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차량은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섬세한 디자인으로 메워져 있다
자동차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요소이자, 소비자의 뚜렷한 기호를 반영하는 자동차 디자인. 최근 자동차 디자인은 차량 선택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가치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컨슈머인사이트>가 조사한 ‘2020년 신차 구입자의 핵심 구입 이유’를 살펴보면, 외관 스타일과 인테리어 디자인이 각각 2위와 9위를 차지했다. 특히 인테리어 디자인의 경우는 2019년에 비해 무려 9단계나 상승해, 자동차 디자인의 중요성을 다시금 실감케 한다. 이는 최근 자동차의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소비자들이 점차 자동차 디자인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자동차 디자인의 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디자인 영역 또한 고객의 높은 기준에 부응하기 위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 단순히 조명으로만 기능했던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는 어느덧 화려한 디자인 요소로 거듭나고 있으며, 사용성 위주로 설계된 인테리어 역시 미학적인 부분을 극대화한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디자인 영역을 외장, 내장, CMF(Color Material Finish)로 나누지 않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영역까지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차체의 안쪽 면이나 도어의 접합 부위, 엔진룸 등 이른바 ‘그레이존(Greyzone)’이라 불리는 영역까지 정교한 디자인을 반영해 차량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레이존 디자인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레이존 디자인은 차량의 공학적인 설계와 디자인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영역의 디자인 과정을 말한다. 그레이존이라는 단어 역시, 블랙과 화이트 사이에 존재하지만 그 어떤 곳에도 포함되지 않는 ‘무소속’ 상태를 의미한다. 즉, 그레이존은 차량 내부를 구성하는 부위로써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도어나 후드를 열었을 때나 트림을 탈거하고 분해하면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레이존 디자인은 이처럼 숨겨진 부위에 기능성과 심미적인 요소를 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참고로 자동차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외장 디자인, 내장 디자인, CMF 디자인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그레이존 디자인은 외장, 내장 및 CMF를 제외한 모든 부위와 부품에 적용된다. 예를 들어, 차체를 구성하는 언더 플로어와 함께 각종 이너(안쪽) 패널이 대표적이며, 엔진룸이나 엔진 본체, 흡배기 부품, 정션블럭과 같은 주요 기능 부품 및 각종 커버류, 러기지룸, 심지어 부품을 고정하는 마운팅 볼트와 너트까지도 그레이존 디자인 영역에 해당한다.
차량의 기본 뼈대가 그대로 노출된 BIW(Body In White)를 살펴보면 그레이존 디자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BIW는 차량의 프레임과 패널이 조립된 상태를 의미하는데, 차체를 구성하는 언더 플로어, 펜더, 크로스 멤버, 루프, 도어, 트렁크 리드나 테일게이트 이너 패널, 각종 필러 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따라서 BIW를 살펴보면 차체의 기능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있으며, 각종 트림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부위의 디자인 요소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개폐가 가능한 후드, 도어, 주유구(충전구) 등에도 그레이존 디자인이 반영된다. 예를 들어 후드를 열었을 때 노출되는 엔진룸, 도어를 열었을 때 드러나는 차체 부위, 주유구나 충전구 도어를 열었을 때 노출되는 하우징은 평소에 보기 힘들지만, 정비나 주유할 때 주기적으로 마주하는 부분으로 기능적인 목적은 물론 심미성까지 고려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최신 현대자동차, 기아, 제네시스 차량에는 섬세한 부분까지 완성도를 더한 그레이존 디자인이 반영돼 있다. 먼저 후드를 열어야 마주할 수 있는 엔진룸의 경우, 기계에서 느껴지는 역동성과 기능성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기하학적 이미지를 엔진룸 전반에 반영했다. 표준화된 커버류 디자인으로 부품 간 조화를 강조했으며, 섬세하고 견고한 콘셉트를 공통 테마로 설정해 엔진별 특성을 고려한 역동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현대차그룹은 브랜드별 차별화된 콘셉트를 엔진룸 디자인에 반영한다. 현대차와 기아는 견고하고 기능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전용 전기차 라인업으로 구성된 아이오닉(IONIQ)과 EV는 하이테크 감성과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PE룸에 반영한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인 N은 고성능차 특유의 강건하고 다이내믹한 이미지를, 제네시스는 프리미엄 브랜드에 걸맞은 고급스러운 감성을 엔진룸에 적용한다.
엔진 특성을 반영한 엔진 커버 디자인 역시 눈여겨봐야 할 디자인 요소다. 현대차그룹 브랜드의 엔진룸은 기능에 부응하는 간결한 형태로 엔진 특성을 연출한다. 전반적으로 일관된 조형을 활용해 심플한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엔진 커버는 주변 부품과의 자연스러운 연결감을 강조하고, 표면 처리의 차별화로 엔진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쏘나타의 고성능 모델인 쏘나타 N라인의 엔진 커버는 독특한 조형으로 기계적인 이미지를 강조했으며, 카본 패턴과 입체적인 ‘TURBO’ 레터링을 더해 강력한 엔진 퍼포먼스를 표현했다.
브랜드마다 추구하는 엔진룸 디자인 콘셉트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공통적인 디자인 요소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부품 표면처리 디자인, 경고 라벨 그래픽, 캡/게이지류, 배터리, 각종 픽토그램 디자인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공통 부품은 고객이 직관적으로 기능을 파악할 수 있도록 표준화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이처럼 발전을 거듭한 현대차그룹 브랜드의 엔진룸은 시장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자동차 전문매체나 인플루언서의 리뷰에서 엔진룸 디자인에 대한 호평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쏘나타의 경우는 “정비성을 고려한 구성이 돋보이고, 카본 패턴이 적용된 엔진 커버 디자인을 통해 역동성이 잘 반영돼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제네시스 GV70는 “깔끔하게 정돈된 엔진룸 구성과 다이내믹한 엔진 커버 디자인이 매우 인상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기존에는 기능적인 설계만 반영했던 차체의 변화도 두드러진다. 제네시스 GV60의 경우, 제네시스 브랜드 정체성을 반영한 그레이존 디자인을 차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차량의 도어를 열었을 때 드러나는 사이드 아우터 실링 부위는 간결하게 정돈된 선과 면으로 절제된 볼륨감을 표현했으며, B필러 하단은 성형 시 발생하는 주름 방지 형상을 적용해 SUV만의 강인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또한 아름다운 도어 디자인을 위해 앞뒤 도어 이너 패널의 형상을 통일하고 내부 구조를 유사하게 조정해 균형감을 추구했다.
후드를 열었을 때 노출되는 후드 이너 패널 또한 차별화된 그레이존 디자인이 적용된 부위다. 차량의 후드는 형태를 유지하고 강성을 확보하기 위해 강성폼을 적용하는데, GV60는 강성폼에 경쾌한 리듬감을 표현해 시각적인 재미를 더했다. 또한 후드 패널 안쪽 주름에 비례감을 조성하고 주름 수를 최적화해 시각적으로 조화로운 후드 내부를 완성했다. 엔진 소음을 차단하는 인슐레이션 패드 역시 입체적인 선으로 디테일을 더해 제네시스 특유의 역동성을 표현했다.
테일 게이트 이너 패널은 트렁크를 열었을 때 보다 완벽하게 마감된 모습을 연출하고자 면 품질 향상에 중점을 두고, 기능 위주로 형성되는 다수의 면을 매끄럽게 연결해 하나의 통일된 조형적 이미지를 가지도록 세심하게 조율했다.
언더 플로어는 차체의 바닥 면으로 그레이존 영역 중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부위다. 언더 플로어는 위치에 따라 프런트, 센터, 리어 플로어로 구성되며, 각 부분의 기능과 목적, 성형 조건이 달라 디자인적으로 통일된 조형성을 확보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제네시스 G80의 경우, 심플하고 솔리드한 콘셉트를 기반으로 폼의 패턴이나 성질이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했다. 또한 기하학적인 형상으로 속도감을 연출했으며, 기능성과 심미성의 조화를 통해 제네시스 브랜드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아울러 면의 분할과 도형의 위치로 표현한 균형미 또한 G80 언더 플로어의 특징이다.
뒷좌석과 트렁크 부위를 이루는 다양한 차체도 그레이존 디자인이 적용된 부분이다. 패키지 트레이, 백 패널, 파티션 패널 등은 언더 플로어와 동일한 조형적 특징을 활용해 기하학적인 패턴을 이루며, 패턴의 형상은 언더 플로어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렇게 완성된 BIW는 시각적인 통일감과 리듬감으로 특유의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차량의 공력 개선과 차량의 하부 구조를 보호하기 위해 장착되는 언더커버도 그레이존에 포함된다. 언더커버 디자인은 재질의 특성에 따른 사출 강성과 냉각 성능, 공기역학 등을 고려했다. 공기의 흐름이 원활하면서도 브랜드의 특징이 드러나도록 비드의 형상을 단순하게 설계하고 냉각과 강성을 위한 기능적인 조형이 주를 이룬다.
독특한 충전구 내부 디자인도 눈길을 끈다. GV60의 충전구는 전기차 특유의 심플하고 하이테크한 분위기를 담았다. 충전구 도어 버튼은 마치 최신의 전자제품과 같이 간결한 형태로 구성되었으며, 기계적인 요소를 원형 그래픽으로 통일해 안정감을 더했다. 아울러 차량의 배터리 상태를 알리는 그래픽 조명은 유쾌하면서도 직관적인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눈에 띄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설계하는 그레이존 디자인은 제네시스뿐만 아니라 현대차와 기아 차량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평소에는 가려져 있거나 일차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기능적인 설계만 반영해도 문제가 없지만, 현대차그룹은 보다 높은 완성도를 위해 깔끔한 마감과 심미적인 디자인 요소를 차체 곳곳에 적용하고 있다.
그레이존 디자인은 소비자 만족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가령 고객이 비상시 사고나 정비 등으로 숨겨진 곳의 정교한 디자인을 확인하게 된다면, 차량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브랜드의 신뢰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레이존 디자인은 브랜드 만족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디자인 과정에서 매우 세심하게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엔진룸부터 차체 내부까지, 숨은 곳을 정교하게 가다듬은 디자인 결과물에서 현대차그룹이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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