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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Jun 01. 2018

예쁘게 꾸미고 나왔잖아
집에 그냥 가지 마

결혼식이 가득한 계절, 예쁘게 차려입고 나왔는데 곧장 집에 가긴 아깝죠.


한껏 차려 입은 날에는 하이힐 속 발가락부터, 온몸이 긴장 상태입니다. 또각또각 구령처럼 따라붙는 구둣발 소리에 어깨는 쫙 펴게 되죠. 한 번씩은 이렇게 멋을 낼 핑계거리가 있는 것도 좋습니다. 설령 착각이라 해도,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 느낌은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니까요. 결혼식이 있는 날이 딱 그렇잖아요? 기껏 멋내고 나왔는데 축하만 하고 돌아가기엔 치장에 들인 공이 아깝습니다. 사진이라도 한 장 멋지게 남기고 가야죠. 이왕이면 화장실 세면대 셀카 말고, 탁 트인 곳에서 제대로 기념 사진을 남겨보자고요. 하객룩으로 갈 만한 곳, 서울에서 사진 찍기 좋을 명소를 몇 군데 꼽아봤습니다.


석파정 서울미술관


웨딩드레스는 꿈과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생을 고대하고 준비해 온 이벤트면서, 한순간에 종결되는 하룻밤 꿈처럼 찰나의 판타지이기 때문이죠.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가 <디어마이웨딩드레스>입니다. 웨딩드레스를 주제로 한 이 전시는 특정 장르로 한정짓지 않고,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소개합니다.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웨딩드레스 컬렉션과 패션쇼 재현 무대까지 볼 수 있죠. 결혼식에 다녀온 직후 예식과 드레스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일 겁니다. 심오한 눈빛으로 사진을 찍고, 다이어리에는 사유의 메모를 남겨보세요. 전시는 9월 16일까지 계속됩니다.



서울미술관 입장권이 있으면 3층 옥상으로 연결되는 석파정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석파정은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별서로, 바위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풍광을 자랑합니다. 인왕산 기슭에 넓게 엎드린 암반과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은 전시장에서 느낄 수 없는 감흥을 주죠. 기획자나 디자이너 없이 홀로 구성된, 자연에 의한 자연의 작품이니까요. 정자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아보세요. 산수화 속 주인공처럼 사진을 남길 수 있습니다.




석파정을 돌아볼 때, 뒤쪽으로 난 숲속 오솔길을 놓치지 마세요. 편안하고 상쾌한 산책길입니다. 세상과 격리된 듯한 나만의 은신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성수동 카페


이번에는 예술적 감성이 다분한 성수동에 들렀습니다. 그럴 듯한 인물 사진을 찍기에 앤티크한 카페만한 곳도 없죠. 성수동에는 시원시원한 규모하며 힙한 분위기로 가득한 카페가 여럿입니다. 상큼한 에이드로 목을 축이며 청량함을 표현해보세요. 다들 아시잖아요? 인스타그램 인생 사진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탄생한다는 거.


용마랜드


폐장한 놀이공원이 야외 스튜디오로 거듭났습니다. 기념 사진 혹은 추억용 사진을 남기기에 이만한 장소도 드물 거예요. 용마랜드는 2011년 폐장 이후 아이돌 뮤직비디오, 영화, 드라마의 촬영지로 쓰였습니다. 놀이공원 본연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판타지적 이미지를 제공하며 방문객에게 활짝 열려 있는 거죠. 다람쥐통, 바이킹, 꼬마기차, 하늘그네 등 추억 속 놀이기구가 가득 모여있습니다.




인형탈을 쓰고 하얀색 장갑을 낀 손을 흔드는 사람들, 찬란하게 부서지는 폭죽, 퍼레이드, 구슬아이스크림, 츄러스, 반짝이는 조명 등 놀이동산은 꿈과 추억의 공간입니다. 그 중에서도 회전목마는 놀이동산을 가장 아름답게 상징하는 기구입니다. 그냥 올라타 보세요. 움직이지 않으면 뭐 어때요. 돌아가지 않고 가만히 있어주는 덕분에 카메라를 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합니다.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거칠게 자란 풀과 덩이진 날파리 떼, 뱀 출현을 조심하라는 안내 표지판을 보니 ‘생태공원’임이 격하게 와 닿습니다. 풍성하게 늘어뜨린 나뭇가지는 청정한 기운을 뿜어내죠. 여기서는 한껏 긴장을 풀고 ‘내추럴한’ 포즈를 취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인공적으로 꾸며내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표정 짓는 거예요. 누군가 몰래 찍어준 것처럼.



야생의 색과 소리를 만나니 저절로 발걸음이 늦춰집니다. 초지와 숲으로 연결된 길을 지나다 보면 습지와 연못도 여럿 만날 수 있습니다. 서너 마리 오리가 유유히 물 위를 노닐고, 팔뚝만한 잉어들이 잔잔한 수면을 깨웁니다. 공원 안의 연못인 여의못, 오리못 등은 지하수와 한강물을 끌어들여 조성되었습니다. 자켓은 어깨에 살짝만 걸치고, 셔츠의 단추 한두 개를 끌러도 좋겠습니다. 느긋하게 감상하다 가세요.


국립현대미술관


세 개의 건물이 별개인 듯, 하나로 이어진 국립현대미술관은 낮은 키로 담백하게 지어진 건물입니다. 네모난 정원을 품으며 다소곳이 붙어있죠. 건물 내부로 들어가 통창이 있는 가장자리에 앉아 빛을 등지면, 그림 같은 실루엣이 연출됩니다.



지상의 낮은 키와는 대조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지하 전시장은 전고가 높고 과감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현재는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과 공동주최한 <아크람 자타리: 사진에 저항하다(8월 19일까지)>전이 한창인데요. ‘아시아’를 키워드로 한 기획전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7월 8일까지)>도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아시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작가들의 개인적 스토리텔링이 모여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죠. 전시장의 새파란 벽면은 하늘 같기도, 바다 같기도 해서 슬쩍 몸을 기대고 싶어집니다. 찍은 사진을 보니 해시태그가 마구 떠오르네요. #사진 #사색 #여유 #미술관 #하객룩


항동철길


항동철길은 구로구 오류동에서 시작됩니다. 천왕역 근처의 도로변에서 샛길로 들어오는 방법과 푸른수목원을 통해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열차가 끊긴 레일 위에서 균형을 맞추며 갸우뚱 걷다 보니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열차 바퀴가 굴러간 지 꽤 여러 날이 지났나 봅니다. 철길을 따라 잡초가 바짝 자랐네요.


녹음진 길에서 찰칵, 비스듬이 쬐는 태양빛이 더해지면 따뜻한 톤의 인생샷이 완성됩니다.



물자 수송용으로 만들어진 항동철길은 구로구 오류동에서 경기도 부천까지 총 4.5km 구간의 노선입니다. 고즈넉한 철길에는 가상의 간이역도 세워져 있습니다. 2015년 구로구 주민들이 모여 진행한 공공미술이라는데요. 개성까지 80km, 해남까지 325km라는 재미있는 표지판도 눈길을 끕니다. 주민들의 정성이 담긴 작업물 덕분에 귀여운 아날로그 감성이 더해졌군요. 이 길을 아끼는 사람들은 왠지 마음이 잔잔하고 깊을 것 같습니다. 6월 1일부터는 군 전용열차가 다닐 예정이지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운행하므로 철길 방문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어느 동네건 프레임 안에 담고 보면 나름의 개성이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색이나 모형을 발견하면 자신만을 위한 배경 혹은 오브제로 활용해 보세요. 단, 준비가 됐다면 말이죠. 오늘따라 유난히 멋있는 당신, 그냥 집에 가지 마세요.



모델. 정해원
사진. 안재현
글. 안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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