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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Sep 19. 2023

나도 인간이니까 상처받을 일에는 상처받아 <기노>

하루키의 한마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맞닥뜨리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절규하거나, 분노하거나, 넋이 나가는 둥 여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늘 내 가슴을 저미는 반응은 바로 무반응이었다. 덤덤해져 버리는 것이다. 엄마가 오늘 죽었는지, 어제 죽었는지 관심도 없는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말이다. 오히려 씩씩하게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경우도 있다.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에서 ‘나’의 가족은 ‘나’를 남겨두고 집단자살을 한다. 빈민층으로 몰락해 버린 가족을 위해 일자리를 구해온 ‘나’가 맞닥뜨린 광경이다. ‘나’는 어쨌을까? 담담하게 그 가난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과연 그 무덤덤함, 나아가 씩씩함이 삶의 고난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묵묵히 맞서는 태도일까? 삶의 허무를 달관한 초인의 경지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상황이 실로 가장 위험하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어딘가 망가져 버린 상태다(혹은 이미 망가져 있었거나). 폭풍이 치기 전날 평온한 날씨처럼, 주인공들의 초연한 태도는 나를 오히려 겁먹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기노」

기노가 예정보다 빠르게 출장에서 돌아온 날,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벌거벗은 아내와 그의 직장동료였다. 기노의 집, 그와 아내가 늘 잠들던 침대 위에서 두 사람은 하나가 되어 있었다. 쪼그려 앉아 올라타 있는 아내의 모습을 정면에서 마주한 기노는, “모양 좋은 유방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는” 걸 본다.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침실 문을 닫고, 빨랫감이 든 여행 가방을 다시 멘 채 집을 나온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라고 생각해 버린다. “원래부터 아무런 성취도, 아무런 생산도 없는 인생”이라고 체념한다. 오히려 “내가 예정보다 하루 일찍 집에 가지 않았으면 될 일이었어”라고 자책한다.


직장을 그만둔 기노는 작은 바 '기노'를 연다. 첫 손님으로 회색 암컷 길고양이가 오고, 가게 한 귀퉁이에 자리 잡는다.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기묘한 남자 가미타도 만난다. 가게에서 소란을 일으킨 불량배들을 그가 조용히 불러내 처리해 준 뒤로, 그에 관한 수수께끼가 더욱 깊어진다. 손님으로 온 여자와 성교도 한다. 기노에게 의심이 담긴 눈길을 보내는 동년배 남자와 항상 동석하던 여자다. 비 내리던 밤, 그녀는 어째선지 혼자 기노를 찾아온다. 폐점 시간이 되었을 무렵 그녀는 기노에게 자신의 맨등을 내보인다. 담뱃불로 지져진 흉터들이 군데군데 흩어져있다. 그녀는 기노의 침실에서 '보여주기 힘든 곳'에 있는 흉터마저 보여준다.


기노의 고양이는 아마도    사진: Unsplash의Artur Ament


이혼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만난 아내가 '기노'에 찾아온다. 그녀는 기노에게 사과하지만, 둘의 사이가 "처음부터 잘못 끼운 단추"였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기노가 다른 사람을 만나 행복하길 빌어준다. 가을이 오고, 고양이가 자취를 감춘다. 그 이후로 집 주위에서 뱀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 밤, 가미타가 느닷없이 기노에게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기노가 마치 중대한 위험에 처한 것처럼 행동한다. 기노가 "옳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그의 말이 설득력이 있었기에, 기노는 충고를 받아들여 여행을 떠난다. 가미타는 기노에게 어떤 ‘금기’ 또한 말해주는데, 기노는 여행 중에 충동적으로 그 금기를 어긴다(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는 편이 좋겠다). 줄기차게 비 내리던 그날 밤, 누군가 기노의 방문을 노크한다. 


그래, 나는 상처받았다. 그것도 몹시 깊이. 기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노크 때문에 불안해진 기노는 벌레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양한 기억과 이미지, 상징들이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아내가 계속해서 떠오른다.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던 기노는 결국, 사색의 끝에서 자신이 상처받았음을 고백한다. 그것도 몹시 깊은 상처를.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이불 안 기노의 정신 상태는 이와 같지 않았을까  Edvard Munch <The Scream> 1893


「기노」는  『여자 없는 남자들』중 가장 난해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정처 없이 흘러가고 메타포로 가득하다. 결말부 의식의 흐름은 기노의 절망을 잘 표현해 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기노의 상상인지, 현실인지, 아니면 교묘하게 섞여버린 둘 다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하루키스러운' 작품이다. 그렇기에 더욱 일독을 권한다. 개인적으로, 아내의 불륜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나서부터 기노의 마음에는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기노는 그 구멍을 애써 무시했다. 아내가 찾아와 기노에게 사과를 건넬 때쯤, 구멍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고 결국 기노를 집어삼켰다. 


기노가 하지 않은 ‘옳은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건, 아내를 용서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노는 아내를 용서하지 않은 채 잊고 살아가려 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끝에서야 나지막이 고백한다. "나는 잊는 것뿐 아니라 용서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잊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기노처럼, 무덤덤한 사람이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은 용서가 아니라 망각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을 때, 이를 바로잡지 않고 그냥 그대로 끝까지 끼워버리는 행동이다. 첫 단추쯤이야 잘못 끼워도,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일지 모른다. 망각과 용서가 겉으로 보기에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나 전자는 결국 치명적인 문제점이 드러난다. 작은 틈이 커져서 댐이 무너지는 것처럼.


그렇다면 용서의 첫 단추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충분히' 상처받는 것이다.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뼛속까지 통절해야 한다. 다가올 고통이 두려워 진실을 회피하고, 감각을 차단하면, 자신이 받은 상처를 직시할 수 없다. 쓰라리도록 소독하고, 찢어진 곳을 꿰매고, 고름을 빼내고, 흉터가 아물어야, 그다음에야 진심으로 상대를 용서할 수 있다. 


사진: Unsplash의Arwan Sutanto


살아가며, 우리 모두 필연적으로 상처받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우리는,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고통을 인내하는 게 남자답고 어른스러운 거라고. 그래서 깊은 상처를 받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다. 그 관념은 점점 단단해지고, 결국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병을 키우는 고집불통의 노인이 된다. 울면 안 된다며 어린아이들을 겁주는 크리스마스 노래 때문이었을까? 울음이 태어나자마자 했던 가장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언제 울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울지 않으려고, 상처를 모른척했다. 그게 아니라고 하루키는 말하는 것만 같다.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자. 직시하고 인정하자. 용서하고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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