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은 누구나, 얼마든지 화려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은 공허하고, 타보는 순간 몸으로 알 수 있는 게 있죠. 진짜 고급진 자동차는 시간마저 조율할 줄 압니다.
조금 지쳐있던 날이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회사 의자에 거의 녹아 있다시피 했습니다.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일어날 힘도 없더군요. 그런 날 있잖아요? 하루 종일 어찌나 쫓겼는지, 통화한 사람이 몇 명이었는지 헤아릴 수도 없었습니다. 취재와 조율, 섭외와 협상이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날이었어요. 그런데 주차장에는 저를 기다리는 위풍당당하고 짙은 색깔의 세단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반드시 그 차를 타야 했어요. 시승을 해야 했습니다. 꼼꼼하게, 여러 방식으로 달려보면서 그 차의 어떤 면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했어요.
이미 깊은 밤이었습니다. 새벽 2시 반 즈음이었어요. 하긴, 서울 거리가 한산할 시간이니까 시승에는 적절한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강변북로나 올림픽 대로를 달리기에도, 소월길이나 북악 스카이웨이를 달리기에도 아주 좋은 시간이니까요. 하지만 머리가 복잡하고 몸은 고단했습니다. 피곤하면 감각도 무뎌지죠. 아침에는 저 차를 반납해야 했으니 저한테 주어진 시간은 약 8시간 정도였어요. 일단 좀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타볼까? 사무실 의자에서 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박차고 일어났어요. 다 모르겠고, 일단 집에 가서 단 한 시간이라도 체력을 회복하자는 계산이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의연하게 제 하루를 기다리던 차가 저한테 어떤 기분을 선사할 수 있는지, 그때까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운전석 문을 열고 앉았습니다. 시동을 켜고 시트를 몸에 맞게 조절하면서 라디오를 켰어요. 종일 심난했던 날이었으니까, 클래식 채널에 고정했습니다. 그러곤 잠시 눈을 감았어요. 그때 마침 흐르던 노래가 쇼팽이었는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이었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아주 안정적인 소리였어요. 너무 예민한 소리를 내는 스피커는 오히려 신경을 긁기도 하고 너무 둔한 스피커는 마음이 답답해서 못 듣겠는데, 렉시콘이 만든 이 스피커는 달랐습니다. 누군가, 음악과 공간을 아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섬세하게 조율한 소리였어요.
눈을 감은 채로 스티어링 휠에 두 손을 얹었습니다. 그때 느껴지는 감촉이랄까 혹은 온도랄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걸 느끼면서부터 기분이 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이 가죽은 정말이지 촘촘하고 부드러워서, 그 침착한 감각만으로도 위로 받는 것 같았습니다. 시트도 그랬어요. 최상급 나파 가죽을 아낌없이 썼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나파 가죽도 누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일 겁니다. 천장에 쓴 스웨이드는 또 얼마나 부드러웠을까요? 스티어링 휠, 시트, 천장의 부드러움에 감탄하면서 마음이 녹기 시작할 즈음이었습니다. 엔진 스타트 버튼을 무심코 눌렀어요. (당연히) 시동이 꺼지더군요. 실내가 너무 조용해서 아까 차에 타자마자 시동을 켰던 걸 깜빡 잊었던 거였어요.
다시 시동을 켰습니다. 그러곤 아직 끝나지 않은 그 곡을 들으면서 주차장을 빠져 나갔어요. 조용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차의 정숙성을 논할 시점은 아니에요. 조금이라도 달려 봐야 이 차가 내는 진짜 소리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주차장을 나서고, 첫 번째 신호등을 지나 대로에 진입했습니다. 주행 속도는 시속 60킬로미터 정도였어요. 이 조용함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어떤 차는 아주 꽉 틀어 막은 듯한 정숙성을 구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어 플러그로 귀를 막은 것 같은 느낌이 나는 차도 있어요. 그런 차도 ‘조용하다’고 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썩 산뜻한 느낌은 아니에요.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죠.
이 차가 내는 소리는 아주 은은했습니다. 내연기관 자동차 실내에서 화이트 노이즈에 가까운 소리를 듣는 경험이라니. 차가 달리면서 내는 소리가 밖에서 나는 온갖 소리를 중화시켜서 자연스럽게 실내에 스며들 수 있도록 돕는 느낌이었어요. 자동차가 달릴 때 온갖 소리를 내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럽죠. 그 소리를 무턱대고 차단하는 게 아니라 서로 어우러지도록 조율한 결과물 같았습니다. 이때부터는 라디오는 꺼둔 상태였습니다. 그 소리의 결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었거든요. 어쩌면 이 때부터 시간과 감각의 왜곡이 시작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에서 집까지는 15분 거리였는데,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을 그냥 지나쳐버렸어요. 조금 더 멀리 가고 싶었습니다. 그대로 소월길에 접어들었어요.
이 차의 드라이브 모드는 스마트, 스포츠, 에코, 인디비주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주행 영역은 스마트 모드에서 아주 안락하게 책임집니다. 힘이면 힘, 정숙성이면 정숙성, 안락함이면 또 굉장한 균형감각으로 침착한 운전을 가능하게 해줘요. 스티어링 휠에 손을 얹었을 때의 느낌이 그대로 이어지는 변속과 가속의 감각, 누가 옆에서 속삭이는 것 같은 주행 질감까지. 그러다 좀 매콤하게 달리고 싶을 땐 스포츠 모드를 선택했습니다. 소월길에 접어 들어 코너를 몇 개인가 지났을 때였어요. 작심하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이 차의 크기를 잊고 진짜 코너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차의 전장은 5미터가 넘어요. 정확히는 5,205밀리미터입니다. 전폭은 2미터에 가깝습니다. 명실상부 최고급 세단의 비율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엔진 회전수의 절정에서 미끄러지듯 변속하는 순간의 쾌감은 대단했고, 속도와 무게와 날렵함에 대한 편견도 여지없이 녹아 내렸습니다. 방금 산 스케이트를 신고 익숙한 아이스링크를 날카롭게 질주하는 느낌이 이럴까요? 스티어링 휠이 돌아가는 감각에도 기분 좋은 무게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코너를 조준할 수 있었어요. 엔진과 변속기가 최선의 감각을 유지하는 동안 제 정신도 또렷해졌습니다. 역시 몸은 정신이 지배하는 걸까요? 마음이 또렷해지자 피로도 가셨습니다. 아니, 있던 피로가 사라졌다기 보다 이 차를 타고 신나게 달리던 순간순간이 그걸 잊을 만큼의 상쾌함이었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대로 광화문을 지나 북악 스카이웨이로 들어섰습니다. 같은 기세로 오른 팔각정에선 새벽의 서울을 내려다 봤습니다.
그렇게 같이 보낸 시간을 꼼꼼하게 새기면서 집에 돌아왔을 때, 저는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운전석에서는 세 시간 정도 지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잠은 다 잤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보니 겨우 한 시간 남짓 지난 거였어요. 제가 이 차와 함께 했던 한 시간 동안 동안 받아들인 몸과 마음의 정보가 보통 드라이브의 세 시간 분량이었던 겁니다. 그 독보적인 부드러움, 정점에 오른 고급함과 품격, 기계적 완성도와 충분히 숙련된 날카로움까지.
차를 세워두고, EQ900라고 단정하게 써있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이 차의 뒷모습과 제네시스 엠블럼을 같이 보면서, 오감을 충분히 채워주면서 시간 감각까지 왜곡하는 그 감성과 실력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네, 제가 지금까지 전한 감상의 주인공은 제네시스 EQ900였습니다. 제네시스가 만든 모든 모델의 꼭지점에서 그 존재감만으로도 위풍당당한 차, ‘기함’이라는 단어에 그야말로 합당한 차였습니다. 모든 함대 중 지휘관이 타고 있는 군함을 기함이라고 하죠? 진영 한 가운데, 혹은 제일 앞에서 그 기세를 이끄는 배이기도 합니다. 보통 라인업의 꼭대기에 있는 차를 기함이라고 부르지만, 그 이름에 합당하려면 훨씬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죠. 제네시스 EQ900는 과연 떳떳한 기함이었습니다. 온화하거나 성난 바다라도 의연하게 같이 해쳐나갈 수 있는, 강직하고 굳은 성품의 자동차였습니다.
어떤 밤은 자동차 한 대로 영원해지기도 합니다. 새벽에 나섰다가, 피로를 잊었다가, 결국 완전히 충만해졌던 그날 밤을 저는 제네시스 EQ900라는 이름으로 기억합니다.
글. 정우성
필자는 12년 차 기자다. 자동차, 고전음악과 인터뷰를 어쩔 수 없이 사랑하며 한국과 당신, 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쓴다. <레이디 경향>, <지큐>를 거쳐 지금은 <에스콰이어>에서 일하고 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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