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의 피드백을 반영한 수정본을 피드백하기
물건을 찾지 못할 때 엄마를 찾고는 한다. 엄마를 찾지 못할 땐 무엇을 찾아야 할까. 주방에서는 식재료를 써는 경쾌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늦은 밤까지 웅얼거리던 TV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엄마는 늘 같은 시간에 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봤다.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융프라우의 절경을 따라 운행하는 산악열차와, 가슴속 깊은 곳까지 울릴 것처럼 내리꽂는 나이아가라 폭포, 몽 생 미셸, 할슈타트, 유우니 소금 사막, 아, 그리고 오로라. 작은 화면 너머로만 볼 수 있는, 엄마의 눈동자 속에서 일렁였을 빛의 물결.
가끔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자연스럽게 엄마를 찾곤 한다. 엄마의 부재가 닥치면 나는 무엇을 찾아야 할까. 주방에서 식재료를 자르던 엄마의 칼질 소리도, 늦은 밤 웅얼거리던 TV 소리도 들리지 않겠지. 엄마는 늘 여행 프로그램을 좋아했었다. 그 프로그램 속에서 등장하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여행지, 몽 생 미셸과 나이아가라 폭포, 그리고 가슴 속 깊이 울리는 오로라까지. 화면 속 빛의 물결이 엄마의 눈동자에서 일렁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득 세이의 묘사가 마치 시각 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방송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송에서는 이미지를 '말해준다.'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몸짓, 표정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말로 설명한다. 관점을 바꿔보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다. 흔히 말하는 '눈치가 빠르다'라는 칭찬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능숙하다'라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세이는 비언어적 의사소통마저 언어적 의사소통으로 바꿔준다. "엄마는 늘 같은 시간에 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봤다."를 "엄마는 늘 여행 프로그램을 좋아했었다."라고 해석, 판단해주는 세이처럼 말이다. 그러한 경향성을 줄이도록 세이를 학습시킬 수도 있겠지만, AI의 디폴트 설정값은 '쉽고, 친절하게'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나는 내 문장이 더 좋다. 그러나 작금의 경향을 고민해 봤을 때, 세이의 수정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3년 전 이동진 평론가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한줄평을 남겼었다. 그리고 한줄평을 너무 어렵게 쓴다는 논란에 휩싸였었다. 내 문장이 평론가의 문장처럼 수준 높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동진 평론가가 언급했듯이, '단어의 맛'이라는 게 있고, '서로 어울리는 단어'가 있다. 물론, "작은 화면 너머로만 볼 수 있는, 엄마의 눈동자 속에서 일렁였을 빛의 물결." 이 문장은, 약간 겉멋 든, 있어 보이기 위해 쓴 문장임은 인정하는 바이다.
못나고 가난한 자식은, 엄마와 함께 그 찬란한 화면 속 순간들에 존재하는 상상을 한다. 엄마한테 오로라와 소금 사막과 폭포와 고딕 양식의 건축물에서 나는 냄새가 깃들길 소망한다. 엄마여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엄마가 담고 싶어 했던 냄새. 후에 엄마가 그리워지면, 그걸 핑계 삼아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렇지만 나는 종종 상상해본다. 못나고 가난한 자식이지만, 엄마와 함께 그 찬란한 여행지에 존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가 바라던 냄새들, 그곳에서 풍기는 향기를 엄마와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에게서 나던 그 냄새가 아닌, 엄마가 담고 싶어 했던 새로운 냄새들을. 그리운 엄마가 떠오를 때, 그 냄새를 찾아 여행을 떠날 핑계를 만들고 싶다.
결말까지 읽고 느낀 점은, 지난번 감상과 같았다. AI에게 '수정'이라는 업무를 주면 생각보다 낮은 효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시간, "네가 제안한 개선점들을 반영해서, 내 에세이를 수정해 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 개선점들은 다음과 같았다.
중심 이미지에 대한 구체성:
'엄마의 냄새'라는 중심 이미지가 글 전반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엄마의 냄새'를 더 생생하게 묘사하면 독자가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 예를 들어, 냄새에 대한 구체적인 순간을 하나 골라내서 그 기억을 더 자세히 풀어낸다면, 독자가 더 쉽게 그 장면을 상상하고 몰입할 수 있을 거야.
감정의 변화와 흐름 강화:
에세이에서 엄마의 부재를 상상하는 부분이 감정적으로 아주 중요해. 하지만, 그 감정 변화가 조금 더 서서히 발전되면 좋을 것 같아. 예를 들어, 처음에는 단순한 냄새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엄마의 부재에 대한 불안이 점점 커지면서 마지막에 감정의 절정에 이르는 구조로 만들면, 감정의 흐름이 더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아.
결말의 힘:
마지막 부분에서 엄마와의 연결을 여행으로 확장하는 아이디어는 훌륭하지만, 결말에서 조금 더 강한 메시지를 남기면 좋겠어. 엄마와의 추억을 통해 삶에 대해 느낀 교훈이나, 그리움 속에서 새롭게 발견한 무언가에 대한 결론을 좀 더 명확히 제시하면 글의 여운이 더 길게 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첫 번째로, '엄마의 냄새'를 더 생생하게 묘사하려는 노력은 있었던 것 같다. 앞서 살펴본 "포근한 냄새", "짭짤하고 달콤한 냄새" 등의 구체적인 표현들이다. 두 번째, 서서히 발전되는 감정 변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지난 시간 살펴본 두 번째 단락의 "나는 그 냄새를 다시는 찾지 못할 것이다."라는 문장을 "감정의 절정을 더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수정했다고 했다. 곱씹어 보면 썩 괜찮은 문장이긴 하다. 엄마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소지품에서 나던 냄새도 옅어지면, 이 세상에서 다시는 찾지 못하니까. 마지막으로, 결말의 힘이 강해진 것 같지는 않다. 삶에 대해 느낀 교훈이나, 새롭게 발견한 무언가에 대한 결론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답변이다. 그 여행지에서 냄새를 느끼고 싶은 건 '나'가 아니었다. 어쩌면 세이의 알고리즘이 "엄마와 함께"라는 표현에 가중치를 부여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여행을 떠날 핑계" 부분도 결단이라기보다는 소망 같다. 다시 말해, "결말의 힘"이 강해지지 않았고, 수정본이 원본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