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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Jun 12. 2018

생명을 일깨우는 고장
전남 신안 여행기

1,02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들의 고향 신안을 만나다.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섬 곳곳을 어루만지는 생태와 생명의 고장, 전남 신안. 그곳에서 보석처럼 숨겨져 있는 이야기와 절경 따라 누비다 보면 시나브로 하루해가 저뭅니다. 바닷물을 소금으로, 몽우리를 꽃송이로 바꾸어주는 마법 같은 바람길 따라 섬들의 천국, 신안으로 느리지만 알찬 여행을 떠나봅시다.


섬들의 고향, 신안


전남 신안군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행정구역 중에서도 가장 많은 섬을 품고 있는 고장입니다. 유무인도를 합해 모두 1,025개의 섬이 자리하고 있으니 토박이 중에서도 고향의 섬을 다 본 이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단순히 섬의 수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너른 갯벌은 물론 섬 자체가 천연기념물 제170호로 지정되어 있는 홍도, 람사르협약에 등록된 장도 습지를 품고 있는 흑산도, 원시림의 생명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소나무 숲과 12킬로미터에 이르는 은빛 백사장을 자랑하는 임자도 대광해수욕장이 모두 생태와 생명의 섬, 신안의 이름과 가치를 드높이는 숨은 보석들입니다.

그런 만큼 신안을 여행할 때는 먼저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발자국 찍고 기념사진 남기는 스탬프식 여행이 아니라 한 섬이라도 오래 머물고 깊이 들여다볼 때 비로소 신안의 섬들은 외지의 여행자에게 깊이 간직한 매력을 선보여줄 것입니다.


느리고 정직한 삶이 주는 지혜, 증도 소금


느리지만 깊이 있는 신안 여행의 첫 목적지로는 증도가 제격입니다. 2007년 12월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된 증도는 덩치 큰 자동차도 자전거의 속도만큼이나 느긋하게 오가는 여유가 넘칩니다. 2010년 증도대교가 놓이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쉬워졌지만 그 전까지는 바로 옆 지도까지 어김없이 뱃길을 갈라야 했던 섬 중에서도 오지 섬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곳 증도는 여의도 두 배에 이르는 140만 평 넓이의 태평염전 소금 농사를 청정하게 꾸려올 수 있었습니다. 염분을 한껏 머금고 선 소금 창고나 수확한 소금을 나르는 나무 수레가 아직도 현역으로 당당히 제 몫을 해내고 있으니 섬 전체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가 수긍이 갑니다. 한낮 땡볕을 피하지 않고 땀 흘리는 농부들의 수고로움은 그대로 건강한 짭짤함으로 치환됩니다. 우리나라 천일염의 6퍼센트가량이 이곳 증도 태평염전에서 만들어졌으니 어쩌면 우리 모두 신안의 바람과 바다가 빚어낸 깊고 건강한 맛을 한 번쯤은 보았을지 모릅니다.

소금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염전 끝에 자리한 소금박물관을 들러봅시다. 옛 창고를 개조해 만든 박물관에서 전 세계의 소금 관련 문화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박물관 옆 체험장에서는 직접 소금 생산 과정을 경험하며 남다른 추억을 남길 수도 있으니 일정에 기록해두시길 추천합니다.


안좌도에서 만나는 세계적인 화가와 예술혼


여행길의 흥미를 돋워줄 질문 하나를 던져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작품 경매가 기록을 가진 작가는 누구일까요. 해답은 신안 안좌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1913년 안좌도에서 태어나 1974년 미국 뉴욕에서 생을 마감한 화가, 수화 김환기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의 1973년 작 <고요>는 2017년 경매에서 65억 5,000만 원에 낙찰되며 세계 미술 시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신안군 안좌면 김환기길 38-1에는 작가의 유년시절은 물론, 대학을 졸업한 후 이곳 고향집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 흔적을 만날 수 있어 특히 자녀들의 교육에 좋은 장소입니다.

신안의 바다와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을 바라보며 예술가의 꿈을 키운 청년 김환기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중에도 고향과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화폭 가득 채우며 향수를 달랬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 드넓게 펼쳐지는 푸른색의 향연 속에서 신안의 하늘과 바다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작품 감상법이 될 것입니다. 



자연이 빚은 절경과 잘 어우러지는 안좌도 소망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안좌도와 박지도, 반월도를 이어주는 길이 1,462미터의 이 다리는 밤이면 오색등 불빛이 켜지며 수면 위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합니다. 다리 아래로는 감태가 자생하고 갯벌이 펼쳐져 있어 역시 체험이 가능합니다. 


흑산도, 그 톡 쏘는 듯 깊은 맛과 이야기에 빠지다


즐기며 배우는 인문 여행으로 흑산도를 빼놓으면 안 됩니다. 흑산도는 목포여객터미널에서 2시간 남짓 뱃길을 달리면 닿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압도적인 절경이 숱하게 펼쳐지는 관광지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척박한 땅이자 유배지였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은 조선 시대 당시로는 엄혹하기 이를 데 없는 흑산도 유배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생활 속에서도 실학자의 정신을 벼려 바닷속 생태를 연구하고 세세하게 그 쓰임을 밝혀 <자산어보>를 완성했습니다. 먹거리는 물론 약을 구하기 힘들었던 일반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됨은 물론이고 학술적인 면에서도 당시 우리 근해의 어자원과 생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흑산도에는 당시 정약전이 유배 생활을 하던 사리마을에 그의 처소를 복원해두었습니다. 우리의 바다와 백성을 사랑한 실학자의 마음을 배워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왕 흑산도에 입도했다면 홍어 맛을 안 볼 수 없습니다. 근래에는 삭힌 홍어의 알싸한 맛을 즐기는 이들이 제법 늘었습니다. 흑산도에서는 숙성 홍어와 더불어 갓 잡은 싱싱한 홍어를 맛볼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집니다. 생 홍어는 썰면 칼에 붙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차져서 씹는 맛이 일품입니다. 그래서 현지 사람들은 한 점 시식하는 것만으로도 흑산도산과 수입산을 구분해냅니다. 뼈째로 씹어 먹는 홍어는 삭힌 것보다는 연하지만 역시 특유의 알싸한 향과 씹을수록 구수한 맛에 절로 젓가락이 바빠집니다. 예리항 주변에 맛집들이 자리하고 있으니 한 끼 식사는 홍어로 즐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섬 라이딩의 매력

신안의 섬을 찾았다면 단순히 눈과 입의 즐거움에 그치지 말고 역동적인 도전을 즐겨보세요. 섬의 지형이 입체적이어서 터프한 산세와 유순한 해안도로가 함께 어우러지며 트레킹과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기에 그만입니다.

신안 비금도는 1996년, 이웃해 있는 섬 도초도와 서남문대교로 이어져 하나의 섬이 되었습니다. 자연 백사장이 카펫처럼 펼쳐진 명사십리와 해안선이 마치 하트를 닮은 하누넘해수욕장 등 바닷가 근처 도로를 달리면 수많은 절경이 펼쳐집니다. 비금도 동쪽 끝부분에 자리한 가산선착장에서 출발해 섬을 도는 코스는 전체 40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원초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섬인 만큼 편의시설이나 가게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이나 간식 등 각자의 먹을거리를 잘 챙기고 일행과 더불어 라이딩을 하는 게 안전합니다. 도초도 화도선착장 일대에 식당과 숙박 시설이 모여 있는 만큼 도초도 초입의 하도선착장을 베이스캠프로 일정과 코스를 잡으면 좋습니다. 

비금도뿐 아니라 가거도와 흑산도 등 걸어도 좋고 자전거로 즐기기에도 좋은 길을 품고 있는 신안의 섬은 많습니다.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시원하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육지에서 짊어지고 온 고민과 상념들이 단번에 사라지고 가벼운 몸과 마음 그리고 파도 소리만이 온몸과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안의 바람은 섬 곳곳에 생명을 불어넣고 모난 사람들의 마음까지 가다듬어줍니다. 그러니 ‘섬처럼 외롭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바람에 사연을 전하고 함께 파도를 견디며 살아가는 신안의 섬들만큼 좋은 벗도 없습니다. 짭짤한 바람이 선사하는 날것의 위로가 그립다면 신안으로 떠나봅시다. 



글. 허재훈
사진. 신안군청 

현대자동차 사외보 <현대모터> 2018년 5, 6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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