 친구이자 이제는 문리대학장이 된 고든 핀치까지 나서서 스토너를 설득해보려 합니다. 그러나 스토너는 마음을 바꾸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로맥스가 학과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사실, 그가 총장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자신의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스토너는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
“젠장”, 핀치가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그 친구는 여기서 일이 잘 안 되면 어디 다른 학교에 가서 학위를 받을 수 있네. 아니,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도 여기서 일이 잘 풀릴 수도 있지. 자네가 무슨 짓을 하든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네. 워커 같은 친구들이 여기서 공부하는 것을 막을 수 없어.” “그럴지도 모르지.” 스토너가 말했다. “하지만 시도해 볼 수는 있네.”
⠀
핀치는 스토너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때, 스토너가 핀치의 팔을 붙잡습니다. "고든, 데이브 매스터스가 옛날에 했던 말 기억하나?" 스토너는 그와 핀치의 옛 친구를 언급하며 말합니다. "대학이 소외된 자, 불구가 된 자들이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는 피난처라는 얘기를 했어. 하지만 그건 워커 같은 친구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지. 데이브라면 워커를……. 세상으로 보았을 걸세. 그러니까 그 친구를 허락할 수 없어. 만약 우리가 허락한다면, 우리도 세상과 똑같이 비현실적이고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은 그 친구를 허락하지 않는 것뿐일세.“
⠀
다음 학기, 로맥스 교수는 영문과 학과장으로 임명됩니다. 워커는 곧바로 대학원으로 돌아옵니다.
조변호사는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서 스토너의 행동을 음미해 보았습니다. 그는 스토너의 행동을 이해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스토너의 모습으로부터 카뮈가 그려낸 부조리의 영웅, 시지프를 어렵잖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시지프는 언덕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립니다. 정상에 오르자마자 바위가 다시 산비탈을 타고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는 바위를 밀어 올립니다. 스토너가 결과를 바꿀 수 없음을 알면서도 타협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지요.
⠀
그렇다면 스토너가 보여준 모습을 영웅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기엔 다소 소박한데요. 스토너는 시지프처럼 우주의 무목적성이나 숙명적 부조리에 장엄하게 맞선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조변호사는 적확한 단어를 찾아 머릿속의 낱말들을 헤집었습니다. 이내 그는 꼭 맞는 단어를 찾았습니다. 수수하지만 중심이 단단해서 두드리면 둔탁한 소리가 날 것만 같은 단어. 품격(character). 스토너가 보여준 것은 품격 있는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
아, 아름답다, 조변호사는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워.
⠀
조변호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훌훌 털었습니다. 이제 그는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는 시선은 저 멀리 수평선에 고정한 채로, 제자리에서 빙빙 맴돌았습니다.
⠀
사실 조변호사도 품격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꽤나 최근의 사건이었지요. 그를 부산으로 내려보낸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세상이,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그 명징한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하여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갈 때, 그렇게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삶을 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울 때조차 차마 타협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읽어온 글들, 해왔던 생각들, 나누었던 대화들, 지난 세월 자신을 빚어온 모든 것들을 차분히 떠올려 보았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그가 발견한 것들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
‘언제나 자기에게 충실할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 그러나 바꿀 수 없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것,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할 것,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품격 있는 사람으로 남을 것.’
⠀
조변호사는 자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일상적인 의미의 성공이나 실패와는 별다른 상관이 없다는 데에 약간 놀랐습니다. 자기에게 충실하겠다거나 품격을 지키겠다거나 하는 다짐은 대체로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삶을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는 일은 더욱더 드물지요. 워커를 결코 강단에 세울 수 없다는 스토너의 뚝심조차 종국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그를 평생 조교수의 자리에 머무르게 하였듯 말입니다. 우리의 세계는 눈으로 가늠할 수 있고 손으로 셈할 수 있는 것들에 자주 관대합니다. 그러나 측량할 수 없는 가치들은 주관의 영역에 머무르며 왕왕 잊힙니다.
⠀
다른 한편으로 그는, 그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보면 전혀 무의미하다는 사실에도 새삼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조변호사의 삶은 지극히 찰나이고, 당장 그가 사라지더라도 세계는 미세한 떨림조차 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만약 이 우주에 끝이 있다면, 그때는 조변호사의 가장 희미한 흔적까지도 사라지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자기충실이나 품격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나요.
⠀
조변호사는 수평선에 시선을 꽂은 채 이 무의미를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왠지 들지 않았습니다. 무의미가 무가치를 함축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은 바로 이런 모습을 두고 “아이러니(irony)”라는 표현을 썼지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조차 약간의 거리를 두고 보면 – 혹은, 네이글의 표현을 따르자면, “무관점의 관점(the view from nowhere)”에서 보면 –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 이것이 부조리(absurdity)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부조리를 인식하면서도 삶을 향한 애착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바로 이 아이러니 가운데 놀라움이 깃들었던 것입니다.
⠀
조변호사는 스물일곱의 카뮈가 스승 장 그르니에에게 보낸 서신의 한 소절을 떠올렸습니다.
적어도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이 광란 속에서 제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을 붙잡고 있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너무나 많은 가치들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 최소한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가치들만이라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처지가 시지프보다 나은 바 없다고 한탄하던 사람이 썼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확신에 찬 문장들이었습니다. 약간의 동질감이 느껴졌습니다.
⠀
"너는 누구인가?"
⠀
아처 슬론의 말에 함축된 이 질문을, 조변호사는 다시 곱씹어 보았습니다. 스토너는 이 질문에 명시적으로 대답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스토너는 워커의 합격 여부를 결정하여야 하는 순간에 그를 끝내 불합격시킴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스토너의 행동이 그 무엇도 바꾸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스토너는 자기 자신을 바꾸었습니다. 조변호사가 보기에, 그 행동을 하기 전의 스토너와 그 행동을 한 이후의 스토너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스토너는, 언어보다 더 명료하게, 자기가 누구인지를 드러냈습니다.
⠀
《스토너》의 이 장면은, 문학사의 또 다른 위대한 인물 하나를 떠올리게끔 합니다. 그는 스토너처럼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돈키호테는 사람들로부터 왜 자꾸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지 설명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그는 자기를 합리화하지 않고, 단지 이렇게 대꾸합니다.
Yo se quien soy – I know who I am.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광인이었지만,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욱 명료하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아상에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행동했습니다.
⠀
조변호사는 이제, 인생이 별 볼 일 없다는 것 말고도 자신과 스토너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조변호사도 자기의 내면에서 한 충동을 발견했습니다. 이 권태와 무기력이 그에게 주어진 나날들이 끝날 때까지 유령처럼 주변을 배회할 것을 알면서도,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무의미함을 알면서도 어떤 삶의 양식(mode of life)을 추구하려고 하는 충동이었습니다. 조변호사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명료하게 인식하기를 바랐습니다. 그가 발견한 스스로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자기에게 충실할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 그러나 바꿀 수 없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것,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할 것,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품격 있는 사람으로 남을 것.’ 그는 그 자아상에 걸맞는 모습으로 삶을 조각해 나가기를 바랐고, 이로써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스토너와 돈키호테가 했던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아름다움과 인간됨을 확증하는 한 편의 이야기나 예술작품으로 남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는 이 충동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정오의 햇빛처럼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
조변호사는 삶을 반드시 외부적 기준에 비추어 정당화할 필요는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우리는 성공과 실패, 의미와 무의미, 행복과 불행, 풍요와 가난으로 삶을 재단하는 대신,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내면에 직접 세운 탁월함의 기준에 따라 삶을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삶은 마치 예술가가 예술작품을 빚어내듯 자아상에 걸맞는 모습으로 자기를 끊임없이 재창조해나가는 과정이며,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객관적 지표로 측량할 수 없는 심미적 가치(aesthetic worth)를 가집니다. 조변호사가 로맥스에 맞서는 스토너를 바라보며 경탄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삶은 계산하고 측량하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품위 있고 아름다운 무엇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술로서의 삶(life as art)이라고 할까요.
⠀
저는, 마치 남의 것처럼 낯설었던 삶이 다시 손끝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로스쿨 2학년생이던 2018년의 어느 가을날을 떠올렸습니다. 「형사재판실무」 과목을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형사재판의 판결문은 가히 기하학적이라고 할 만한 형식성이 지배합니다. 복수의 대상들을 짝짓는 ‘각’이라는 글자를 문장의 어느 위치에 삽입하여야 하는지까지도 미리 정해져 있습니다. ‘각’의 위치를 암기하다 보면 인생이 더없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판결문 쓰는 기계가 된 것 같았지요. 그 가을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충동적으로 펜을 내려놓고, 손을 뻗어 책장에서 책 한 권을 빼 들었습니다. 사놓고 읽지 못하던 철학서였습니다. 책을 펼쳐 첫 번째 챕터를 읽어내려갔습니다. 반쯤 읽었을 때, 문득 언젠가는 꼭 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수가 되겠다거나 뛰어난 철학자가 되겠다는 식의 다짐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것이 올바른 삶(a proper life)이라고 느꼈고,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이상의 정당화는 할 수 없었고, 증명해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
시계가 어느덧 오후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소금을 머금은 바닷바람이 팔에 끈적하게 매달려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조변호사는 움직일 채비를 했습니다. 바닷가에서 혼자 보낸 두세 시간이 조변호사를 둘러싼 객관적 조건을 바꾸어 주지는 않을 터였습니다. 다만, 삶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건져냈다는 생각에, 조변호사는 약간 뿌듯해졌습니다. 발걸음을 옮기며, 그는 언젠가 카뮈가 썼다는 문장을 마음속으로 읊조렸습니다.
⠀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마침내 결코 사라지지 않을 여름이 내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 3편에 계속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