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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밍키 Feb 20. 2021

칭찬하는 장면을 편집하지 않는 이유

오글거리는 거 알아요




진행자인 재재나 <문명특급>을 칭찬하는 부분은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출연자가 “문명특급은 역시 다르다”, “재재님 진행 덕분에 편안했어요”라고 하는 멘트를 굳이 편집하지 않는다.

최근에 받은 칭찬 모음.jpg 출처 문명특급

사실 이런 구다리는 편집을 해도 무관하다. 현장에서도 공식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닌 사담처럼 나왔던 대화였기 때문에 이런 장면을 넣는 것이 흐름을 깨기도 한다. 이것이 방해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편집하지 않았다. 나의 평소 성격을 아는 지인들은 아마 의외라고 볼 것이다. 나는 표현에 굉장히 무색하고 칭찬을 받으면 아주 질색 팔색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오글거린다’라는 말로 정리해 버린다.




내 생각이 바뀐 것은 문명특급 125화인 수현 OPPA 편에 달린 아이디’ 김성규’ 님의 댓글을 보고 난 이후다.

엄청 노력해서 한 일도 그냥 대수롭지 않은 척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자기가 했던 노력들이나 거기에 가졌던 열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유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 앞 뒤 다른 응큼한 사람들한테 지쳤는데 이 영상 볼 때만은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뭔가 마음이 편안함. 오글거린다고 뭐라고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기분은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하게 좀 내버려두었으면.


이 댓글처럼 재재 언니가 한 노력을 아는 사람은 나와 우리 팀밖에 없는데 우리가 아니면 누가 얘기해줄까. 우리 팀원들이 영혼을 갈아 만든 콘텐츠인 걸 아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는데 또 누가 인정해 줄까. 우리가 못하는 지점은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이야기해주고 있으니, 우리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그냥 셀프 칭찬하기로 했다. 쿨 해 보이지 않아도, 자의식 과잉으로 포장돼도, 오글거린다는 소리를 들어도, 스스로 아낌없이 잘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 콘텐츠를 시청하는 구독자들에게도 같은 마음이 전달됐으면 좋겠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하면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시원하게 셀프 칭찬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보다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니까 말이다.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할 때 첫 발을 뉴미디어로 내딛고, 미디어 업계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숱하게 받아왔다. 전형적인 성과를 원하는 곳에서는 인정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나를 잘났다고 얘기해주는 사람보다 못났다고 지적해주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저런 걸 왜 하지?’, “쟤네는 시끄럽기만 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나는 뉴미디어에 진심이었지만 외부에서는 내가 하는 일을 매우 장난으로 여겼다. 남들이 주는 인정을 목 빠지게 기다리다 보니까 자존감도 떨어지고 자격지심도 생겼다. 그것들이 굳이 내 살을 갉아먹게 둘 필요가 없다. 내가 잘 한건 내 입으로 말해야 남들이 알기라도 한다. 자축 파티를 열고 한바탕 난리를 쳐야 더 알아준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칭찬이 나도 아직은 어색하다. 그럼에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결론을 얻었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는 옛말이 정말 맞는 말이다. 나를 아껴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 진리를 깨우쳐가고 있다. 나에게 집중하면 타인에게 사랑을 갈구하며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런 태도가 자의식 과잉이나 이기심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 경계선만 잘 지킨다면 내 정신에 유기농 채소를 먹이는 것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이것은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하지만 최근 <문명특급>이 백만 채널이 되면서 예전의 '아웃사이더', 'B급' 감성이 많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시청자들이 생긴 것 같다. 우린 여전히 업계에서 마이너하지만 보여지는 것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셀프 칭찬이 이제 좀 자의식 과잉처럼 보일 수도 있는 시점이다. 실제로 이 점이 불편하다는 댓글을 보기도 했다.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개선하는 것이 맞다. 이제 경계선을 지키는 의미에서 셀프 칭찬 구다리는 평소보다 덜어내려고 한다. 그런 장면을 좋아했던 문명인들도 있는데 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화면에 나오는 장면은 줄겠지만 화면 밖에서 우리 팀은 스스로를 아낌없이 칭찬하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문명인들도 아낌없이 스스로에게 칭찬을 던져주길 바란다.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볼수록 자존감 높아지는 채널을 같이 만들 가면 우리 모두 뿌듯함에 질식하는 날이 올 거다.




Side note:

'문명특급'의 구독자를 '문명인'으로 부릅니다.

그것은 은교 님이 정해준 이름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BS_HjfnT7w

[문명특급 EP.100] 상상도 못한 정체┏(ºдº)┛대체 어디까지 섭외할 예정임? 100회 특집 초대박 게스트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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