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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Apr 03. 2018

성수동 수제화 거리를 걷다

구두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성수동 수제화 거리를 다녀왔습니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는 지하철 2호선 뚝섬역과 성수역을 잇는 아차산로를 따라갑니다. fromSS와 SSST 같은 수제화 거리의 랜드마크가 모두 이 길 위에 있습니다. 서울역 염천교에서 명동을 거쳐 성수동까지, 그리고 성수동에서 다시 30년을 이어온 우리나라 수제화의 역사는 구두 장인들의 손바닥에 잡힌 굳은살처럼 성수동 골목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렸습니다.



수제화에 대한 모든 것, 슈스팟 성수


성수동 수제화 거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을 출발점으로 삼는 게 좋습니다. 성수역 2·3번과 1·4번 출구 사이 통로에 구두박물관 ‘슈스팟 성수’가 있어서죠. 박물관이라는 거창한 이름보다는 전시장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소박한 공간이지만 우리나라 수제화의 역사와 변천사, 그리고 구두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 한 번쯤 돌아볼 만합니다. 1960년대 서울역 염천교에서 시작해 1980년대 명동에서 황금기를 맞은 수제화 장인들이 1990년 이후 성수동으로 터전을 옮긴 사연이 깔끔한 패널 속에 연대별로 꼼꼼히 정리돼 있고, 7일 이상 걸리는 수제화 일별 제작 공정 역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장 한편을 채웁니다.

질 좋은 수제화가 탄생하기까지 필요한 인내는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구두 장인들이 2년 이상 칼을 갈아 중견습이 되고, 상견습을 거쳐, 선생이라는 호칭을 얻을 때까지 10여 년의 세월이 걸립니다. 우직하니 성수동을 지켜온 구두 장인들의 손때가 묻은 연장들은 이곳에서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신발 형태를 잡아주는 구두 골로 가득 메운 천장과 모빌 마냥 가는 실에 매달려 흔들리는 낡은 가위와 핀셋, 손망치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작품입니다. 구두 장인들이 기부한 각종 연장으로 재현한 간이 공방과 구두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실물을 통해 단계별로 보여주는 전시물도 인상적입니다. 

늘 새로운 것들로 빠르게 채워지는 오늘날, 세월의 더께를 입은 물건과 장소는 왠지 모를 위안이 됩니다. ‘신발이 발에 꼭 맞으면 발의 존재를 잊는다’고 했던가요. 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흐름을 좇느라 발이 부르트도록 뛰는 우리에게 이곳은 ‘꼭 맞는 신발’처럼 삶의 무게를 잠시 잊게 합니다.



수제화 거리의 핫 플레이스, fromSS와 SSST


한때 ‘수제화의 메카’로 주목받았던 성수동은 기성품 구두의 등장으로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허름한 공장과 노후한 주택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빛바랬던 이곳에 다시 생기가 돌고 있습니다. 성수역 1번 출구로 빠져나오면 본격적인 수제화 거리 탐방이 시작됩니다. 탐방이라 표현했지만 그 시간은 수제화의 역사를 더듬는 추억의 시간이 될 수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구두와 만나는 쇼핑의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시간이 이 거리를 거니는 모두에게 무척 풍성하고 즐겁게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를 대표하는 fromSS와 SSST는 성수역 1번과 2번 출구 사이에 자리합니다. fromSS와 SSST는 구두 장인들의 공방이자 매장입니다. fromSS가 성동구청에서 인증을 받은 구두 장인의 개별 매장이라면 SSST는 11개 구두 공방이 모여 만든 마을 기업 공동판매장입니다. 성수역 일대가 수제화 거리로 조성되기 전인 2011년에 문을 열었으니 SSST는 지금의 수제화 거리를 있게 한 마중물이자 일등공신인 셈입니다. 설립 7개월 만에 매출 5억 원을 달성해 행정안전부로부터 우수마을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SSST는 ‘성수 수제화 타운’의 영문 이니셜입니다. 

SSST가 중저가 제품을 통해 수제화의 대중화를 이끈다면 fromSS는 고객의 개성을 중시하는 고급화를 추구합니다. 이는 fromSS에 입점한 구두 장인들의 면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대한민국 수제화 명장 1호’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를 제작한 유홍식 명장입니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그는 “수제화의 우수성을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며 매일 이곳에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덕분에 수제화 거리를 찾는 이들은 구두 장인이 작업하는 모습을 언제든 볼 수 있습니다. 굳은살이 단단히 박인 손끝에 힘을 실어 한 땀 한 땀 가죽을 꿰매는 손길을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됩니다. 그렇게 땀과 정성이 배어 완성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구두. 새 주인을 만나거든 분명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겠지요.



성수동의 신 스틸러, 부자재 거리와 이색 카페들


성수역 1번과 2번 출구를 잇는 거리가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핫 플레이스라면 3번과 4번 출구를 아우르는 구간은 수제화 거리를 든든히 받쳐주는 주춧돌 같은 곳입니다. 성수동에서 성업 중인 350여 개 수제화 완제품 생산업체에 가죽 원단과 힐, 액세서리 같은 부자재를 제공하는 업체와 중간가공업체들이 이곳에 모여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부자재 거리 정도가 될 터. 부자재 업체들은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하다 보니 SSST나 fromSS처럼 눈에 쉽게 띄지는 않지만 수제화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아기자기한 부자재들을 창문 너머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담벼락에 그려진 익살스러운 벽화들도 부자재 거리를 걷는 재미에 한몫 톡톡히 합니다. 부자재 거리 끝에는 성수동 수제화를 테마로 한 구두 테마공원이 있습니다. 1998년 삼익악기 공장 터에 조성한 근린공원을 지난 2015년 테마공원으로 새롭게 꾸몄습니다. 구두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구두 장인 동상, 그리고 아담한 벤치가 마련돼 잠시 쉬어가기에 좋습니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서 수제화만큼 유명한 것이 이색 카페들입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카페들 가운데 최근 가장 ‘핫한’ 카페라면 1970년대 정미소로 사용했던 붉은 벽돌 건물을 카페로 활용하는 ‘대림창고’와, 정비소에서 금속공장으로 그리고 다시 카페로 쉼 없이 모습을 바꾼 ‘onion’을 꼽을 만합니다. 이 두 곳이 특히 많은 사랑을 받는 까닭은 바로 업사이클링(upcycling) 때문입니다. 리사이클링(recycling)을 넘어 버려지고 낡은 것에 디자인을 더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공간입니다. 

이들 카페는 벽돌 빠진 외벽과 나무 대문, 칠 벗겨진 내벽을 그대로 살려 공간을 멋스럽게 꾸몄습니다. 독특한 외관과 인테리어를 통해 젊은 층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성수동과 이곳에 들어선 카페들은 무조건 헐고 새로 짓는, 무조건 높고 화려해야 한다는 천편일률적인 도시 개발의 대안으로도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과거의 영광은 지나갔지만, 그 흔적을 안고 반짝반짝 새로이 광을 낸 성수동, 한 번 더 재도약을 꿈꾸는 이곳에 하나둘 발걸음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글, 사진. 정철훈(여행작가)

현대엔지니어링 사보 <사람과 공간> 2018년 2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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