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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May 13. 2020

자동차와 건축, 그리고 도시의 발전사

자동차와 건축물의 상관관계와 도시의 발전사를 살펴봤다.


자동차와 건축물은 우리의 삶과 아주 밀접한 도구이자 공간이다. 오늘날의 고층 건물이 가능했던 것은 엘리베이터 덕분이지만 서울, 뉴욕, 상해와 같은 대도시가 발전할 수 있던 데에는 자동차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자동차가 등장한 이래 건축물과 자동차, 도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발전했다. 따라서 건축물을 설계하고 도시를 계획하는 일엔 자동차에 대한 고려가 꼭 필요하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 자동차 등이 융합하는 스마트 시티가 실현된다면 자동차와 건축의 상관관계는 더욱 긴밀해질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모빌리티와 결합되는 스마트 하우스 콘셉트를 공개한 것도, 미래 모빌리티 전략과 함께 미래 도시의 풍경을 그려낸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동 수단(모빌리티)을 고려한 건축과 도시 디자인의 발전사를 살펴봤다.




건축가, 자동차와 함께 미래를 그리기 시작하다


1923년 발표된 르 코르뷔지에의 선언문에선 파르테논 신전과 자동차가 함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건축가는 모빌리티와 건축물, 그리고 도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는 자동차를 현대인의 삶을 담는 ‘생활의 기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23년 발표한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라는 책의 글머리에 과학과 기술, 이성을 찬미하며 고전 건축의 백미인 파르테논 신전과 자동차의 이미지를 함께 삽입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의 정수로서 비행기, 선박과 함께 자동차를 꼽았다.



르 코르뷔지에가 알제리의 수도 알제를 위해 제안한 선형도시. 집합 주택 위로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르 코르뷔지에는 1929년 스페인의 도시계획가 아르투로 소리아 이 마타가 1882년 발표했던 선형도시 개념에 자동차를 추가해 다시 한번 제안한다. 알제리 수도 알제의 해안가를 따라 18만 명을 위한 집합 주택을 만들고 그 옥상을 고속도로로 만든다는 거대 계획으로, 자동차를 도시의 중심에 둔 것이다. 잇따른 전쟁 등으로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프랑스 마르세유에 이런 형태의 집합 주택 건물을 지어 주상 복합의 효시인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d d’Habitation)을 완성했다.



1927년 제작된 영화 <메트로폴리스>에 나오는 미래 도시의 모습. 고층 빌딩과 다양한 모빌리티가 눈에 띈다


도시와 이동 수단의 조화를 꿈꾼 건 건축가만이 아니다. 1927년 제작된 SF 영화의 고전 <메트로폴리스>는 놀랄 만큼 멋진 미래 도시를 그려내고 있다. 서기 2026년, 초고층 건물로 꽉 채워진 대도시 메트로폴리스의 중앙엔 독특한 모양의 신(新) 바벨탑이 있다. 모노레일과 도로가 공중을 가로지르며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수많은 자동차가 도로를 메우고 있고, 비행기들은 도시를 부유하듯 떠다니고 있다. 프리츠 랑 감독이 상상한 100년 후의 미래 모습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제시한 브로드 에이커 시티. 이동 수단과 통신수단으로 도시를 분산해 저밀 도시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현대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지나친 집중으로 인해 많은 해악을 가진 대도시는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형태의 도시 출현이 불가피하다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새로운 도시가 가져야 할 형태는 무엇인가’와 ‘도래하는 신문명이 가져다 줄 새로운 기회는 어떠한 것들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오랜 세월 구상하던 이상도시 계획안을 ‘브로드 에이커 시티: 새로운 공동체 계획안(Broadacre City: A New Community Plan)’이라는 제목으로 1935년 발표했다.

라이트가 제시한 브로드 에이커 시티의 기본 개념은 과감한 분산이다. 이 구상은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돕는 자동차와 사람 사이의 완벽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통신수단, 공공의 복지에 관련된 발명 및 과학적 발견의 공유를 바탕으로 한다.

브로드 에이커 시티는 극단적인 저밀 도시다. 도시를 지배하는 중심이 없으며, 자연 환경을 훼손 하지 않는다. 아울러 도시와 농촌을 구별하지도 않는다. 철저하게 분산되고 무한으로 확장되는 이런 공동체의 실현은 자동차나 모노레일과 같은 고속 교통 체계로 가능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입체화된 간선도로 체계다. 간선도로는 몇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층을 따라 철도, 화물 수송차, 모노레일 등이 움직인다.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혁신적인 제안이다. 라이트는 자동차가 새로운 도시 건설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제프리 엘런 젤리코의 모토피아는 옥상 고속도로를 통해 도시 전체를 공원처럼 조성한다


영국 건축가인 제프리 앨런 젤리코는 미래 도시에 “자동차가 달리는 곳을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신성한 보행 지역에는 어떤 자동차도 침입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는 보차분리(보행로와 도로를 구분하는 것)의 효율성과 불편함을 단적으로 꼬집은 것이다.


그는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1960년 ‘모토피아(Motopia)’라는 도시계획을 제안했다. 모토피아는 자동차(Motor Car)와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로, 건물 상단에 도로를 깔아 도시 전체를 거대한 공원으로 조성한다. 런던에서 서쪽으로 17 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약 1억7,000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는 이 대담한 계획은 3만 명의 인구를 수용하고 옥상에 고속도로가 있는 격자 패턴의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학교, 상점, 식당, 교회, 극장 등은 모두 공원과 맞닿아 열려있다.




이동 수단, 우리 삶과 한층 더 밀접해지다


1972년의 키쿠다케 키요노리의 층구조 모듈은 주거지와 상업 시설, 교통 인프라를 통합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일본의 건축가 키쿠다케 키요노리는 1972년 급속한 도시화와 환경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층구조 모듈을 제안한다. 공업화된 공간 구조를 기본으로 그 안에 인공 지반을 설치한 뒤, 테라스식 주택을 삽입했다. 쾌적한 삼각형 단면의 입체 주거지 내부에는 간선도로, 철도를 포함한 공공 교통 인프라와 상업 시설 등이 들어간다. 인공 지반을 입체화해 환경을 보전하면서 토지의 고밀도 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일석 삼조의 계획으로, 정부 차원에서 실현을 위해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진 흥미로운 아이디어다.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은 공중에 매단 자동차를 외부에서 볼 수 있게 전시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동 수단을 생활 속에서 영위하려는 이런 시도들은 눈에 띄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주차장, 세차장, 자동차 공장 등 도심에선 지하나 이면에 감춰져 왔던 자동차와 관련된 시설물들이 미학적, 사회적 가치들을 내세우며 다양한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도산사거리의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이 좋은 예다. 현대 모터스튜디오는 자동차를 공중에 매다는 방식의 흥미로운 전시로 도시 경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미국 마이애미의 링컨로드 파킹 개러지는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주차장도 하나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될 수 있음을 알렸다


세계적인 건축회사 헤르조그 & 드 뫼롱이 설계한 미국 마이애미의 링컨로드 파킹 개러지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링컨로드 파킹 개러지는 ‘주차장은 음침하다’라는 인식을 바꾼 혁신적인 디자인이다. 조각품처럼 군더더기 없는 콘크리트 구조물은 사방이 뚫려 도시의 경관을 그대로 투과시킨다. 주차장과 상업 시설이 명확한 층별 구분없이 군데군데 어우러져 있으며 곳곳에서 열린 벽체를 통해 도시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건축물의 부속 시설로 조연에 머물러 있던 주차장이 화려하게 주연으로 변모한 것이다.




자동차가 변하면 도시도 변한다


현대차는 지난 2017년 모빌리티와 결합한 스마트 홈을 제시했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기술이 현실화 되는 미래에는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까? 우리 삶을 담는 도구로서 건축물의 한계는 특정 장소에 기반한 고정된 구조물이라는 것이며, 자동차의 한계는 협소한 공간적 제약과 운전자의 행위적 제약이었다. 하지만 4차 산업의 새로운 기술 도약에 힘입어 이러한 이분법적 제약과 구분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질 것이다.


현대차는 건축물과 모빌리티, 나아가 모빌리티와 모빌리티의 결합을 통해 소통 공간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개인 서재와 모빌리티를 묶어 작은 도서관으로, 의료 모빌리티의 조합으로 종합 병원을 조성하거나 해체할 수 있다면 인류 문화의 크나큰 진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우리는 이러한 기술을 기반으로 거리와 장소의 제약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유목민으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차가 제시한 미래 도시의 한 부분. 의료 모빌리티가 허브(Hub)에 모여 종합 병원과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지난 세기 자동차와 관련한 인프라의 눈부신 발달 덕분에 우리 도시는 점차 거대해지고, 그만큼의 복잡성을 내포하게 됐다. 미래 도시는 건축과 모빌리티의 새로운 도약으로 라이트가 1935년 꿈꾼 브로드 에이커 시티처럼, 어디서도 도시라는 사실을 인식할 순 없지만, 어디서든 그 편리함과 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도시가 드넓게 펼쳐질 것이다.





글. 조진만(건축가)


서울시 공공건축가이자 한양대 겸임교수. 2015 문광부 젊은 건축가상, 2015 김수근 프리뷰건축상, 2016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2017 국토부 신진 건축가상, 2018 서울시 건축상, 2019 세계건축상, 미국 Architectural Record Design Vanguard 2019 등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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