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아파트

by Haley


신축 아파트 입주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한다.

오래된 구축에서 살다가 새 아파트로 왔더니 집에서 막 빛이 났다.
집 안에서 터치 패드로 엘리베이터를 호출하고 출입문을 열어주며 택배 도착을 알려준다. 욕실의 타일 한 장부터 거실 바닥의 마루 한 장까지 모두 새것이었다. 엘리베이터로 지하 주차장까지 한 번에 이어져 비 오는 날에도 우산 같은 게 필요 없었다.
이제 나는 지하 주차장 연결이 없는 아파트에서는 살 수 없게 됐다.

생애 첫 내 집에서 나는 열심히 대출금을 갚았다.
지금의 부동산 시세를 생각해 보면 그리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너무 큰 빚이었다. 흔한 말로 남들 다 있는 명품 하나 없이 한동안은 빚 갚는 재미로 살았던 것 같다.

갓 돌 지난 아가를 아침 새벽같이 눈물로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며 맞벌이를 이어갔다. 사내 부부지만 그 사이 거리가 좀 있는 사업장으로 옮기게 된 남편 덕분에 등하원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남편에게 아침마다 애를 울려가며 출근하는 게 힘들다 했더니 그렇게 힘들면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육아를 하라고 했다. 누가 너한테 돈 벌어오라고 했냐면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대체로 그는 맞는 말만 하는 편이다) 나는 그 큰 빚을 하루라도 빨리 청산하고 싶었고, 육아 휴직 후 모처럼 복직을 하니 잃어버렸던 자존감도 되찾는 기분이라 일단 버텨보기로 했다. 그렇게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일명 워킹맘이 되었다.

당시 육아 휴직 급여는 휴직 기간에 75%만 지급하고 복직 후 6개월이 지나면 사후 지급금으로 25%를 일시불로 주는 시스템이었다.(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우선 그 돈은 받아야겠기에 6개월 만이라도 다녀보자 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몇 년이 금세 지나 버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만 더 다니고 그만두자. 1학년은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하다던데. 했는데 입학은 무슨 곧 졸업을 하게 생겼다.
주변에서 얘기하길, 그때 말한 아이 입학이 혹시 대학 입학이었냐고 한다.
어쩌면 그럴 지도.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 자녀 육아로 퇴사를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나는 조금 더 버텨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경험에서 육아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는 반드시 성장한다는 것이다. 영원히 엄마를 찾는 아기일 것만 같았는데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어느 순간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청소년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시간은 늘 그렇듯 지나고 보면 항상 짧기 마련이다.

그러는 사이 그렇게 커 보이던 빚도 갚아졌고 연봉도 꽤 올랐으며 아이도 제법 자라나 나에게도 나를 돌아볼 여유 같은 게 생겼다.
그동안 남몰래 눈여겨봤던 친구들의 명품백을 따라 사들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한 후 이듬해에 결혼, 그와 동시에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며 20대를 보내버린 내 인생에 대한 보답처럼 틈틈이 여행도 즐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남편도 그러려니 하는가 싶더니 이내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거덜 나겠다.
우리 집 돈은 네가 다 쓰는구나.
이러다 말년에 리어카 끌겠다.
너 돈 많더라?

생활비를 내가 관리해서인지, 남편은 자신도 써 대면서 종종 나만 비난했다. 심지어 우린 맞벌이인데도. 듣기 싫어졌다. 대책이 필요했다. 하지만 돈이란 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써지는 것이라 막상 모으는 게 쉽지 않았다.

이미 나는 초심을 잃었다. 그 분야에서 내가 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무래도 대출을 지고 갚는 것이었다.
역시 부동산인가?

코로나와 함께 미쳐 날뛰던 부동산 집값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었다. 때마침 그토록 빛나던 우리의 새 아파트도 10여 년의 세월 앞에 그 빛을 잃고 수리할 곳들이 생겨났다.

아무래도 이사를 가야겠어.

keyword
이전 03화이사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