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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Sep 21. 2018

서울의 상징
서울역과 서울로7017

여러분은 서울역 앞에서 어떤 첫인상을 받았나요?


지난해 5월 서울로7017(이하 서울로)이 문을 열었습니다.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에 나무와 꽃을 심었고, 식수대와 카페도 만들었습니다.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여야 했을까요? 어째서 낡은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보행길로 재활용하는 방법을 택한 것일까요? 지상 17m 높이의 서울로에서 발아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설핏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서울로가 바꾼 도시의 풍경


1970년 5월, 서울역 고가도로가 준공됐습니다. 그 무렵의 많은 건축토목 사업들이 그러하듯 서울역 고가도로는 경제성장과 근대화의 상징이었습니다. 고가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사람들은 교통난이 해소됐다며 가슴을 쓸어내렸고, 남대문시장이 북적이던 시절에는 상인들의 물건을 싣고 나르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단단하게 버티고 서있을 것만 같았던 콘크리트 다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낡아갔습니다. 점점 많아지는 차들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면서 안전성 문제까지 거론되다가, 결국 2013년 철거가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2014년 서울시는 1년 만에 다시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보행자 전용 공간으로 재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로가 문을 연 지 1년. 그간 한계와 부침도 많았지만, 천천히 변화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서울로에 심어둔 꽃과 나무가 자라났고, 자욱한 자동차 매연 사이로 새와 곤충들이 자연을 찾아 날아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걸어서 서울역을 찾았으며, 다시 걸어서 서울역을 떠났습니다. 어디 서울역뿐일까요. 서울로가 연결된 지역 구석구석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습니다. 서울로엔 걷는 사람들과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들과 또 인형극이나 독서클럽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기타를 매고 들어와 버스킹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은 깨끗하게 정비된 회색빛 콘크리트 다리뿐일지라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야말로 서울로의 가장 유의미한 성과였습니다.


당신이 마주한 서울의 첫인상


서울로는 서울역에 있습니다. 물론 서울로의 길은 만리동에서부터 남대문시장까지 사방으로 뻗어 나가지만 그 중심이 지나는 곳은 틀림없이 서울역입니다. 서울역과 서울로. ‘서울’이란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그들은 형제처럼 나란히 맞닿아 있습니다.

서울에게 서울역은 특별합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역사(驛舍)는 숱하고 다난한 근현대사를 겪어내며 오랫동안 도시의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교통수단이 워낙 다양해지고 편리해졌지만 한때 서울역은 서울과 다른 지역을 잇는 유일한 통로로서, 서울의 시작이자 끝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서울도, 가장 마지막까지 눈에 담아두는 서울도 모두 ‘서울역’이었습니다. 그러니 서울에서 서울역은 상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서울역의 상징성이란 서울을 잘 알고 있는 ‘우리’에게나 통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외관을 고스란히 간직한 서울역은 도시와 이질적인 어울림을 만들어냈고, 우리에겐 그 풍경이 더없이 인상적이었지만, 서울을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서울은 그저 ‘차와 사람이 많은 도시’일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래된 역사의 건물을 카메라 렌즈에 담을 때 외국인들은 고층빌딩이나 자동차로 빼곡한 도로를 찍었습니다.


서울로를 따라 ‘걷자 서울’


언젠가부터 서울은 바뀌고 있었습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여러 차선의 도로는 한때 경제성장의 표상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독한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구박받았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걷자 서울’이라는 슬로건 아래 보행도시 서울을 계획했습니다. 서울로 또한 걷는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한 일환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기존에 이루어졌던 여타의 도시재생들이 오래된 시설을 정비하고 다시 사용하는 것에 그쳤다면 서울로는 다릅니다. 도시의 거리 문화를 바꾸는 것이 서울로에게 주어진 가장 크고 무거운 임무입니다.

이제 고작 첫걸음을 뗐을 뿐입니다. 지난 1년간의 성과와 변화보다 앞으로 남겨진 일들이 더 많습니다. 롯데마트와 서울스퀘어 등 서울역 인근 건물 옥상으로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고, 비교적 낙후되어 있던 만리동 지역의 상권 부흥도 기대됩니다. 건물의 간판과 조경을 정비하면서 점진적으로 이곳 풍경을 바꿔나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서울로는 ‘길’입니다. 길이란 무엇일까요? 잇는 것이 아닐까요? 서울에게 있어 서울로도 그렇습니다. 1970년대에 생긴 찻길이 2017년 사람길로 다시 태어났다는 ‘7017’의 의미처럼 서울로는 절대 닿지 못할 것만 같은 두 존재를 이었습니다. 분리되어 있던 지역들을, 과거와 현재를, 자연과 문명을, 그리고 사람과 도시를.

무릇 느릴수록 더 많이 보이는 법입니다. 그동안 달리는 차창 밖으로 서울을 보았다면 이제 서울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보세요. 스쳐 지나간, 그래서 몰랐던 더 많은 서울이 보일 것입니다.


  


현대엔지니어링 사보 < 사람과 공간 > 2018년 8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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