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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Oct 26. 2017

미래의 모터스포츠는 어떻게 변할까?

스포츠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세월이 흘러 규칙이 바뀌어도 그 본질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으니까요. 예컨대 고대 로마시대 콜로세움 안에서 펼쳐졌던 검투는 옥타곤 안으로 옮겨와 종합격투기로 변모했습니다. 선수 체급은 세분화됐고 투사들이 쓰던 검은 4온스 글러브로 바뀌었지만, 그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쿠베르탱의 근대 올림픽에서 펼쳐지는 대부분 투기 종목과 육상 종목이 기원전 8세기 고대 올림피아 제전의 맥을 잇는다는 사실도 흥미롭죠. 1888년 최초의 자동차가 판매된 이래, 우리는 1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운전자가 직접 움직여야 하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율주행이 상용화될 미래에는 무인자동차로 인해 스티어링 휠을 돌리고, 가속 페달을 밟는 일련의 과정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미래의 모터스포츠 역시 ‘자동차를 통해 달린다’는 근본은 간직한 채 여러 형태로 다변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간이 타지 않은 자율주행차가 펼치는 레이싱, 피트 스탑(Pit Stop)에서 연료통에 가솔린 대신 배터리를 바꿔 끼는 행위, 혹은 빨리 달리는 것보다는 오래 달리는 것을 겨루는 대회 등이 그것입니다.



자율주행 기술을 겨루는 레이스


미래 모터스포츠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자율주행차들이 펼치는 레이스입니다. 무인 자율주행차들끼리 속도를 높였다 줄이고, 커브를 돌고, 선두에 있는 차를 앞지르며 순위를 매기는 것입니다. 기계는 사람과 달리 두려움이 없습니다.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것만이 목표죠. 그렇기에 외려 드라이버가 펼치는 레이스보다 더 과감한 시합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당장의 얘기는 아닙니다. 이 정도 수준의 자율주행이 가능하려면 인간의 학습능력과 추론능력, 지각능력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높은 수준의 AI(인공지능)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례로 꼽히는 것이 지난 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국제 전기차 경주대회 ‘2017 포뮬러E’ 부대 행사로 펼쳐진 자율주행차 ‘로보레이스’ 시범경기입니다.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은 자율주행차로 이뤄진 첫 공개 레이스였죠. 이날 레이스에는 로보레이스 테스트 카 '데브봇(Devbot)' 2대가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길 잃은 강아지 한 마리가 갑자기 트랙에 나타난 것이죠. AI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데브봇 1은 코스를 이탈하지 않은 채 이 개를 피하며 주행에 성공했습니다. 고속으로 달리던 자율주행차가 움직이는 장애물을 피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아쉽게도 데브봇 2는 레이스를 완주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미래의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바로 이 AI의 완성도가 될 겁니다. 물론 레이스에서의 치열한 AI 경쟁은 전반적인 자율주행 기술의 성장으로 이어지겠지요.



친환경 경쟁이 모터스포츠로 이어지다

ⓒfiaformulae.com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친환경 경쟁 역시 모터스포츠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합니다. 지난 2014년, 국제자동차연맹(FIA)은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 포뮬러 레이스인 ‘포뮬러 E’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했습니다. 올해로 벌써 세 번째 시즌을 끝낸 포뮬러 E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입니다. 포르쉐는 WEC 활동을 접고 포뮬러 E에 참가할 것이라 밝혔고, 메르세데스 벤츠 역시 포뮬러 E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BMW와 아우디는 진작 참가 의사를 밝혔죠. 많은 브랜드가 포뮬러 E에 몰려드는 건 전기차 시장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포뮬러 E는 한마디로 F1의 전기자동차 버전입니다. 전기자동차의 연비가 아닌 속도를 겨루는 것이죠. 기존 경주차처럼 공해 배출이나 소음이 없는 대신 배터리의 한계 때문에 한 대의 자동차로는 완주할 수 없습니다(충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피트 스톱(Pit Stop)시 드라이버는 미리 준비된 다른 자동차로 갈아타야 합니다. 물론 F1에서 타이어를 적시에 갈아끼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승리 공식이듯, 포뮬러 E에서는 후반 배터리 싸움이 은근히 볼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배터리 관리에 실패하면 리타이어는 불 보듯 뻔하니까요.

대회 스폰서들의 면면도 달라지겠죠. 첨단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많은 기업이 메인 스폰서가 될 것입니다. 포뮬러 E의 경우 첨단기술 이미지를 추구하는 퀄컴, 태그호이어, VISA 등의 기업들이 이미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지금의 모터레이스가 배기량에 따라 리그를 나누듯 전기차 배터리 용량에 따라 다양한 리그가 형성될 것입니다. 내연기관과는 달리 회생제동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특징이 있어 가파른 오르막, 내리막 코스를 활용해 연비를 측정하는 대회가 생길 수도 있죠. 혹은, 지금의 내구레이스와 같은 친환경 자동차 경주가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전기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으로 장거리 주행을 얼마나 오래, 빨리 달리는지가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모터스포츠는 어떻게 변할까?


이처럼 미래의 모터스포츠가 자율주행 자동차, 친환경 자동차 위주로 재편되면, 현재와 같은 내연기관 모터스포츠는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요? 현재 모터스포츠 팬층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합니다. 이들은 여전히 기계적 부속품들이 맞물리며 만들어내는 장면과 소리에 익숙합니다. 엔진 RPM이 레드존에 가깝게 올라갈 때의 짜릿한 굉음, 드라이버가 기어를 바꿀 때 손과 발을 움직이는 액션 같은 것들에 열광을 하기도 합니다. 내연기관 자동차로 달리는 레이싱은 미래에도 여전히 멋진 스포츠로 남겠지요. 



미래의 모터스포츠는 어떤 즐거움을 줄 것인가


현재 F1 레이서들은 수백km에 달하는 거리를 달리는 동안 엔진의 열기가 내뿜는 60도 이상의 고온에 시달려야 합니다. 또한 가속시에는 관성과, 커브를 돌아나갈 때는 횡중력과의 어마어마한 싸움을 벌여야 하죠. 그래서 시합이 끝난 뒤 레이서의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체중도 급격히 줄어듭니다. 그야말로 한계를 다투는 스포츠인 것입니다. 물론 바로 그 점이 F1을 세계 최고의 스포츠로 추대받게 만든 원동력입니다. 미래의 모터스포츠는 현재만큼 극한으로 드라이버를 내몰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도, 예기치 못한 사고도 덜 할 것입니다. 미래의 모터스포츠가 현재만큼의 재미를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역시 여기서 나옵니다. 하지만 기술은 늘 모든 것을 보완해 왔습니다. 시대가 어떻게 바뀐다 해도 시합의 룰을 바꾸거나, 자동차의 성능에 몇 가지 제약을 가하는 것들로도 대중들이 열광할 만한 포인트를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의 젊은 층은 비틀즈의 록음악에 열광했지만, 요즘은 힙합이나 일렉트로닉 뮤직에 열광합니다. 하지만 장르가 달라졌을 뿐, 음악을 즐긴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요. 레이싱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내연기관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부터 스피드에 열광해 왔고, 그 성향은 미래에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AI의 경주건, 전기자동차 혹은 내연기관 자동차의 레이싱이건 모터스포츠의 본질은 같습니다.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들은 늘 존재해 왔기 때문입니다. 






글. 박정욱

필자는 남성지에서 자동차 전문 에디터로 글을 썼으며, 4차 산업협명과 미래의 운송수단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재는 HMG 저널의 자동차와 모터스포츠 담당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CG. 박수진


◆ 본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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