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고급차의 지위를 누려온 그랜저, 그 초기 모델을 살펴봤습니다
잠깐, 1980년대 중반으로 돌아가 볼까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이미 성인이었던 분, 혹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분도 있었을 겁니다. 당시를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면에서 정말 치열했던 시절이라 하겠습니다. 경제 상황도 발전을 거듭해 다양한 상품의 해외 수출이 시작되고, 건설 붐이 일어났지요. 화장품 사업에 집중하시던 아버지께서는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시기였던 85년 겨울, 몇 년 동안 타셨던 포니 왜건을 폐차시키시고 프레스토를 사셨습니다. 포니 왜건을 보내던 날 아버지가 ‘네 희생 덕분에 몸이 전혀 다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우리집의 첫 차를 떠나보내고 맞이한 프레스토는 대한민국 최초의 앞바퀴굴림 자동차였습니다. 매끈한 디자인은 물론 한 단계 높아진 성능으로 단번에 우리 가족을 사로잡았죠.
그리고 그랜저가 데뷔한 86년, 저는 막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꿈 많은 시절이라지만 고등학교 3년간 제 머리 속에 남아있는 건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끊임없이 벌어지던 시위 광경이었습니다(네, 바로 영화 <1987>에 등장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죠).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주변에 대학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해 언론의 자유까지, 사회 전반적으로 변화에 대한 요구가 큰 시기였죠. 마치 대형 세단에 앞바퀴굴림을 쓴 1세대 그랜저처럼, 급격한 혁명이 필요한 때였던 겁니다.
혁명적인 등장, 그랜저
사실 당시 자동차에 대한 시류를 생각해 보면 그랜저라는 차의 등장은 매우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고급차=뒷바퀴굴림’이라는 공식이 전세계를 휩쓸던 시기였고, 이는1970년대 이래 국내 대형차 시장의 강자로 자리했던 새한자동차의 로얄 살롱만 봐도 그렇습니다. 물론 현대자동차에도 유럽 포드에서 수입한 그라나다가 있었지만 사실 차 값에서 비교할 수가 없었지요. 1978년 처음 출시할 때 차 값이 1154만 원이었는데, 당시 막 붐이 일어나기 시작한 강남 지역의 중형 아파트 값이 그 정도였으니 아마 비교가 되실 겁니다. 말 그대로 집 한 채가 굴러다니는 것이나 다름 없었죠. 또 그라나다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분기별 자동차세가 53만 원이었는데 80년대 초 중반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의 월급이 약 30만원 정도로 연봉으로 따지면 360만 원이었지요. 2017년 하반기 평균 연봉이 3900만 원 정도라는 통계와 비교하면 1/11 수준입니다. 차 값으로 따지면 얼마일까요?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지금의 2억 원에 가까우니 이 차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한정적이었습니다. 결국 후속 모델에서는 경쟁력 있는 가격과 새로운 기술이 많이 투입된 차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국내 데뷔한 1세대 그랜저는 국내 대형차 시장에서 단번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4기통 2.0L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의 조합 밖에 없었지만, 대형 세단의 특성 상 대부분 전문 드라이버가 운전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었죠. 이후 2.4L 엔진이 더해지며 4단 자동변속기를 고를 수 있게 됐지만, 당시만해도 자동변속기가 3단인 경우가 많아 연비가 크게 떨어져 오히려 자동변속기를 기피하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최고의 기술이 집약되다
그랜저는 첫 세대부터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이 많이 달렸던 차입니다. 당시 경쟁 모델이던 로얄 살롱과 비교할 때 두 차 모두 전자식 연료 분사 장치를 달았지만 로얄 시리즈가 엔진 제어 일부에 기계식을 사용한 것에 비해 그랜저는 MPI(Multi Point Injection) 방식으로 엔진과 관련된 모든 기능을 전자식으로 제어해 한 세대 앞선 기술을 보여줬습니다. 여기에 3년 후인 89년에 3.0 V6모델이 데뷔하며 정점을 찍게 되죠. 3.0 V6 모델은 뛰어난 품질과 최신 섀시에서 얻을 수 있는 부드러운 승차감 등 고급차 시장 고객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문득 과거의 한 순간이 떠오릅니다.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였던 분이 87년쯤 그랜저 2.4 자동변속기 모델을 구입해 타셨고 두 분의 취미가 낚시여서 종종 주말에 함께 움직이실 때가 있었어요. 당시 프레스토를 타셨던 아버지는 두 명의 낚시 가방과 짐을 싣는데 편한 그랜저를 이용하셨고, 저는 뒷자리에 얻어 타 장거리 주행을 종종할 일이 있었습니다. 벨벳 재질이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매우 부드러웠던 시트와 프레스토와 비교할 수 없이 넓었던 뒷좌석, 두 분이 밤 낚시를 하시는 동안 평평하게 만들어진 시트 위에서 아주 편하게 잠을 잤던 기억은 분명하네요. 결국 좀 더 큰 차에 욕심이 생긴 아버지는 콩코드와 같은 섀시에 배기량이 작았던 기아 캐피탈을 예약해 두셨다가 현대에서 그랜저를 바탕으로 만든 Y2 쏘나타가 나오자 마자 바로 구입하셨습니다. ‘이게 그랜저보다 트렁크가 더 넓어서 좋다’는 말씀으로 새 차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시기도 했었죠.
뉴 그랜저의 V6 3500 앰블럼, 기억나세요?
2세대 뉴 그랜저는 차체 길이가 4980mm까지 길어져 현재까지의 그랜저 중에서 가장 길었고 부드러운 디자인으로 구형을 단숨에 ‘각 그랜저’로 만들어버렸죠. 운전석 에어백과 전자제어 서스펜션, 쿨박스는 물론 중간에 조수석 에어백, 사이드 에어백 등이 최초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뉴 그랜저를 떠올릴 때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은 의외로 트렁크 리드에 붙었던 앰블럼입니다. 당시 같은 엔진을 달았다 해도 천연 가죽 시트와 뒷문을 열었을 때 시트를 움직여 타고 내리기 편하게 한 이지 액세스(Easy Access), 아날로그 시계 등은 고급형인 ‘골드’ 모델에만 있었죠. 그런데 이 둘을 겉모습으로 구별할 수 있는 건 알루미늄 휠과 그릴, 금장으로 칠해진 배기량 앰블럼 정도였거든요. 덕분에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의 차를 사서 겉모습만 고급형으로 바꾸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최고급형인 V6 3500는 판매량이 많지 않았지만 도로를 달리는 많은 뉴 그랜저에 금색 찬란한 V6 3500 앰블럼이 달려 있었죠. 덕분에 정작 비싼 돈을 주고 최고급형을 산 고객들의 불만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96년, 뉴 그랜저는 같은 섀시를 사용했지만 외관을 바꾸고 고급화한 다이너스티가 나오면서 플래그십 모델 자리를 물려주게 됐지요.
결국 3세대 그랜저는 98년 10월, 그 동안의 뒷좌석 중심 모델과는 방향을 크게 바꾸어 운전자 중심의 고급차로 데뷔합니다. 쿠페처럼 멋진 디자인의 프레임리스 도어와 수동 변속이 가능한 자동기어인 H 매틱이 처음 쓰인 것도 운전자에게 차를 맘껏 조종할 수 있는 자유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뒷좌석의 ‘사장님’보다 운전자에게 더 가까운 차였던 것입니다.
젊은 그랜저, XG의 탄생
그랜저의 세대별 성격을 알고 싶다면 당시의 TV 광고를 보면 됩니다. 1994년 뉴 그랜저 V6 3500의 광고는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노신사 두 명을 뒤에서 따라가는 그랜저를 보여줍니다. 뒷좌석에 타는 ‘어르신’을 위한 차임을 강조하고 있는 거죠. 성우의 목소리도 중후하고 내레이션도 느릿합니다. 그리고는 여유있게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차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XG로 넘어오면 광고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고급스러운 주택가를 달리는 그랜저를 40대쯤으로 보이는 멋진 중년 남자가 직접 운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또 아이들을 도와주는 등 상대적으로 젊고 성공한 남자의 모습에 집중합니다. 그랜저 XG는 고객층을 확실하게 바꾸는 역할을 했다는 뜻이 됩니다.
실제로 XG 그랜저는 혁명에 가까운 진화를 했습니다. 과거와 달리 현대자동차 안에서 플랫폼 자체 개발과 다른 차종과의 공유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죠. 물론 1세대 모델도 Y2 쏘나타와 함께 사용하긴 했지만, 3세대 XG는 중형 세단인 쏘나타는 물론 SUV인 싼타페와 미니밴 트라제XG까지 다양한 섀시에 응용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또 미국 시장에 판매를 시작한 첫 그랜저로 중형급에서 중대형급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죠.
XG 그랜저는 개인적으로도 잠깐 소유한 적 있었습니다. 불과 3년 전, 해외로 거주지를 옮기는 친구의 차를 잠깐 보유했었거든요. V6 2.0L 엔진이 올라간 2001년식이었습니다. 벌써 10여 년 전 차니 사실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만 직접 만나보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적당히 각이 진 차체는 너무 권위적이지도, 너무 젊지도 않아 40대 중반인 그때의 저에게 정말 맞춘 것 같은 차였습니다. 배기량은 작았지만 V6 엔진은 부드러웠고 프레임리스 도어로 꽤나 스포티한 쿠페 같기도 했습니다. 특히 밖에서는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는 B필러 때문에 옆 유리가 하나로 보이는 건 신선한 디자인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주행감은 역시 고급차는 고급차라는 생각을 갖게 해줬습니다.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팔아야 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도 다시 가지고 싶은 차입니다.
30년 후를 바라보다
1세대 그랜저 출시부터 지금까지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차의 이름만으로 보면 85년 데뷔해 지금까지 32년이 흐른 쏘나타가 가장 오래되었지만 앞바퀴굴림 플래그십이라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형태로 세상에 나와 중대형 차의 가치를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그랜저가 어떤 의미에서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고급차의 위상을 유지하는 건 그랜저가 시대에 따라 변화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랜저 IG는 젊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탈바꿈하면서 30대 구매자가 크게 늘었죠.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그랜저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요? 1세대 그랜저의 뒷자리를 경험했던 저로서는 어쩌면 볼 수 없는 미래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고등학생인 내 아이들이 30년이 지나 제 나이가 되었을 때 그랜저의 오너가 되어 손자들을 뒷자리에 태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전통이라는 것은 이렇게 경험과 이야기가 세대를 이어 전달되며 만들어지니까요. ‘60년 전통’을 가지게 됐을 때의 그랜저가 새삼 궁금합니다.
글. 이동희
필자는 <자동차생활>에서 자동차 전문 기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티뷰론 일기”, “69년식 랜드로버 복원기” 등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기사를 쓰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크라이슬러 코리아와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 등에서 영업 교육, 상품 기획 및 영업 기획 등을 맡았으며 딜러로 자리를 옮겨 영업 지점장을 맡았다. 현업의 경험과 이론을 모두 갖춘 칼럼니스트 및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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