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에 다시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모이고 있습니다
을지로는 나이 든 동네입니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지만, 지하철역이 개통되고 고층빌딩이 세워지는 동안에도 꼬장꼬장한 영감님처럼 고집스레 제 풍경을 지켰습니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라고들 합니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낡은 동네들이 으레 그러하듯, 금세 자취를 감춰버리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을지로는 달랐습니다. 청계천의 얕은 물줄기를 따라, 느리지만 묵묵히 을지로의 시간은 그렇게 흐르는 중입니다.
숨겨진 도시의 얼굴
을지로의 이름이 붙은 지하철역에서 내려 출구 밖으로 나오니 고층빌딩과 함께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자동차는 도로변 위를 무심히 달렸고, 멀끔히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빌딩 사이, 시야가 닿지 않는 골목에는 이들과 이질적인 표정이 숨어있었습니다. 오래된 상가들이 즐비했으며, 철물이나 공구 따위가 제멋대로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 녹이 슨 기계의 소리가 좁은 골목을 울렸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숨겨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숨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우리가 찾지 못했거나 찾으려 하지 않으면서 이들은 도시의 이면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때 이곳은 제조업과 인쇄업, 유통업의 중심지로서 꽤 호황을 누렸습니다. 1968년에는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인 ‘세운상가’가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강남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을지로를 떠났습니다. 설상가상 제조산업까지 쇠퇴하고 나니 을지로의 전성기는 완전히 저물었습니다. 을지로가 도시의 주변부로 숨어든 것도 이 무렵부터였습니다.
오래된 것이 오래된 채로 존재할 순 없을까?
을지로가 다시 ‘발견’된 건 청계천 복원이 이뤄진 뒤였습니다. 청계천 주변을 오가는 유동인구가 늘어나자 서울시는 을지로 일대의 개발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세운상가를 철거한 뒤 숲길을 조성하고 고층빌딩을 세우는 계획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서울이 그래왔듯이 말입니다. 거센 재개발의 열풍이 을지로를 휩쓸고 지나 갔지만, 을지로는 도시 안에 깊게 뿌리 내린 고목처럼 쉽사리 흔들리지 않고 제 모습을 지켰습니다.
을지로는 그렇게 다시 ‘도시재생’의 이름을 붙이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무것도 부수거나 철거하지 않고, 오래된 을지로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되 다시 전성기의 호황을 불러오겠다는 것입니다. 계획에 따라 먼저 세운상가의 정비가 시작됐습니다.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낡아 버린 상가를 깨끗하게 보수하고 보행 데크를 만들었습니다. 청년들을 위한 작업공간도 만들어졌습니다.
을지로 도시재생의 성공을 운운하기에는 조금 이릅니다. 이제 세운상가라는 첫발을 내디뎠을 뿐, 아직 변화를 논할만한 단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을지로가 여전히 나이 든 동네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세련된 을지로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을지로에는 10년, 20년이 우스울 정도로 오래된 상점과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 나이만큼 두터운 역사를 가진 이 노령의 동네를 어찌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요. 오래된 것을 오래된 채로 남겨두는 일에서부터 을지로 도시재생은 시작되었습니다.
을지로의 시끌벅적한 공존
‘뜨는’ 도시는 필연적으로 청년들을 불러왔습니다. 아니, 청년들이 왔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을지로의 빈틈 또한 청년들이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카페나 펍(Pub)등의 소규모 공간을 운영하며 좁은 골목 사이에 자연스레 스며들었습니다.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값비싼 메뉴들을 내세우며 젊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였던 여타의 동네와는 달랐습니다. 을지로의 청년들은 구태여 을지로의 ‘낡음’을 바꾸려 들지 않았습니다. 작은 간판과 촌스럽고 어설픈 모양새를 유지했습니다. 일부러 감춰두듯 골목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도 어느새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니까 을지로에는 낡은 상가가, 한국전쟁 직후 난민촌 시절에 생겨난 이북 냉면집이, 한평생 쇳가루가 묻은 손으로 생계를 꾸려갔던 노년의 가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을지로에는 청년과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아지트도 있습니다. 이들은 공존합니다. 공존은 단지 함께 있다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충돌하지 않으며, 저마다의 영역을 지켰습니다. 을지로의 주인 노릇을 하는 수많은 존재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댔지만 누구도 나무라거나 내쫓지 않았습니다. 그 시끌벅적한 공존이야말로 도시재생의 가장 정석인지도 모릅니다.
일상의 동네가 특별해지는 순간
어반플레이(URBANPLAY)
어반플레이가 관심 가진 것은 도시였습니다. 도시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이야기와 문화에 집중했습니다. 콘텐츠를 발굴하고 창작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도시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아는동네」 매거진을 출간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동네를 둘러싼 환경부터 주민의 일상과 공간, 물건 등에서 추출한 생활양식까지. 하나의 동네가 가진 일상적 소재들을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들여다보며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을지로 일대를 대상으로 한 「아는을지로」 매거진을 발간했습니다. 어반플레이의 홍주석 대표에게 을지로의 매력에 대해 물었습니다. 연남동에 이어 아는동네 매거진의 두 번째 동네로 을지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공존의 가능성이 있는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을지로에는 기나긴 역사가 있었고, 그 시간의 켜 안에 들어와 콘텐츠를 꾸미는 새로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종묘, 창덕궁 등의 문화유산과도 지리적으로 가까이하고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동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을지로에서는 여전히 직접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현재 어반플레이는 「아는을지로」를 시작으로 을지로에 대한 또 다른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2013년 설립 이후, 지난 5년간 어반플레이는 몇몇 도시가 도시재생이란 이름 아래 흥하거나 쇠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우리나라는 개발에만 익숙해진 나머지 도시재생도 비슷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시재생은 기본적으로 느립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시재생이 개발의 속도로 추진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쉽게 노출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홍주석 대표는 을지로를 국내 도시재생의 ‘희망’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을지로가 가지고 있는 공존의 가능성과도 이어집니다. 낡은 동네, 그리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정부 주도 하의 도시재생은 이전의 사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을지로의 청년들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정부의 도시재생 사업과는 철저히 구분된 채로 움직였으며, 있는 그대로의 을지로를 좋아했습니다. 을지로도 기꺼이 이들을 반겼습니다. 이것이 여전히 을지로를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현대엔지니어링 사보 <사람과 공간> 2018년 6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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