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여행의 하루는 끝났는데, 방 안의 불을 끄고 자기엔 왠지... 아쉬운 그 시간.
'DND' 팻말을 건 방 안은 완벽하게 고요하지만,
가끔은 그 고요함이 좀, 심심할 때가 있죠.
"맥주... 한 캔 할까?"
미니바는 비싸고. 룸서비스는 거창하고.
그럴 때, 슬그머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L' 층을 누릅니다.
'호텔 바'.
솔직히, 동네 술집은 혼자 가기 좀 그렇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호텔 바'는, 혼자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둡고, 조용하고, 적당히 무심한 공기.
쿵쾅거리는 음악 대신, 나지막한 재즈나 피아노 소리.
테이블에는 앉지 않아요.
혼자 테이블에 앉는 건... 왠지 좀, 쓸쓸해 보이니까.
당당하게, 바텐더가 있는 그 '바(Bar)' 자리로 걸어갑니다.
이게 '룰' 아닌가요?
혼자 온 사람은, 바텐더의 영역에 앉는다.
"뭐... 드릴까요?"
바텐더는 묻지 않아요. "어디서 오셨어요?"
그냥, 딱 필요한 말만 하죠.
잔을 닦으며, 나에게 적당한 거리를 둬 줍니다.
아, 이 '적당한 무관심'.
이게 얼마나 편한지.
주변을 둘러보면,
저 구석자리엔... 여행 온 연인 같고요.
저쪽엔... 출장 온 직장인들 같네요.
서로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바(Bar) 의자에 혼자 앉은 저 따위엔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이 완벽한 '익명성'.
'카드 키'가 나를 '투숙객'으로 만들었다면,
호텔 바는 나를 '풍경 1'로 만들어줍니다.
얼음이 잔에 부딪히는 소리,
사람들의 그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
그 소리들을 배경음악 삼아 칵테일 한 모금을 넘깁니다.
솔직히, 술맛? 잘 몰라요.
그냥, 이 '분위기'를 마시는 거죠.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것 같은.
시끄럽지 않지만, 외롭지도 않은.
여행지에서의 낯선 밤,
그 어색한 공백을 가장 완벽하게 메워주는
하룻밤의 다정한 위로.
호텔 바는, 그런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