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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Jun 07. 2017

소형 SUV는 왜 인기가 많을까?

소형 SUV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특정한 장르가 시장에서 이렇게 엄청난 인기를 얻는 건 정말 드문 일이죠. 그렇다면 단순히 소형 SUV의 상품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렇게 잘 팔리는 걸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요? 그 이유를 짚어봤습니다.



'얘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어?'


누구 이야기냐고요? 아뇨, 사람 이야기는 아닙니다. 자동차 이야기입니다. 위에서 '얘'는 소형 SUV를 말하는 것이구요.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사람처럼 의인화해 부르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저에게는 자동차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 뿐만은 아닐 겁니다. 자동차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도 소형 SUV는 참 예쁘고 기특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작고 아담한 외모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소형 SUV가 없었다면 지난 5년 우리 나라 자동차 시장은 참 암울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체돼 있던 자동차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것이 바로 소형 SUV라는 장르입니다. 고맙죠.


21세기를 SUV의 시대라고 합니다. 정확하게는 크로스오버 모델이 대세니 CUV가 맞습니다만, 그냥 SUV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트럭처럼 프레임 위에 객실을 얹은 정통 SUV들은 아무래도 승차감도 좋지 않고 운전하는 감각도 어색해서 승용차만 운전해 본 운전자들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차체도 무거워 아스팔트 위에서의 성능이나 연료 소모율도 좋지 못하지요. 그러니까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일상 용도로 정통 SUV를 사용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거친 마초의 이미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하지만 승용차를 바탕으로 하는 크로스오버 SUV들은 달랐습니다. 일단 운전 감각이 승용차와 크게 다르지 않아 적응하기가 쉬웠습니다. 외모는 정통 SUV 못지 않게 제법 든든해 보였습니다. 자유롭게 변환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은 승용차에서 화물차, 캠핑용 간이 침실로도 변신하여 쓸모가 많았습니다. 크로스오버 SUV 한 대만 있으면 일상 생활과 업무, 그리고 레저 생활까지 모두 가능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크로스오버 SUV는 아이러니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들 참 열심히 살아요. 그런데도 주머니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살기도 바쁘니 여가 시간은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레저용 차량이 무슨 소용일까요? 그런데, 그래서 더 소용이 있답니다. 왜냐하면 레저용 차량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위안을 주기 때문이지요. 언제든지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다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 말입니다. 정통 SUV는 일상 생활에는 좀 부담스러울 수 있었기에, 크로스오버 SUV라는 장르를 만든 건 말 그대로 신의 한 수입니다.




사실 소형 SUV에는 우리 마음을 울리는 스토리들이 좀 더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광고에서 소형 SUV는 젊은이들의 첫 차, 젊은 연인이나 부부들을 위한 차로 소개가 됩니다. 하지만 실제 구입 고객들의 연령별 데이터를 살펴보면 의외로 50대 이상의 중장년 고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50대 이상에서 40% 이상을 판매하는 모델도 있습니다. 의외지요. 물론 자녀의 첫 차를 직접 골라서 부모의 이름으로 등록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 비율은 별로 높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뭘까요? 크게 두 부류가 떠오릅니다. 우선 자녀들이 장성하여 품을 떠나간 초로의 부부입니다. 이제는 큰 차가 필요하지 않기도 하지만 전에는 잘 몰고 다니던 중형 세단인데도 툭하면 긁어먹기 십상인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눈도 어두워지고 운동 능력도 이전 같지 않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4말5초' 중간 관리자 샐러리맨 가정입니다. 젊은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는데 더 이상 승진을 바라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상사가 나만 호출하기라도 하면 가슴이 덜컥합니다. 씀씀이를 줄여야 합니다.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납니다.


그래서 작은 차를 찾게 됩니다. 하지만 중형 세단을 타다가 갑자기 소형 세단이나 해치백으로 줄이면 '형편이 어려운가 보다'하는 주위의 수근거림이 신경 쓰입니다. 그래서 소형 SUV를 쳐다보게 됩니다. 참 좋습니다. 아담한 차체가 시내에서 운전하고 주차하기에 그만이고 실내 공간도 생각보다 넓습니다. 그리고 누가 물어보면 '응, 이제는 아내와 인생을 즐기려고 샀어'라고 말할 명분도 있습니다.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내 '심리 경호용'으로도 안성맞춤인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소형 SUV의 본질은 이런 가슴 아린 스토리가 아닌데 말입니다. 젊은 에너지가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모델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광고에서 이야기하는 이미지와 실제 고객 그룹의 거리가 너무 멉니다. 그래서일까요.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국내 소형 SUV 시장도 작년부터 성장세가 뚜렷하게 둔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존 모델들은 변신을 시도합니다. 가성비와 독특한 디자인으로 승부하던 모델은 능동 안전 장비를 갖추어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잡으려 노력하고, 달리기는 잘 하지만 무덤덤한 디자인으로 마음을 끌지 못하던 모델은 몰라보게 달라진 새로운 외모로 매력을 발산합니다. 그 결과일까요? 소식을 들어보니 젊은 고객들의 비중이 다소 늘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뭔가 근본부터 다이내믹하고 가만히 있어도 흥이 솟아나는 모델이 필요합니다. 달리기 성능도 좀 더 화끈했으면 좋겠고, 디자인도 역동적이어야 합니다. '럭셔리 코스프레'보다는 태생부터 놀 줄 알면서도 자기를 표현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 요즘 식의 자기 표현력이 뛰어난 모델이어야 합니다. 이런 소형 SUV의 본질에 충실한 모델이어야만 소형 SUV 시장의 제 2막을 열고 다시 한 번 성장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곧 새롭게 출시될 현대 코나의 광고를 보았습니다. 깨끗한 바다와 원시림을 간직한 하와이 제도의 섬 이름을 사용하는 코나에 걸맞게 정말 상큼하더군요. 저도 나이를 먹었나 봅니다. 바로 위에서 다이내믹한 역동성과 흥만 이야기하면서 몸에 힘을 빡 줬었는데, 이보다 '상큼함'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에 더 마음이 갑니다. 상큼함. 그래요, 이게 더 젊고 매력적입니다. 곧 공개될 코나의 이모저모가 꽤나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갑자기, 상큼한 레모네이드가 당깁니다.






글. 나윤석

필자는 아우디 브랜드 매니저, 폭스바겐 코리아의 프로덕트 마케팅 팀장, 폭스바겐 본사 매니저, 페라리 총괄 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프리랜서 자동차 칼럼니스트 및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자동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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