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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Dec 21. 2018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전 세계의 순례길을 걷다

순례길을 따라 인생길을 거닐어보세요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옵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고, 주어진 것에 순응하며 살기에는 왠지 억울한. 혹은 삶이 주는 무게가 너무 힘겨워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망망대해를 제대로 된 나침반 하나 없이 항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조금은 느린 템포로 걷고 싶을 때, 너른 길 위의 자유가 그리워질 때. 그런 절박함에 내몰린 이들을 순례길은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품어줍니다. 무너지지 말라고, 다시 일어서 걸으면 된다고 다독이며 말입니다.


눈물로 떠나 웃음으로 돌아오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km



서기 800년. 한 수도자가 이베리아 반도 서북쪽 갈리시아 지역의 하늘에서 내리비추는 빛줄기를 따라갔다 수풀 속에서 작은 묘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것이 사도 요한의 형제이자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의 묘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일 이 묘는 별빛이 머문 곳이란 뜻의 ‘캄푸 스텔라(Campus Stellae)’에 야고보(Jacob)의 스페인식 이름인 산티아고(Santiago)를 붙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불리게 됩니다. 이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정식 명칭. 천년의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이가 야고보를 기리기 위해 이 길을 걸었지만,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건 1987년 파울로 코엘료가 < 순례자 >를 출간한 이후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 그로부터 몇 해 뒤니까, 어쩌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파울로 코엘료의 길’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순례길은 프랑스 남부 국경 마을인 생 장 피에 드 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이어집니다. 수백 km 대장정에 두려운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모든 갈림길마다 야고보의 시신을 덮었다는 신성한 가리비 껍데기가 방향을 표시해줘 최종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다다를 수 있습니다. 길을 걷는 내내 오래된 교회와 로마 시대의 돌담, 아름다운 피레네 산맥과 황금빛 밀밭이 펼쳐집니다. 지친 심신을 위로받고, 포도밭의 향기에 취해 걷다 보면 마침내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당도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면 선물로 증명서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800km를 쉬지 않고 걸어온 이에게, 진정한 보상이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마음의 짐은 걸어온 길 위에 내려놓고, 삶에 대한 희열과 감사를 느끼는 그 순간을 겪고 나면 지겹기만 했던 세상이 조금은 달라 보일지도 모릅니다.


우주의 중심에서 영혼의 자유를 찾다
티베트 카일라스 55km



‘티베트의 영혼’, ‘신의 땅’ 혹은 ‘영혼의 성소’.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티베트의 수도에서 1,300km 떨어진 성산(聖山), 카일라스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곳은 불교와 힌두교를 비롯해 티베트 토착 종교 등 4대 종교의 성지로 여겨집니다. 어떤 이는 이 산을 불교의 우주관에 등장하는 수미산(須彌山, 불교에서 세상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곳)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티베트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느 순례지가 그러하듯, 신들의 땅에 발을 디디는 과정은 녹록지 않습니다. 해발 4,500m를 넘나드는 거친 산길을 적게는 수일, 길게는 수주간 차로 이동해야 하고 고산병을 앓기 일쑤입니다. 물론 간간이 대초원과 휘몰아치는 강줄기, 유리처럼 맑은 호수, 광활한 사막이 보상처럼 등장하는 덕에 아주 괴롭지만은 않습니다.

카일라스 산자락에 도착하면 진정한 순례가 시작됩니다. 둘레 55km의 산 주변을 돌며 기도하는 의식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코라(Kora)’라고 하는데 한 번의 코라는 이생에서의 업(業, Karma)을 소멸시킬 수 있고, 108번의 코라를 하면 해탈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합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만년설을 배경으로 그릇된 삶을 바로잡는 과정. 종교적 의미를 떠나 진정한 자유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카일라스산 순례로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깨달음을 향한 순례 의식
시코쿠 헨로미치 1,200km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섬 중 하나인 시코쿠에 천여 년간 이어져 온 순례길.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인 진언종을 창시하고, 일본어 알파벳인 히라가나를 만든 흥법대사(774~835년)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입니다. 번호가 붙은 88개의 절을 순서대로 돌아 1번 절로 다시 돌아오면 되는데, 보통 깨달음을 갈구하거나 간절한 소망을 성취하기 위한 이들이 이 길에 오릅니다.


혁명가의 흔적을 따라 걷다
체 게바라 순례길 12,425km



전 세계적으로 연간 300만 명 이상이 쿠바를 방문합니다. 카리브해와 아바나 등 눈부시게 아름다운 명소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의 숨결을 보다 가까이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죽은 지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체 게바라는 여전히 남미의 슈퍼스타입니다. 상점 곳곳에선 그의 사진이 박힌 티셔츠를 팔고, 젊은 시절의 여행을 소재로 한 <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에 나온 장소를 패키지로 묶은 여행 상품이 따로 나와 있을 정도니까요. <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는 체 게바라가 8개월간 남미를 종단하며 혁명가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페루의 잉카 유적과 웅장한 안데스 산맥을 비롯해 거대하고 아름다운 남미의 자연 풍광을 배경 삼아 수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한 명소 중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는 열대우림, 초원, 사막, 해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팔색조 같은 매력을 드러냈습니다.


인류의 오래된 미래를 찾아가다
인도 라다크 3,505m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삶. 이름 모를 수많은 이와 매일 마주하고 복잡한 도심에서의 숨 가쁜 삶이 버거웠다면 시간이 멈춘 듯한 영원의 땅, 라다크로 향해보세요 ‘고갯길의 땅’이란 이름처럼 히말라야 첩첩산중에 있어 접근하기 쉽지 않은 데다,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을 접한 특수성 때문에 오래도록 문명의 손길을 타지 않았습니다. 초 단위로 미분된 세상과 달리 이곳에 사는 이들은 최소한의 것을 추구하며 자급자족하는 전통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여유로우면서도 강인하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한 라다크 사람들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 전 세계에서 온 지친 영혼을 조건 없이 너그럽게 품어줍니다.




글. 정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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