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의 입주는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틈틈이 방문해서 베이크 아웃도 해줘야 하고 하자 체크도 해야 했으며 입주 청소는 물론 집안 곳곳의 치수를 열심히 재서 가구 배치도 고민해야 했다.
임시 거처를 벗어나 이제 진짜 내 집이란 생각에 대충 쓰던 왕자 행거를 청산하고 제대로 된 붙박이장을 제작했다. 물론 우드로 된 비싼 블라인드와 커튼 등도 놓치지 않았다.
새 집 증후군이라도 생길까 입주 전 수시로 환기를 하던 시기였는데 비 예보가 있는 날이면 가서 창문을 닫으라는 남편의 지시가 간간이 떨어졌다. 8월의 한 여름, 당시 육아 휴직 중이던 나는 아이를 아기 띠에 매고 때론 유모차에 태워서 틈나는 대로 그렇게 새 집엘 들락거렸다.
옆 동네 이사였지만 내 딴에는 큰일이었다. 돌쟁이 아기가 걱정돼서 남편에게는 짐이 거의 없는 빈 방에서 아이만 잘 챙겨 달란 부탁을 한 후 이사 전반을 내가 열정적으로 진두지휘했다.
포장이사인데도 집주인은 챙길 게 많았고 9월 날씨는 여전히 더웠으며 나는 이내 땀범벅이 되었다. 짐도 별로 없다 생각했는데 이사는 해 질 녘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인부들이 돌아가고 옷장을 여니 옷가지들을 넣어 놓은 리빙 박스가 박스 채 쑤셔 박혀 있었다. 한숨이 났다.
그때 이사 내내 빈 방에 있다 나온 남편이 말했다.
"피곤한데 반신욕이나 해야겠다."
한참 만에 모락모락 수증기를 달고 뽀송해진 남편이 나왔다.
혼자 개운해 죽겠냐? 비꼬며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사 첫날이니 만큼 싸우지 않고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은 마음에서였는데, 이렇게 잊히지 않는 걸 보니 실패한 것 같다.
손 없는 날 한다고 주말에 이사를 했더니 다음날이 바로 월요일이었다. 착실한 남편은 출근을 했고 늘 그랬듯 사교성을 뽐내며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저놈의 옷장을 다 뒤집어엎어서 하루빨리 옷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린 아기를 데리고 혼자서는 도무지 짬이 나질 않더라. 당시에 대학생이던 동생이 생각났다. 조카라면 깜빡 죽는 동생을 꼬드겨 2박 3일 간 우리 집에서 아이를 보게 하고 나는 집을 정리했다.
나의 체력과 정신력을 갈아 넣어 몇 일간의 집 정리가 끝나가던 날이었다. 어김없이 착실하게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이 말했다.
“우리 집(시댁) 집들이는 언제 해? 이사를 하면 뭐 해. 여태 엄마, 아버지도 못 보여주고. 회사에서도 다들 난리야. 집들이는 언제 할 거냐고."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었단 사실을 나는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이사에 대한 추억이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두 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