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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Nov 02. 2023

질투는 나의 힘 <시나가와 원숭이>

하루키의 한마디

이름은 여러모로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름 그 자체만 생각하더라도 어떤 심상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을 실제로 만났을 때, 생각했던 이미지와 크게 달랐던 경험은 거의 없다. 물론 이름은 같지만 확연하게 다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왠지 그들 사이를 희미하게 잇는 공통적인 무언가가, 이름이 가지는 주술적인 힘 같은 게 있을 것만 같다. 당장 아는 이름 몇 개와 그 이름의 주인을 떠올려 보자. 왠지 그 사람은 그 이름을 등에 달고 태어난 것처럼 이름과 잘 어울린다. 



무라카미 하루키『도쿄기담집』, 「시나가와 원숭이」


안도 미즈키는 이따금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물을 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 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정도,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 번꼴이다. 기억력이 나쁜 것은 아니다. 유독 자신의 이름만 기억나지 않았다. 의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구청에서 개설한 '마음의 고민 상담실'에 상담을 신청한다. 카운슬러라기보다는 친절한 이웃 아주머니에 가까운 사카키 데쓰코에게 그녀의 증상을 털어놓는다. 카운슬링의 효과는 미덥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미즈키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준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카운슬링을 통해 미즈키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본다. 평범한 집안에서, 언니가 한 명 있는 평범한 여학생으로 자랐다. 가족은 물론 남편과도 그럭저럭 크게 다투는 일 없이 살아왔다. 두 번째 상담에서 미즈키는 이름과 관련된 일화를 떠올린다. 기숙사 학교에 다니던 시절, 부잣집 딸에 성적도 좋고, 성격도 모난 곳 없으며, 미녀인 후배 유코가 미즈키를 찾아온다. 친분이 없던 사이라 당황하는 사이 유코가 질문을 건넨다. "질투의 감정을 경험해 본 적 있어요?" 미즈키는 질투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반면 남 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유코는 질투를 너무 많이 느낀다고 한다. 유코는 떠나면서 자신의 이름표를 미즈키에게 맡긴다. 원숭이에게 빼앗기지 않기를 바라며.


유코는 숲 속 깊은 곳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자살이었다. 미즈키는 유코가 건네준 이름표와 자신의 이름표를 봉투에 넣어 보관해 두었다. 상담이 끝나고 봉투를 넣어둔 박스를 확인하자 이름표가 사라졌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계속해서 상담을 나가던 어느 날, 카운슬러 데쓰코가 미즈키와 유코의 이름표를 꺼내 보인다. 그녀의 이름표를 누군가 훔쳐 갔기 때문에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데쓰코가 범인이라며 소개해 준 것은 말을 할 줄 아는 원숭이였다. 


원숭이는 유코를 사랑했기에 이름표라도 훔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가 죽고 이름표는 사라졌기 때문에 행방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 년 전 안도 미즈키의 집에 침입해 두 개의 이름표를 훔쳤다. 원숭이는 이름표를 훔치는 일이 긍정적인 면도 있다며 용서를 구한다. 이름과 함께 이름에 딸려 있는 부정적 요소도 가져오게 된다. 미즈키는 자신의 이름에 있던 나쁜 것에 관해 묻는다. 원숭이는 그녀의 가족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런 방어적인 자세는 당신이라는 인간의 일부가 되어버렸어요. 그렇지요? 하지만 그로 인해 당신은 누군가를 진지하게, 무조건적으로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미즈키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모른척하고 있던 내면의 아픔이었다. 그녀는 질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런 사실에서 눈을 돌려버리고, 마음속의 작은 어둠 안에 쑤셔 넣고 뚜껑을 닫아버린 채, 괴로운 일은 생각하지 않도록, 안 좋은 일은 쳐다보지 않도록 하면서" 살았던 것뿐이다. 그 결과 그녀는 가족은 물론 남편도 사랑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자녀가 태어나더라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미즈키는 원숭이의 말을 인정하고, 이름을 훔친 죄를 용서한다. 이름을 돌려받고, 그것에 담긴 것들과 함께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 나가기로 한다.



질투하지 않는 미즈키는 어째선지 <여자 없는 남자들>의 기노와 닮은 구석이 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차단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이는 일종의 병리적인 방어기제다. '눈 가리고 아웅'하면 당장은 괜찮을 수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며, 대게는 오히려 악화된다. 또한, '눈을 가리면' 나쁜 것을 못 볼지언정 좋은 것도 볼 수 없다. 미즈키는 질투를 느끼지 않는 대신 사랑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삶은 그렇게 양가적이다.


미즈키는 듣지도, 보지도 말하려 하지도 않았었다  사진: Unsplash의Joao Tzanno

질투는 힘이 되기도 한다. 적당한 질투는 앞으로 나아갈 모티베이션이 되기도 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질투가 심해지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질투의 대상을 향해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고(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연인 사이에서는 의부증, 의처증 같은 의심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中


질투한다는 건 결국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유코는 이를 "작은 지옥을 끌어안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게다가 "질투의 마음이란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조건 따위와는 별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 부러울 것 없었던 유코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유도, 지나친 질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질투한 나머지, 그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자신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남들에게 마음을 털어놓기도 쉽지 않았다.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 그녀가 질투를 많이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위로는커녕 비아냥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 물어뜯길 게 뻔했다. 유코가 미즈키에게 고민을 털어놨던 이유도, 미즈키가 남들과 다르다(질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함이다. 당신의 애인이 이성에 대한 질투가 너무 심하면? 조금은 피곤할 것만 같다. 반면에 질투를 아예 하지 않는다면? 나를 사랑하는 게 맞나 의심이 들 수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적당함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샤워할 때 온수와 냉수 사이 적당한 온도를 맞추듯, 그런 '미지근한 질투'가 좋다.


롤. 리. 타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문학동네


내 이름 석자를 천천히 발음해 본다. 모음과 자음이 만들어 내는 울림과 혀의 위치, 입술의 모양 따위를 의식하면서. 그리고 그 이름에 딸려 있을 부정적인 요소를 곰곰이 떠올려 본다. 좀처럼 열리지 않는 밀봉된 병뚜껑을 열려고 낑낑댔을 때처럼 답답하다. 어쩌면 나도 나쁜 것들을 밀봉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둔 게 아닐까. 시나가와의 원숭이가 카운슬러 혹은 테라피스트로 일한다면, 많은 사람이 치유 받을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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