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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Oct 21. 2024

AI와 인간의 에세이 대결-6-

세이가 다시 쓴 '엄마의 냄새'

엄마의 냄새(세이의 수정본)


'엄마'라는 단어에는 어떤 향이 난다. 그 향은 아빠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나는 냄새와는 확연히 다르다. 어릴 적 엄마가 방금 세탁한 옷을 입고 나를 안아줄 때마다 느꼈던 그 포근한 냄새, 햇볕과 바람에 말린 빨래에서 나는 따뜻함이 섞인 냄새 말이다. 또 엄마가 늘 차려주던 저녁 식탁에서 나는 소불고기 냄새, 그 조리 중 스며드는 짭짤하고 달콤한 냄새가 머릿속에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 향은 언제나 나를 안심시켰다. 그 모든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엄마'라는 존재로 기억된다.


하지만 나는 가끔 엄마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게 된다. 그 생각만으로도 코끝이 찡해지고, 마음이 저릿해진다. 엄마가 사라지면, 더 이상 '엄마'라고 부를 존재가 없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하다. 내 삶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그 자체로 영구히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진이나 영상 속 엄마의 모습은 남겠지만, 그 향만큼은 어딘가에 보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엄마가 자주 입던 옷이나 이불, 그리고 엄마의 물건들에서도 점차 엄마 냄새가 사라질 테지. 아무리 그 물건에 코를 박아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그 냄새를 다시는 찾지 못할 것이다.


가끔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자연스럽게 엄마를 찾곤 한다. 엄마의 부재가 닥치면 나는 무엇을 찾아야 할까. 주방에서 식재료를 자르던 엄마의 칼질 소리도, 늦은 밤 웅얼거리던 TV 소리도 들리지 않겠지. 엄마는 늘 여행 프로그램을 좋아했었다. 그 프로그램 속에서 등장하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여행지, 몽 생 미셸과 나이아가라 폭포, 그리고 가슴 속 깊이 울리는 오로라까지. 화면 속 빛의 물결이 엄마의 눈동자에서 일렁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지만 나는 종종 상상해본다. 못나고 가난한 자식이지만, 엄마와 함께 그 찬란한 여행지에 존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가 바라던 냄새들, 그곳에서 풍기는 향기를 엄마와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에게서 나던 그 냄새가 아닌, 엄마가 담고 싶어 했던 새로운 냄새들을. 그리운 엄마가 떠오를 때, 그 냄새를 찾아 여행을 떠날 핑계를 만들고 싶다.



이렇게 수정하면서, 냄새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조금 더 풍부하게 하고, 감정의 흐름을 점차 고조시키며 결말을 강화했습니다. 이 수정이 마음에 들길 바라!


(이 글은 OpenAI의 GPT-4o 언어 모델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세이가 첨삭해 준 에세이를 원본인 내 에세이와 비교하며 차이점을 확인해 보자. 원본을 상자로, 수정본을 세로선으로 구분했다.


'엄마'라는 단어에서는 어떤 향이 난다. 그 향은 분명 '아빠'나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단어에서 나는 향과는 다르다. 그 향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엄마가 자주 사용하는 향수냄새와는 분명 조금 다르다. 햇볕과 바람에 잘 마른 빨래 냄새도 섞여있는 것 같다. 상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엄마가 만든 소불고기 냄새도 희미하게 느껴진다. '엄마'에는 그 모든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엄마'라는 단어에는 어떤 향이 난다. 그 향은 아빠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나는 냄새와는 확연히 다르다. 어릴 적 엄마가 방금 세탁한 옷을 입고 나를 안아줄 때마다 느꼈던 그 포근한 냄새, 햇볕과 바람에 말린 빨래에서 나는 따뜻함이 섞인 냄새 말이다. 또 엄마가 늘 차려주던 저녁 식탁에서 나는 소불고기 냄새, 그 조리 중 스며드는 짭짤하고 달콤한 냄새가 머릿속에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 향은 언제나 나를 안심시켰다. 그 모든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엄마'라는 존재로 기억된다.

먼저 따옴표의 사용이 적다. 때때로 내가 따옴표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세이 역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 문장의 순서가 조금 바뀌었고, 표현이 더 구체적이다. "햇볕과 바람에 잘 마른 빨래 냄새"는 "엄마가 방금 세탁한 옷을 입고 나를 안아줄 때마다 느꼈던 포근한 냄새"로 바뀌었다. 방금 세탁했다면 축축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또 소불고기 냄새는 "짭짤하고 달콤한 냄새"가 "아련하게 떠오른다."라고 표현했다. 감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독자가 심상을 떠오르는데 도움을 준다. 안아주는 행위의 촉감과, "짭짤하고 달콤한"이라는 미각적 묘사가 그렇다. "그 향은 언제나 나를 안심시켰다."라며 화자가 느끼는 감정까지 설명해 준다. 마지막 문장의 느낌도 다르다. "'엄마'라는 존재로 기억된다."라고 서술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감이 결여된 시대에 한 줄기 희망, 바로 AI다. AI를 이용한 심리치료가 활발해지길 기대해본다. 각설하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보자.


가끔은 엄마의 부재를 상상한다. 괜스레 코 끝이 찡해진다. 더 이상 '엄마'라고 부를 존재가 없다는 사실이 막연하게 두렵다. 내 인생에서 '엄마'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질 것만 같다. 영구 결번처럼. 엄마가 나온 사진이나 동영상은 볼 수 있겠지만, 엄마 냄새는 어딘가에 보관할 수도 없다. 엄마의 옷가지들, 이불과 베개, 엄마의 소지품들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냄새가 희미해져 갈 것이다. 그 흔적들에 아무리 코를 깊이 파묻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오면, 엄마의 소지품들을 정리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가끔 엄마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게 된다. 그 생각만으로도 코끝이 찡해지고, 마음이 저릿해진다. 엄마가 사라지면, 더 이상 '엄마'라고 부를 존재가 없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하다. 내 삶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그 자체로 영구히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진이나 영상 속 엄마의 모습은 남겠지만, 그 향만큼은 어딘가에 보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엄마가 자주 입던 옷이나 이불, 그리고 엄마의 물건들에서도 점차 엄마 냄새가 사라질 테지. 아무리 그 물건에 코를 박아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그 냄새를 다시는 찾지 못할 것이다.

이쯤 되면 세이의 특징이 눈에 띈다. 문장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구성한다. 접속 부사등을 활용해 문장 간의 매끄러운 흐름을 신경 쓰고, 화자의 감정 역시 하나하나 묘사해준다. 생략된 내용을 풀어서 덧붙이고, 무덤덤한 문장에 생기를 더한다. 한마디로 친절하다. 물론, 그 '친절함'이 만능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문학의 예술성은 친절함보다는 절제와 함축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이야, 내가 사라지면 슬퍼해줄 거지? 출처: 챗GPT 이미지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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