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도, 때론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더라도 괜찮아요. 내가 즐거우니까.
몇 번의 반대를 무릅썼는지 모릅니다. 자동차에는 참 그런 물성이 있죠. 막상 사기 전에는 눈에 들어오는 차가 어찌나 많은지요.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돈 얼마에서 이달 월급 조금만 아끼면 저 차를 가질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저 브랜드에서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차가 또 눈에 들어오고 그랬습니다. 자동차 좀 안다는 친구나 선배들한테 의견을 묻기도 참 여럿 물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 결심에 대해선 다들 몇 개의 물음표를 동시에 띄웠습니다.
“수동? 왜? 돈이 모자라? 너 출퇴근할 때 무릎 아파."
"야, 참아. 그냥 자동 사, 후회해."
"장거리 여행 갈 땐 어쩌려고 그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두 진심으로 하는 조언이었어요. 하지만 그 숱한 물음표를 가슴에 그대로 묻어두고, 저는 결국 수동 기어 자동차를 출고했습니다. 벌써 5년 전이네요. 공장까지 가서 차를 받아서 조심조심 서울까지 몰고 왔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래서, 지금 봐도 참 귀엽고 애틋합니다. 지금까지 참 즐겁게 탔고, 한 번도 말썽 부린 적 없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차. 또 한 대의 차를 갖게 되더라도 언제까지나 ‘내 차’로 남겨두고 싶은 제 차의 변속기는 수동 기어입니다. 마침 잠깐 외출할 일이 있어서 제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왼발로 클러치를 밟고 1단 기어. 왼발을 부드럽게 떼면서 오른 발로 가속 페달에 힘을 줬습니다. 스르륵 골목을 벗어났습니다. 내리막은 중립으로 다시 스르륵. 큰길 어귀에 정차했다가 다시 1단, 도로에 올라서 2단, 그리고 3단까지 엔진 회전수를 아주 팽팽하게 레드존 직전까지 한껏 올렸습니다. 이럴 때야말로 아는 사람만 아는, 아주 다른 세계의 쾌감이 묘한 감각으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3단의 절정에서 4단 변속.
강렬하면서도 적절한 엔진 회전수에서 아주 부드럽게 변속하고 주행한 후에 교차로에 멈췄습니다. 그때 저는 조금 웃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뿌듯하고 대견하고 재미있어서요. 왜 그랬을까요?
2단에서 엔진회전수를 조금 더 올릴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럼 조금 더 빠르게 시속 몇 킬로미터에 도달했을 거예요. 그렇게 달렸다면 3단으로 변속하는 순간의 느낌도 아까와는 조금 달랐을 겁니다. 사실상 이후의 모든 운전이 달라지는 거죠. 그 기세로 몇 대의 차를 앞지르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 경험은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 같은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도 자주 일어납니다.
아까 저한테 조언했던 친구가 했던 말 기억하시죠? 자동차 전용 도로를 달릴 땐, 특히 자정을 넘긴 시간에는 다들 왠지 레이스하는 것처럼 달리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총알 택시도 만나게 되죠. 다소 위협적으로 추월하는 차들도 만나게 됩니다. 2차선에서 시속 90킬로미터 정도로 달리고 있을 때도, 3차선에서부터 밀고 들어오기 시작해 1차선까지 아주 위험한 각도로 제 앞을 가로지르는 차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쉽게 앞지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무례하게 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땐 침착하게 기어를 한 단 한 단 내립니다.
5단에서 4단. 엔진이 조금 더 빠르게 돌기 시작합니다. 4단에서 3단, 아주 팽팽하게 조여오는 게 느껴집니다. 그 힘으로 그대로 가속. 레드존을 때리면서 엔진의 힘이 조금 낭비되는 것 같다고 느껴지기 직전에 다시 4단. 한껏 속도를 올려 5단까지. 이렇게 달리면 4단과 5단 사이 어딘가에서 아까 그 무례했던 택시를 1차선에 그대로 두고 저는 2차선에서 유유히 앞서 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정색하고 달렸을 때의 힘을 겨룰 수는 없겠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엔진의 힘을 부드럽게, 동시에 강렬하고 효율적으로 쓰면 한국 도로 사정에서 괜히 주눅들 일은 없다는 뜻입니다. 엔진의 힘을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정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 수동 변속기의 큰 장점이자 재미예요.
여기서 패들 시프트를 떠올리시는 분 계실 겁니다. 굳이 수동 변속기가 아니라도, 자동 변속기 자동차를 타면서도 수동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장치로서 말예요. 옳은 생각입니다. 스티어링 휠 뒤에 있는 패들 시프트를 조작하는 것으로도 엔진의 힘을 아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죠. 아주 빠르고 간편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재미도 있고요. 그런데 여기서 ‘인간’이 개입하게 시작합니다. 사람은 참 이상하죠? 편리하고 날렵한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알면서, 다소 불편하고 손이 많이 가는 과정에서 재미와 가치를 느끼기도 하니까요. 애써 구한 LP를 턴테이블에 올리는 순간의 소리를 마음으로 즐기고, 오래 전에 듣던 카세트 테이프를 괜히 꺼내 듣고 싶어지는 저녁처럼요.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지 않고 손가락으로 변속하는 과정은 편하고 세련 됐습니다. 왼발로 클러치를 달래면서 왼손으로 스티어링 휠을 잡고 오른손으로 기어봉을 조작해야 하는 수동기어 자동차의 방식은 사실 좀 번거롭죠. 좀 어렵다고 느끼는 분도 계실 거예요. 변속할 때나 출발할 때 엔진을 꺼뜨릴까 봐 불안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게 변속하는 모든 순간이 내 자동차와 조금 더 긴밀하게 연결되는 과정이라는 걸 깨닫는 찰나마다, 아주 정겨운 중독성이 숨어 있습니다. 결속감이라는 표현을 바로 이 때 쓸 수 있을 거예요.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단수로, 여느 브랜드의 더블 클러치보다 더 부드럽게 변속하는 순간의 그 결속감 말예요. 디지털이라고는 개입할 여지도 없는 그 부분을 온전히 내 손과 발로만 성공적으로 제어하는 순간의 감칠맛.
아까 우리 교차로에서 정차했었죠? 이제 그대로 소월길까지 한 번 올라가볼까요? 그런 길에서는더 본격적으로 엔진과 변속기를 갖고 놀 수 있게 됩니다. 코너를 최대한 빨리 탈출하고자 한다면 변속도 잦아지게 마련이니까요. 코너를 앞두고 속도를 천천히 줄이면서 기어를 낮은 단수로 내리고 탈출하는 순간의 엔진 회전수를 적당하게 맞추는 거예요. 그 힘이 쳐지지 않게, 팽팽한 상태 그대로 다시 가속할 수 있도록 말예요.
하지만 일반 도로에서 누굴 이기려고 달리는 건 아닐 겁니다. 속도와 관계없이, 그저 그런 재미를 느끼면서 어디까지나 안전하게 달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현대 아반떼 스포츠 같은 고성능 수동 변속기를 조작하면서 서울 곳곳을 드라이브하는 밤의 쾌감을 한 번 상상해보세요. 현대 아반떼 스포츠는 그 성능과 감성이 아주 창창한 것으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런 밤은 또 얼마나 즐거울까요?
보통 차 안에서 뭐하세요? 어떤 생각에 골몰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혹은 창문을 다 닫아놓고 크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죠? 수동기어 자동차를 탈 때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할 수 있습니다. 차와 나 사이의, 조금 더 긴밀한 대화가 가능해지는 거예요. 노래도 음악도 필요 없어요. 어떤 땐 운전을 하면서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사실 클러치를 밟는 감각이랄까 변속기가 결속하는 순간의 느낌 같은 건 차마다 다를 수 있거든요. 아주 주관적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미세한 기계적 순간을 운전자와 자동차가 서로 교류하면서 맞춰가는 거예요.
퇴근길의 강변북로, 정체가 심한 구간을 통과할 때의 피로를 부정할 수는 없어요. 그럴 땐 아주 사소한 조작 하나라도 덜어내야 상쾌한 상태로 운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때 수동 변속기 자동차는 그저 시속 20~30킬로미터 사이, 2단과 3단 사이에서 살살 달래듯이 운전해야 하죠. 하지만 농담처럼 긍정할 수도 있을 겁니다. 졸음운전의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지거든요. 아주 낮은 속도로 엉금엉금 이동할 때도, 클러치를 다루는 왼발과 오른손은 꽤나 바쁘게 움직일 테니까요.
그렇게 힘들게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돌아설 땐 그저 “너도, 나도 오늘 참 고생 많았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요? 내 차도 답답했을 것 같습니다. 어젯밤처럼 신나게 달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겁니다. 내 감정과 자동차의 감정을 동기화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게 시원하게 달리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서, 밤 11시 30분 쯤에 다시 집을 나서면서 이런 생각도 해보는 겁니다.
‘좋아, 아까 답답했던 만큼 시원하게 달려볼까?’
이 재미를 아는 사람은 주변의 만류나 걱정 같은 것, 결국 엷은 미소 하나로 뿌리치곤 합니다. 남들이 뭐라건 뭐 어때요? 조금 불편하면 또 어때요? 수동 변속기에는 그만의 재미가 있습니다. 자동기어나 패들 시프트보다 재미있는게 아니라 그냥 그 자체의 매력. 그러니 어떤 날 밤에는 다시 검색을 시작해보기도 하는 겁니다. 내가 갖고 싶었던 그 모델의 수동기어 트림은 지금 얼마인지. 그 내밀하고 본격적인 재미를 향해 다시 시동을 거는 겁니다. 골목을 벗어나 나만의 길을 찾는 겁니다. 클러치 밟고, 1단 넣고, 클러치와 가속페달 사이의 균형을 가늠하면서.
글. 정우성
정우성은 12년 차 기자다. 자동차, 고전음악과 인터뷰를 어쩔 수 없이 사랑하며 한국과 당신, 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쓴다. <레이디 경향>, <지큐>를 거쳐 지금은 <에스콰이어>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 주태환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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