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먼 곳으로
정거장에 오래 앉아 있을수록
가장 먼 곳으로 가는 사람이다
우산의 소실점 밖으로 빗물이 튕겨나간다
나는 어딘가로 가고 싶은 사람처럼 앉아있다
멀리 있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스위스 어느 언덕에서 살고 있다고
매일 아침 수프를 끓이고 파이를 구우면서
지평선 너머에 있는 내가 떠올랐단다
나는 수프를 담을만한 대접을 찾아 찬장을 뒤적였고
방문 틈으로 노모의 기침소리가
펄펄 끓는 물에 소금 간을 했다
내가 있는 곳엔 시차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산다
밤과 새벽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이곳에도 저곳에도 떨어지지 못한 채 유랑하는 시간들
말하자면 한없이 높아지다 빵 터지는 애드벌룬처럼,
한 번도 살아 본 적 없는 앨리스가 되는 순간
스위스의 파이 냄새가 부엌으로 쏟아진다
창밖으로 푸른 잔디가 일렁거리고
블루베리를 닮은 아이들이 뛰어나간다
싱크대 배수구에 낀 쪽파를 보면서
파이를 입에 넣고 토핑 된 생크림을 삼킨다
나는 어딘가에 가야 할 사람으로 정거장에 앉아있다
오래도록 먼 곳으로
오랜만에 옛 동료 선생님과 술자리를 가졌다. 20대 후반에 접어서 많은 고민을 가진 내게, 30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 걱정을 지금도 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어디론가 가고 싶은 사람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가야 할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