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변호사의 기묘한 부산 여행과 윌리엄 스토너의 인생-3

Attorney Cho's Strange Trip to Busan 3

by Juno

죽도에서 아침을 보낸 조변호사는 미리 점찍어뒀던 그 카페에 가서 《스토너》를 읽다가, 오후 두 시쯤 형 내외를 만났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귀여운 조카도 처음 만났지요. 조변호사 일행은 기장 부근의 어느 오션뷰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볼거리가 풍성한 기장 힐튼호텔로 놀러갔습니다. 호텔은 한 층 전체가 '이터널 저니'라는 이름의 서점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평소에 서점에서 못 보던 신기한 책들이 많았습니다. 조변호사는 책을 사랑하고 읽지도 않을 책들을 사들이는 친구를 떠올렸습니다. 같이 왔더라면 좋았겠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바깥으로 나가니 탁 트인 바다와 산책로가 있었습니다. 너르고 푸른 바다와 위엄 있게 솟은 바위, 은은한 주황빛이 감도는 하늘의 멋진 풍경을 조변호사는 잠시 넋 놓고 감상했습니다. 그는 산책로를 따라 끝까지 걸어가보고 싶어졌지만, 날이 서서히 저물고 있었고 그날 밤에 서울로 돌아가야 했기에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멀찍이 뒤를 돌아보니 잘 정돈된 잔디밭에 형과 형수, 조카의 모습이 정다워 보였습니다. 역병이 무색한 인파 사이에서 세 사람만 반짝 빛나는 것 같았습니다. 조변호사는, 저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결론이 되는 삶도 썩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약간 놀랐습니다. 전날 밤 해운대에서 형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형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고 말했습니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처럼 저마다의 불안과 떨림을 안고 살면서도 삶이 쉽게 바스라지지 않는 것은 서로의 그늘진 곳을 이해하는 타인의 존재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변호사는 저 잔디보다 단지 조금만 더 오래 푸르를 뿐인 인간의 삶이 억겁의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바다와 하늘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묘한 신비를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씁쓸함도 교차했습니다. 씁쓸함은 당연히 바닷바람에 실려온 소금 때문이었지요. 블레즈 파스칼은 “사람은 어느 한 극단으로 쏠림으로써가 아니라 두 극단에 동시에 닿음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낸다”고 썼습니다. 조변호사는 자신의 삶이 위대함에 얼추 근접하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삶에 대한 성찰이 자기연민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씁쓸함을 꿀꺽 삼켰습니다.




임종 직전에 스토너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을 기억하시나요.


조변호사는 예전에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 Writing and the Meaning of Life>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가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자문하며 흐릿하게나마 윤곽을 잡아가기 시작하던 시절에 끄적인 졸필이지요. 지금은 물론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글입니다. ("바이런의 회고록처럼 벽난로에 던져 버리고 싶은 글입니다"라고 썼다가, 너무 강한 것 같아 고쳐 썼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정도로 엉망은 아닌 것 같네요.) 이제 보면 문장이 참 조야하고 내용도 엉성합니다. 1년 반 사이에 생각이 좀 바뀌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그가 아직까지 참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삶은 회고적 관점에서 완결된 전체로 보지 않으면 결코 정당하게 평가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고, 거기 선 채로 삶을 하나의 완결된 전체로서 평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현재는 과거가 되고 더는 임박할 미래가 남아있지 않은 그 순간에, ‘오늘을 위해 살라’거나 ‘내일을 위해 투자하라’는 뻔한 말들은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삶을 온전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겠지요.


그래서, 스토너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만큼은 '살아봄직한 삶이었다'고 회고해 주기를, 조변호사는 간절히 바랐습니다. 서울행 일곱 시 기차에 올라탄 참이었습니다. 여행과 함께 《스토너》도, 그리고 윌리엄 스토너의 인생도 종장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는 임종 직전에 이렇게 묻습니다. 앞서 언질을 했지만, 조변호사는 이 질문과 "너는 누구인가?"라는 슬론의 물음이 결국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즉 자신의 삶을 어떤 잣대로 평가할 것인지는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에 필연적으로 달려 있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스토너는 처음에는 "냉혹한 눈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합니다.


그때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가 자신의 실패에 침잠하던 스토너를 흔들어 깨웁니다. 마침 그의 뒷마당 잔디밭을 가로지르던 한 무리의 학생들이었습니다. 그 웃음소리가 스토너로 하여금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였던 것인지 아니면 약동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상기하게 한 것인지 조변호사는 알 수 없었습니다만은- "넌 무엇을 기대했나?" 하고 스토너가 다시 묻자,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습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그는 누운 자리 옆에 놓인 협탁으로 손을 뻗습니다. 거기서 자기가 젊은 시절 썼던 책을 집어듭니다. 「조변호사의 기묘한 부산 여행기」가 그렇듯 그 책이 별로 읽히지 못하고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스토너의 한 조각이,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들려온 셰익스피어의 목소리로부터 자기가 누구인지를 발견했던 소년의 한 조각이, 결과값과 이해득실의 논리보다 품위와 아름다움과 자기에게 충실함과 올바른 삶을 선택했던, "끝내 위엄을 잃지 않은 인간"의 한 조각이 담겨 있었으니까요.


윌리엄 스토너의 인생은 막다른 길에 다다랐습니다. 1956년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조변호사는 서울역 승강장에 내렸습니다. 월요일 밤이었습니다. 차진 여름밤의 공기. 그의 앞에 삶이 놓여 있었습니다.


FIN.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