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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Oct 02. 2023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자물쇠를 고치러 와줘<사·잠>

하루키의 한마디 <사랑하는 잠자>

언젠가 ‘루틴’ 열풍이 불었었다. 미라클 모닝이니, 데일리 루틴 챌린지니, 난리였다. 그들이 말하는 효과는 굉장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만나고, 승리감을 느끼고, 하루가 길어지고, 긍정적이며 목표 지향적인 마인드가 어쩌고…. 물론 그런 생활 습관을 비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오히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질투하며 포도가 실 거라고 포기하는 여우에 불과하다(당장 어젯밤만 하더라도 5시까지 깨어 있었는데, 나만의 미라클 모닝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마케팅의 일환으로 새 용어를 만들어 트렌드를 주도하는 자기 계발 시장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비꼴 뿐이다(나 때는 ‘아침형 인간’이라고 불렀다 이 말이야). 나에게 ‘미라클 모닝’은, 잔병치레로 병원을 방문했을 때 의사가 기도문처럼 읊던 ‘규칙적인 생활, 건강한 식사,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받지 않기.’ 같은 진부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현상 유지도 아슬아슬한 걸요.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사랑하는 잠자」

전쟁의 소용돌이 그 한복판, 프라하에서 깨어난 잠자(아시겠지만, 카프카 변신」의 오마주이다). 인간으로 ‘변신’한 첫날이었기에 잠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다. 그가 왜 인간이 되었는지, 그의 이름이 잠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짐작할 수도 없다(어쩌면 생각이란 행위 자체가 낯설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격렬한 고통을 수반하는 공복감을 해결해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근육과 관절을 움직인다. 계단을 가까스로 내려오고, 음식 냄새를 좇아 식당으로 들어선다. 테이블 위에 요리 접시들이 차려져 있지만 인기척은 없다.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자, 한기가 느껴진다. 옷을 찾아 걸쳐 입는다.


뜻밖에 자물쇠를 고치러 온 꼽추 아가씨를 만나고, 그녀에게 본능적인 호감을 느낀다(불룩해진다). 그녀는 문제의 자물쇠가 수리되면 돌려주러 오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면서 세상이 무너지는 판에 누군가는 자물쇠를 걱정하고, 누군가는 그걸 고치러 오니 이상하지 않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 이상한 점이 인간을 미치지 않게 하는 구심점일지도 모르겠다고 자문자답한다.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 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를 무척이나 다시 만나고 싶은 잠자는, 성가시고 자잘한 일들ㅡ두 다리로 걷고, 나이프나 포크로 식사하고, 옷을 입는ㅡ을 배워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녀가 인간이기에, 잠자도 인간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잠자이기 때문에. "새들을 조심해요." 그녀가 떠날 때, 잠자는 자신이 아는 가장 애정 어린 인사를 건넨다. 


새들을 조심해요     사진: Unsplash의Cristina Gottardi


많은 예술가 혹은 예술가 지망생들이 선망하는 ‘하루키 루틴’의 창시자(물론 하루키는 창시한 적 없다) 하루키는 「사랑하는 잠자」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이 한마디는 나와 가장 동떨어진 조언일지도 모른다. 나로 말하자면,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종말 직전에 체념하며 멍하니 손을 놓고 있는 부류나 죽기 전 마지막 쾌락을 좇는 부류 중 하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게으른 나도, 사실 이 한마디의 효과를 본 적이 있다. 썸을 타던 그녀가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있는 걸, 우연히 마주쳤던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좌절하고 낙담했었다. '세계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후에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 분노를 연료로 '꼬박꼬박 착실히' 운동을 시작했는데, 보란 듯이 멋있어진 나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식단을 신경 쓰고, 매일 헬스를 다니다 보니 실연의 상처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물론 복수는 실패했다). 


사실, 이 한마디의 효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입증되어 왔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신학자의 고백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나치를 피해 숨어 살던 소녀가 쓴 글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기이자 문화유산이 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심리학자가 당부했던 '살아남는 비결'은 "매일 면도해라"였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잠자」를 'Dear Samsa'로 오해했었다. 뒤늦게 'Samsa in love'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전자의 관점도 꽤 흥미로웠다. 세상에 갓 태어난 어린 존재인 '잠자'를 관찰하는 입장에서, 그에게 보내는 애틋한 마음이다. 잠자가 깨어난 '단절된 방'은 뒤집어 생각하면 잠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마치 알을 낳기 전에 굴을 파는 곤충처럼. 그렇게 따진다면 식당에 차려진 식사는 새끼를 위해 준비된 식량이다.라는 식의 자의적인 해석도 재밌었다.


쇠똥구리는 경단 안에 알을 낳고, 애벌레는 그 경단을 먹으며 자란다  사진: Unsplash의Glen Carrie

잠자는 난관을 겪을 때마다 왜 자신이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아니라 '그레고리 잠자'여야 했는지 의문을 품는다. 이는 카프카의 소설을 해석하는 방법 중 하나인 실존의 문제 즉, 자신의 존재의미에 관한 질문이다. 잠자는 왜 꼭 인간으로 태어나야만 했을까. 다소 진부하게도, 결국 '사랑'이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였다. 무너져가는 세상 속에서도, 잠자는 꼽추 아가씨를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잠자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계단'을, 온 세상의 여러 계단을 오르내리고 싶어 한다. 이제는 자신이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아니란 사실에 기뻐한다. '사랑하는' 잠자. 잠자는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찾은 것이다. 



얼마 전, 소셜 미디어에서 춤을 추고 있는 누군가의 영상을 봤다. 군복을 입은 앳된 우크라이나 남성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군장을 차고, 총을 메고, 들꽃을 꺾어 귀에 꽂은 채 해맑은 얼굴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다른 영상에서 여자 사병은 막사에서 손톱을 손질하고 있었다. 언제 포화가 빗발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군인들이 참호에 모여 초콜릿 바에 초를 꽂고 생일을 기념하는 영상도 있었다. 곳곳에 탱크가 진을 친, 언제 병사들에게 끔찍한 일을 당할지 모르는 도시를 지나 자물쇠를 고치러 와준 꼽추 그녀처럼, 무너져 가는 세상 속에서 제정신을 지켜내기 위해서, 그들 자신의 자물쇠를 고쳐 단다.

@losmper_46, Tiktok


만약 당신의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면, 자잘한 일들을 찾아 처리하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방 청소도, 미뤄뒀던 옷 정리도 좋다(시험 전날 갑자기 책상을 정리하는 건 곧 다가올 '종말' 직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지저분한 손발톱을 정리하고, 아무렇게 자라 버린 머리를 다듬거나, 필요 없는 프로그램이 잔뜩 깔린 노트북을 포맷한다던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벽같이 일어나 명상과 독서, 운동, 자기 계발을 하는 미라클이 아니라,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봄은 온다. 잠자가 사는 프라하에도, 죽음의 수용소에도, 누군가의 무너져버린 세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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