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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Aug 24. 2018

물과 뭍이 공존하는 땅
전남 순천 여행기

물의 도시로 거듭난 순천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순천은 아름다운 공존의 땅입니다. 물과 뭍이 만나 빚어낸 순천만 갯벌은 흑두루미, 검은머리 갈매기, 저어새가 깃들어 쉬는 생명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순천만의 아름다움에 사람의 정성을 더해 완성한 순천만국가정원은 해마다 500만 명이 찾는 우리나라 대표 정원으로 힐링과 공존의 가치를 알리고 있습니다. 풍성한 바다와 습지의 수혜 속에 매력만점 물의 도시로 거듭난 순천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순천만국가정원의 자연생태관 ⓒ 김지호


순천만, 땅과 물의 경계에 자리한 생명의 땅


우리나라 문학사의 명작으로 꼽히는 <무진기행>. 하지만 아무리 대한민국 전도를 살펴도 무진이라는 고장은 찾을 수 없습니다. 마냥 소설 속 허구일까요? 소설가 김승옥은 <무진기행>의 배경을 그가 유년을 보낸 ‘순천과 순천만 앞바다 그리고 그 갯벌’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잠깐 소설 속 문장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문학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문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 1941년생인 김승옥은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해 해방되던 해인 1945년 귀국해 순천에 터를 잡았습니다. 서울 서라벌대학으로 진학하기 전까지 머물렀으니 그사이 작가의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그 습하고 짭짤한 순천의 습도와 염분이 깊숙이 스며들었을 것입니다.

스멀거리며 육지로 밀려오는 안개를 살아 있는 생명인 듯, 어둠을 틈타 진군하는 군인인 듯 생생히 묘사한 그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순천으로 가는 길을 찾게 됩니다. 그 이국적인 풍경과 습도 속에 시나브로 깃들어 마른 몸과 마음을 적시고 싶어집니다.

순천만은 우리나라 남해안의 대표 습지입니다. 예부터 물이 빠져나가는 간조 때 드러나는 너르고 평평한 땅은 염전으로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파도에 밀려드는 토사와 영양 가득 머금은 바닷물 덕분에 한결 더 기름지고 넉넉한 영양과 먹이를 품은 소중한 생명의 터전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순천만의 풍경을 더 여유롭고 멋지게 채워주는 건 고량동과 대대동, 해룡면 중흥리, 해창리와 선학리에 걸쳐 있는 순천만 갈대밭입니다. 나무 데크로 만든 탐방로를 따라 전체 넓이가 160만 평이 달하는 갈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또 하나의 황금빛 바닷속에 몸을 던진 듯, 바람따라 몸을 누이며 춤을 추는 갈대밭의 장관에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일출과 일몰 무렵이면 말 그대로 인생샷을 남기려는 아마추어 작가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순천의 핫 스폿입니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옛 고을의 멋과 낭만


안개와 습지의 순천을 만끽했다면 이제 내륙 순천의 멋과 아름다움을 만나볼 차례입니다. 순천에는 고창읍성, 해미읍성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읍성으로 꼽히는 낙안읍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도성이 왕실과 종묘사직을 지키는 기능을 하는 수도권의 군사, 행정 시설이라면 읍성은 지방의 주요 거점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특히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당시의 생활상과 주거양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민속마을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 유적으로서 그 가치가 남다릅니다.

옛 읍성과 가옥을 ‘살아 있다’고 하는 이유는 오늘까지 120세대가 여전히 거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낡은 초가지붕을 교체하고 집 안팎을 보살피는 덕분에 집들은 훼손 없이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 때가 되면 지역 문화와 전통을 이어나가는 다양한 행사를 열어 읍성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생생한 체험의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전통의 면모가 잘 유지되어 있어 <대장금>, <동이>, <상도> 등의 사극 촬영장으로 선택되기도 했습니다.

순천에서의 하룻밤을 계획한다면 낙안읍성에서 일정을 마무리하도록 동선을 짜보세요. 행여 아이들이 옛집을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통 주거양식을 그대로 유지한 가운데 현대식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민박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광객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만큼 낙안읍성 홈페이지(www.suncheon.go.kr/nagan)에서 미리 시설을 확인하고 예약해두는 게 좋습니다.


걸으며 깨닫는 지혜, 바라보며 헤아리는 깊이


이왕 내륙으로 길을 잡았으니 조계산 자락에 자리한 옛 절, 송광사에 들러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신라 말 지어진 송광사는 보조국사로 이름 높은 지눌을 비롯해 이름 높은 국사 16인을 배출하며 일찍이 승보사찰(수행이 깊고 큰 깨달음을 얻은 스님들을 배출한 절)로 불리고 있습니다.

굳이 불교사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더라도 송광사는 말 그대로 여유로운 충전과 치유를 체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마치 파도소리와 같이 '쏴아'하고 청량한 음으로 귀를 씻어주는 대나무 숲의 연주를 들으며 굵직하게 자란 삼나무와 편백나무 그늘 사이를 걷노라면 세상의 속도와는 완전히 다른 순천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자신의 글과 삶 전체를 통해 오롯이 무소유의 삶을 설파하고 떠나신 법정스님의 산책길도 빼놓으면 안 됩니다. 송광사의 암자인 불일암까지 스님이 다니신 길이 ‘무소유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길 따라 걷는 동안 어느새 욕심이 걷히고 오직 자신의 숨소리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때로는 책보다 길이 더 많은 깨달음과 지혜를 준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산책이 될 것입니다.

송광사가 발걸음으로 체험하는 절이라면 선암사는 눈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절입니다. 보통 유서 깊은 절에는 왕에 관한 이야기가 빠짐없이 전해오는데 이곳 송광사에는 정조가 100일 기도로 순조를 얻었다는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선암사 초입에 들어 물소리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유려한 곡선과 고졸한 멋으로 우리나라 최고로 손꼽히는 무지개다리, 승선교를 만나게 됩니다. 마치 속세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인 듯, 다리를 건너는 동안 절로 겸허한 마음이 깃듭니다. 멀리 계곡에서 다리를 바라보노라면 실제 다리와 물속에 바친 다리가 하나의 원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이고 나와 남을 구분 짓지 말라는 가르침이 다리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습니다.


물처럼 머물고 물처럼 내달리며 즐기는 순천 여행


순천에는 작은 시립 박물관이 하나 있습니다. 순천 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입니다. 우리 문화를 사랑했고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이 시대에 새롭게 발굴해내고 이어나가고자 출판인, 한창기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유물 6,500여 점을 전시한 공간입니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한창기야말로 이 시대의 진짜 선비였다고 말합니다. 백과사전으로 이름 높았던 한국브리태니커회사의 사장을 역임하며 많은 수익을 올린 그는 곧 그 수익을 밑천으로 우리의 문화와 역사, 전통을 제대로 담아내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전용 가로쓰기 잡지, <뿌리깊은 나무>를 창간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의 종합 인문지리지인 <한국의 발견>과 <브리태니커 판소리 전집> 등을 발간하며 일제 강점기의 흔적을 미처 떨치지 못한 우리 출판계에 우리식의 생각과 글, 이야기의 정수를 불어넣어주었습니다.

순천, 하늘의 순리대로 사는 땅. 물처럼 유유자적 흐르며 땅과 어우러지고 수많은 생명을 가림 없이 품어주는 고장. 이 여름, 그 평화로운 경계에 깃들어 쉬어보는 건 어떨까요. 물처럼 유연하게 순천의 길들을 유영하며 때로는 느리게 호수처럼 머물고 때론 폭포처럼 달리며 잊고 지낸 물의 지혜를 되새기는 여유를 만끽해보세요.



글. 허재훈
사진. 순천시청, 한국관광공사, 김동율
 
  

현대자동차 사외보 <현대모터> 2018년 7, 8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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