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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 Jun 16. 2017

한국에서 중형 세단을 탄다는 것

한국 중형 세단의 상징인 쏘나타를 썩 반기지 않던 남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부터 쏘나타에 대한 까칠한 시선이 조금씩 누그러졌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몇 년 전, 국산 소형 해치백을 10년쯤 타고 나서 가족과 함께 탈 다음 차를 물색할 때였습니다. 마음에 둔 차는 있었어요. 디젤 엔진을 쓰는 수입 소형차였습니다. 하지만 차 값도 그렇고 유지비가 만만치 않겠기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자동차깨나 안다는 선배에게 이런 고민을 얘기하자 그는 이렇게 충고했죠. “까불지 말고 쏘나타 사.” 기가 막혔습니다. 수입차에 눈독 좀 들였다고 저런 핀잔까지 들어야 하나 싶어서. 하물며 과장 조금 보태서 거리엔 자가용부터 택시까지 다양한 형태, 다양한 세대의 쏘나타가 즐비했으니까요. 굳이 나까지 그 대열에 합류할 필요는 없어 보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문제였습니다. 쏘나타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타봤을 차이고 가족용 차를 구매하려는 한국인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차이기도 하지만 너무 흔하다는 이유로 종종 온당치 못한 대접을 받았죠. “쏘나타 사”라고 했던 자동차깨나 안다는 선배부터 자동차깨나 안다고 착각한 나 같은 허깨비 전문가에겐 더욱 더 그랬습니다. 풋내기 시절의 난 심지어 “땅덩어리도 좁은데 쏘나타 같은 중형 세단 말고 작은 해치백이나 탑시다”라는 어설픈 선동도 서슴지 않았거든요. 일견 일리있어 보이는 주장이지만 쏘나타 같은 중형 세단은 꾸준히 잘 팔리고 작은 해치백은 몇 해가 지나도 거들떠보는 이가 드문 게 한국 자동차시장의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1985년 처음 등장한 쏘나타 1세대의 모습입니다. 쏘나타는 등장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중형 세단으로 등극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쏘나타 같은 중형 세단이 꾸준하게 잘 팔리는 건 기이한 일이 아님을. 예컨대 핵가족화를 지나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지만 한국 사회엔 대가족 문화의 흔적이 아직 뚜렷합니다. 한식엔 부모님과 성묘를 다녀오고, 명절엔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과 만나기 위해 한반도 종주도 마다하지 않죠. 부모님을 차로 모시거나 장시간 장거리 주행을 해야 한다면, 그게 1년에 고작 한두 번에 불과해도 공간이 넓고 승차감이 좋은 큰 차를 소유하고 있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뒷자리가 좁은 차는 어른들이 불편해하고 크기가 작은 차는 장시간 주행 때 피로감이 큽니다. 

과분할 정도로 넓은데 지나치게 비싸지 않고 승차감은 부드러운 중형 세단이 인기인 건 그래서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승차공간과 트렁크가 분리돼 있고 적재공간이 넉넉한 것도 한국 사회에선 유리하게 기능합니다. 밀폐된 트렁크는 어머니가 싸준 김장김치를 싣고 오기에 그만이죠. 차고는커녕 작은 창고 하나 갖추기 힘든 거주환경도 빠지지 않습니다. 캠핑도구나 야구 장비 등 아내 등쌀에 떠밀려 집밖으로 쫓겨난(?) 물건을 보관하기엔 넉넉한 세단 트렁크만한 장소가 없으니까요. 말하자면 중형 세단은 한국 사회나 문화에 꼭 들어맞는 전천후 자동차입니다. 그 중에 으뜸은 누가 뭐래도 쏘나타였죠.


주지하다시피 30대 초반까지의 저는 중형 세단, 아니 쏘나타를 대하는 태도가 부정적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그 무렵에 ‘내 아이를 위한 자동차 고르기’라는 주제로 한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저는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통념상 타는게 마땅한 자동차는 싫다. 다른 차와 부딪혔을 때 더 안전하다는 이유로 덩치 큰 SUV를 고르거나, 가족을 생각했을 때 그만한 대안이 없으니까 중형 패밀리 세단을 타는 일 등이다.'

하지만 저는 쏘나타에 분노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 중형 세단 시장에서 오랫동안 정상을 지켜온 쏘나타에게 기성세대를 투영해 봤을 뿐이죠. ‘튀지 마’ ‘하던 대로 해’ ‘까라면 까’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던 실망스러운 기성세대를요. 



YF 쏘나타의 등장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전까지 ‘가장 무난한 중형 세단’이었던 쏘나타는 YF 쏘나타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스타일리시한 중형 세단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다 YF 쏘나타가 등장했습니다. 세상 모든 중형 패밀리 세단이 ‘무색무취’를 금과옥조처럼 지키며 살던 시절에 세상 어디서도 보기 힘든 유별난 디자인으로 일대 파란을 불러왔던 차. YF 쏘나타 등장 이후 세상 모든 중형 패밀리 세단들은 앞다퉈 공격적인 디자인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토요타 캠리가 그랬고 혼다 어코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일본차를 쫓기 바빴던 한국차의 강력한 일격이라 통쾌했고,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기득권 자동차의 용감한 도전이기에 더욱 흥분됐습니다. 아마 그때쯤부터였을 겁니다. 쏘나타에 대한 까칠한 시선이 조금씩 누그러진 건.


저와 아내는 11년째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귄 기간까지 더하면 14년을 한 여자와 지내왔는데, 이쯤 되면 남편과 아내라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한 그릇에 담은 초콜릿 맛과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처럼 뒤섞이기 마련이죠. 소위 애증이라는 감정인데, 이때의 미움은 보통의 미움과는 감정의 결이나 깊이가 다릅니다. 밉지만 미운 게 아니고, 미워서 미운 게 아니랄까요? 아무튼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쏘나타를 대하는 요즘의 제 마음이 꼭 그렇습니다. 동일 브랜드를 30년 넘게 지켜왔다는 얘기엔 지나가는 아무 쏘나타 엉덩이라도 토닥토닥하고 싶은 마음이다가, 1985년부터 최근까지 813만대 이상 팔렸다는 자랑엔 ‘뭘 그 정도로 호들갑이람’ 하며 이죽거리게 되고, 과감한 YF에서 갑자기 보수적인 분위기의 LF로 바뀌었을 때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식입니다(다행히 얼마 전 발매된 쏘나타 뉴 라이즈를 보고는 조금 안심했습니다. ‘국민 중형 세단’이라는 기존의 이미지에 갇혀있지 않으려는 마음이 느껴졌거든요). 



얼마 전 등장한 쏘나타 뉴 라이즈의 멋진 외관입니다. 쏘나타는 다시 한 번 과감한 변신으로 중형 세단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려 하고 있습니다


‘중형 세단보다는 소형 해치백이 백만 배 쿨해’ 같은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터라 이 같은 심경 변화는 저 스스로도 의아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애증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된 대상이 이 땅에서 나와 함께 30여 년을 살아온 자동차라면 그리 이상한 일만도 아닐 겁니다.

하나 놓쳐선 안 될 것은, 아무 기대도 없는 대상에겐 사랑은커녕 미움도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쏘나타에 품은 저의 애증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싹틉니다. 공기나 물처럼, 낮과 밤처럼, 혹은 아버지나 아내처럼. 물론 그들과 달리 쏘나타에는 ‘찾아가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매력적인 제품인 채로’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실제로 최근 발매된 쏘나타 뉴 라이즈의 과감한 변신에서는 ‘평범한 기성품’ 대신 ‘매력적인 제품’이 되고 싶은 열망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의미있는 시도임을 부정할 수도 없을 겁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무엇도 바뀌지 않으니까요.

하긴 이것 역시 제가 주제 넘게 걱정할 일은 아니겠네요. 쏘나타라는 자동차가 한국 사회와 문화 안에서 가장 유용한 중형 세단이라는 현실, 한국 자동차 시장의 복잡다단한 정서를 캐치해 누구보다 빨리 반영해왔다는 엄연한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3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리 주변 어딘가엔 반드시 ‘쏘나타’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과거를 생각하면 말입니다. 


  



글. 김형준
올해로 만 17년째 자동차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한국판, 남성지 <지큐>에서 일했다. 지난해 방영된 SBS <드라이브 클럽>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며 자동차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냉철한 시각을 보여준 바 있다. 현재는 글로벌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의 편집장으로 자동차 문화에 대한 심도 깊은 기사를 만들고 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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